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의 의무적이지만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내 이름을 써 넣었다. 쉽게 말해 심폐소생술·혈액 투석·항암제 투여·인공호흡기 착용 등 아무런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중단하는 것에 동의했다

난 평소에도 언젠가 맞이할 죽음의 순간을 종종 상상하던 사람이다.

어떻게 죽는 것이 나에게도, 또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덜 슬프고 괴로울까 생각하곤 했다.

각종 뉴스나 드라마, 영화 속에서 다양한 죽음의 모습을 목격했다. 그때마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떤 결정을 할까 상상해 보곤 했다.

나의 답은 하나였다.

‘1g의 후회도 아쉬움도 없이 살다가 온전하게,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눈을 감는 것.’

삶의 예기치 못한 순간들을 수없이 목격해 온 그 의사는 말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지금 다 하자고.

사람이 살아 있고 죽는 찰나는 딱 종이 한 장 차이일 뿐, 없을 수도 있는 ‘나중’과 선명한 ‘지금’을 바꾸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고 덧붙였다.

더 좋은 때를 위해 모호한 다음을 기약하기보다 지금 또렷한 이 순간의 기분과 감정에 충실해 살기로 했다. 감사의 말도, 마음의 표현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아보카도, 키위, 바나나, 멜론처럼 시간이 쌓여야 맛이 제대로 들어차는 과일도 존재한다.

무슨 일이든 다 가질 수도 없지만, 다 잃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는 재미가 있고 내일이 기대되는 건지 모른다.

청춘을 떠나보내고 신선함은 잃었을지 모르지만 경험치라는 게 생겼다. 불꽃처럼 뜨거운 열정은 사라졌지만 크고 넓게 그리고 느긋하게 보는 마음의 눈이 자리 잡았다.

어떻게 해야 내 삶이 달콤해지는 슈가 스폿이 생기는지,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이 말랑해지는지, 어떻게 해야 나라는 존재가 맛과 향이 좋은 상태가 되는지 알게 됐다.

N년 후의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야 2020년 오늘의 나도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날들을 성실히 채워 갈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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