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부는 한때 둘이 합해 227kg까지 나가기도 했으나 간헐적 단식을 통해 두 명 합산 98kg을 감량하는 데 성공하면서 그들의 경험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간헐적 단식IF, Intermittent Fasting은 아주 효과적인 생활 방식이며,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 방법이라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 중 20퍼센트만 원래 몸무게의 10퍼센트 정도 되는 살을 빼고 그 상태를 1년 넘게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원래 몸무게의 40퍼센트 가까이를 뺐다. 그러니 분명 내가 뺀 살 중 조금 또는 전부가 다시 쪘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섭취한 칼로리가 얼마나 되는지, 지방이나 탄수화물이 몇 그램인지 등을 계산하지 않아도 괜찮다.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 충분히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내 인생 처음으로 나는 매일 맛있는 음식을 자유롭게 먹는다. 그리고 내 인생 처음으로, 각종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겪었던 그 많은 우여곡절을 앞으로 다시는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갑자기 마법처럼 무슨 일이 벌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바람이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건, 가뜩이나 바닥에 넘어져 아파하고 있는 나를 누군가가 발로 걷어차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자신을 고립시키고 멀리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판단하고 비교하면서, 한편으론 기적처럼 내가 고쳐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몸무게가 단지 나의 겉모습이나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비만은 실제로 내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진짜 나의 문제는 외로움, 불안감, 창피함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나의 조치들이 당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당시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할머니는 내가 자신감을 회복하려고 애쓰던 시기에 나를 마치 스타라도 되는 것처럼 대해주셨다.

할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에게 중요한 존재였다.

돌아가시던 해에도 할머니는 나에게 인생을 즐기라고 간곡히 당부하셨고, 그것이 내가 변화를 결심한 계기가 됐다.

할머니의 뜻을 실천하려고 시작한 일들이 이 책을 쓰도록 나를 이끌었다(할머니께 이 책을 바친다). 이제 ‘네 인생을 즐겨라’라는 세 단어는 나의 주문이 됐다.

그날 수술실 안에서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한 가지는 딸 에마Emma가 태어난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나의 요청대로 난관이 절제된 것이다.

나는 나의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할 여유도 없이, 나의 정체성이 뭔지도 모른 채 엄마가 됐다. 그래도 아이들은 끔찍이 사랑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두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을 너무 혹사하고 말았다.

행복한 날도 많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이들이 어릴 때만 느낄 수 있는 사소한 행복을 좀더 즐기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나는 어린 나이에 두 아이를 둔 엄마라는 사실이 두려웠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정신 바짝 차려야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 어려운 날들을 견딜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현실을 깨닫는 순간 너무나 두려웠다. 그럴 때마다 천장을 올려다보고는 앞으로 10년은 고사하고,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노심초사했다.

이런 생각들을 멈추고 과감히 연락해준 그녀가 너무나 고맙다. 그 덕에 우리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는 함께 있을 수 있어서 행복했고, 기쁨에 겨워 우리 앞에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쁜 습관들은 일상이 됐고 우리의 몸무게도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설탕과 돼지기름을 먹음으로써 치르게 될 비용은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가정을 이루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순식간에 통했고 사랑에 빠졌다는 감정에 취해 실제로 우리가 결혼했을 때 다루게 될 많은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의해보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음식이었을 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둘이 있을 때나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랐다. 당연히 돈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서도 생각이 달랐다.

또다시 코앞의 상황을 모면하는 데에만 급급한 삶으로 되돌아간 우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것을 통해 행복해지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킴과 나를 닮은 아이의 존재가 마법처럼 우리를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게 해주고, 나와 애덤과 에마 사이의 생물학적 연결고리가 돼줄 것이라 생각했다.

아기를 가지려고 노력한 몇 달 동안,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여전히 우리의 관심 밖이었다

우리는 태어날 아기의 이름이나 아기가 누굴 닮을지, 가족사진을 어떻게 찍을지 등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불어나는 우리의 몸무게, 악화되는 우리의 경제 문제, 새로운 아이를 키우는 것을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서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또다시 코앞의 상황을 모면하는 데에만 급급한 삶으로 되돌아간 우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것을 통해 행복해지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가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건 아닌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고민하게 됐다.

킴은 대학원 등록금과 아이들 양육비로 꽤 많은 돈을 빌려야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는다면 모두 보상받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매일매일 한 가지 감정에 지배됐다. 바로 분노였다.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토록 어렵게 해낸 일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기 때문이다. 내가 살을 뺐을 때 나에게 박수를 보냈던 모든 사람에게 실패자처럼 보일 거라는 사실에 화가 났다.

결혼도 하고 가족까지 생겼는데 내 문제 중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아 화가 났다. 나는 시한폭탄 같은 상태였다.

내 마음은 내가 되고 싶었던 좋은 남편과 새아버지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내 마음은 내가 되고 싶었던 좋은 남편과 새아버지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킴과 결혼하면서, 뚱뚱하고 불행했던 시절은 다 지나갔고 앞으로는 행복한 나날만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냉정한 현실과 내가 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이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마치 내가 다이어트에 성공했던 것은 인생에서 정말 좋은 일들은 남들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신의 장난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도 굉장한 행운아였다. 나를 지지해주고 사랑해주는 아내와 멋진 자녀가 둘이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때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내가 가진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당시 암울한 하루하루를 살았다. 하지만 희망을 놓지는 않았다. 여전히 호기심에, 어쩌면 질투심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그들처럼 삶의 기운을 충만하게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불행해진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 증상을 고치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또한 그런 데 시간을 쏟아붓느라 정작 건강이 치르게 될 대가는 등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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