내 육친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의 절망감은 까맣고 깊었다

내 팔뚝보다 굵은 호스를 목으로 직접 밀어넣어 위를 세척할 때는 ‘젠장, 이렇게 괴롭게 다시 살아나야 하다니’ 싶어 1차로 후회했다

죽으려다 못 죽으면 못 죽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구차하고도 구차한 삶이여.

"만약 명성황후가 살아 계셨다면… 지금 내 인생은 완전히 달랐을 거예요." 환자들은 도대체 뭐가 달랐을 거라는 건지 궁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누군가가 뭐가 달랐다는 거냐고 묻자 그는 비장하게 대꾸했다

"여기 와서야 알았습니다. 전 아직 덜 미친 것 같아요."

역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는 한 그 사람의 사정을 모른다는 말이 옳았다

언제나 삶에 뭔가 즐거운 일을 만들려고 쉴 새 없이 도모하고 재미나게 살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하다가 종종 사고까지 치던 나였다.

그런 내게서 생명력이 점점 빠져나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것은, 할머니를 암으로 조금씩 잃어가던 과정을 지켜보았을 때와 조금은 비슷한 기분이었다.

한때 내가 안고 있는 우울증을 모든 불행의 근원처럼 여긴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왜 나만’ 하며 나와 세상을 동시에 원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울증은 그냥 나와 함께하는 오래된 친구려니, 그렇게 대강 심상하게 여기는 것이 가장 무난한 것 같다.

매일 아침 달리는 것은 그날그날 마음의 때를 이태리 타월로 벗겨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달리기는 뭔가 특별한 운동이다. 뭐랄까, 영혼을 꽉 붙들어주는 것 같다고 할까.

어느 문학가가 산책을 칭송하면서, 걷고 있을 때 글쓰기의 영감을 주는 천사들이 귓가에 속삭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달릴 때의 내가 꼭 그렇다. 내 몸의 여러 기관들이 일제히 합창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 삶의 앞길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때로 침대로 파고들던 예전의 관성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고, 실제로 그러는 시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러는 순간조차 늘 달리기를 의식한다.

많은 날들의 나는 근심들을 끌어안고 이불을 덮어쓰는 대신 새벽 공기를 쐬며 러닝화에 발을 밀어넣고 일단 트랙에서 달린다.

나는 다시는 빙하 위의 바다사자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 ‘자신을 아낀다’는 낯선 감각을 소중히 할 것이다.

무거운 여자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칭찬에 가까운 말은 ‘맏며느리감’이라는 말인데, 가부장제에서 이 표현은 칭찬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저주다

어른이 된 후 이 생리통과 생리전증후군이 너무 심해서 산부인과에 찾아가 물어본 적이 있다. 어차피 아이 낳을 생각은 없으니 이 모든 고통이 사라지도록 어떤 방법이 없겠냐는 것이었다. 의사(남자였다!)는 시큰둥하게 차트를 보여주며 말했다.

"결혼해서 애 낳으면 다 없어져요~"

무책임한 대답과 그보다 더 무책임한 그의 태도에 잔뜩 화가 났다. 뭐? 아기를 낳으면 다 없어진다고? 지금 그걸 해결 방안이랍시고 나한테 내놓은 거야? 나는 아무 성과 없이 병원을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이 두 아이를 낳고 나서 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출산이 너무 원시적이고 폭력적이었다며 남자들이 출산을 했다면 이 모든 게 달라졌을 텐데, 라고 자서전에 쓴 구절이 있다

남성이 먹는 약들에 대해서는 온갖 실험 결과나 뉴스가 나오는 데 반해,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에게는 ‘그것 하나도 못 참냐’는 식으로 대하고 심지어 부작용까지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아마 의사도 피임기구 부작용에 대해 알지 못하고, 모르니까 관심도 더 없는 게 아닐까.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여성의 몸을 대하는 게 가능한 걸까? 왜, 대체 왜일까?

만화이기 때문에 깊이가 없으리라는 오해를 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다

육체적 고통은 번번이 정신을 이겼다. 미쳐버릴 것 같은 우울감은 피가 흐르는 뜨끔한 통증 앞에 잠시나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 보면 나 같은 게 살아 있어도 되는가 싶어 꼭 울게 된다.

덩어리져 흐르는 뜨뜻한 피가 아직 너는 살아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자해 환자들은 ‘나 같은 인간도 살아 있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자해 환자의 1퍼센트가 자해를 시도한 바로 다음해에 실제로 목숨을 끊는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이들이 아닐까.

도대체 인간은, 아니 나라는 인간은 왜 이 따위밖에 안 되는가를 깊이 생각했다.

결국 나 말고도 모든 사람이 저지르는 모든 어리석은 일들의 원인은 딱 두 가지라는 결론이 나왔다.

외로워서, 아니면 먹고살려고(특히, 잘 먹고 잘 살려고).

사람은 심심하거나 배고파서 온갖 종류의 바보 같은 일들을 저지르게 된다. 적어도 나는, 늘 그랬다.

그래서 골방에서 나와 일을 구하며 굳게 다짐했다. 아, 절대 심심하지 말아야겠다, 절대로 심심하지 말자.

망할 에디슨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다음 추방되어버린 삶의 방식이긴 하지만, 몇 세기 동안 인간이란 아침 해를 보며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와 푹 잠드는 생활을 하였으니 나도 선조의 길을 따르리라고 결의를 단단히 했다.

그래, 세상엔 어디에서든 배우는 일들이 많구나.

녹즙 시음을 차갑게 거절당한다거나 도구도 없이 땅을 파라거나, 삶에는 주어지는 미션이 정말 많구나.

아마 앞으로도 더 배울 것이 차고 넘칠 거라고 나는 생각했고, 역시 그랬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캄캄한 미래를 맥주 병따개 하나 없이 나아가는 것이 어른의 세계라는 것을 아주 조금 배운 나는, 아니 미스 김은, 가끔, 아니 종종, 사실은 매일, 삶에게 애원을 하곤 했다. 저기, 죄송한데요, 듣고 계시나요? 그렇다면 부디, 아니 제발 부탁인데요, 살살 가르쳐주세요. 제발 조금만 살살.

재미있는 점들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유명한 세일즈 교육가는 유명한 동기부여 강사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사람이란 존재는 받으면 어느 정도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세일즈맨과 고객 사이의 거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나

삶에 대한 아무 기대를 갖지 않는 태도는 언뜻 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진실은 그저 쿨한 척하는 겁쟁이일 뿐이다.

그런 태도로 살아가다 보면 불행이 닥쳤을 때 ‘내 그럴 줄 알았어’ 하고 충격을 최소화할 수는 있으나 대신 기쁜 일이 생기더라도 진심으로 기뻐할 수가 없다.

누가 나를 싫어해도, 추진하려던 일이 무산되어도, 누가 나를 욕해도, 날 보는 남자 눈치가 영 별로라 연애가 꼬여도, 나는 별로 휘청거리지 않는다.

거절이라면 충분히 당해봤다. 수십 수백 번 당해봤던 것이다. 그 거절들이야말로 나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다.

물론 거절당하는 그 순간에야 기분이 더럽지만, 다시 또 거절당했나 싶은 기분이 드는 날이면 ‘거절의 극기훈련을 거친 시절이 있는 것도 아주 나쁜 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직도, 아직은 간신히 견딜 수 있다.

레위인을 자처하는 나의 아버지와 6억 원이라는 돈을 하루에 아들을 위해 녹여버리는 왕세자의 아버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완전히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의 실사판을 보는 심정이었다. 아마 회장님은 자석요나 황토 양말 따위에 절대로 속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결국 시디를 사고 여기저기서 주섬주섬 영수증을 얻어 증빙자료로 제출했다. 그리고 회사는 우리에게 시디 값 상당의 ‘식권’을 지급했다.

다들 분개하며 회장님과 왕세자를 향한 증오를 불태웠지만, 그들은 우리처럼 하찮은 사람들의 증오 따위야 어마 뜨거라 정도도 눈치 채지 못할 사람들이었다.

사실 내게 가난이란 어릴 때부터 불편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그저 일상생활이었고 숨을 쉬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자식에게 다 퍼붓는 부모를 구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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