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서서히 인생이 저물어 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살아왔다는 인생의 훈장이기도 하다
사람이 커피라면, 나는 딱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한없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따뜻함과 냉정함이 공존하는 존재.
사람은 각자 ‘자기 경험’이라는 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인 세계에 갇혀 산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스러워지는 건 다 자기 안에 정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준에 조금만 어긋나도 오답일 뿐,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논리는 100점이고 나 아닌 타인들의 논리는 0점이다
머리가 더 딱딱해지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시대의 변화와 세대 차이를 인정하는 유연한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그래야 홀로 늙는 외로운 어른이 되지 않을 테니
나이가 든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몸은 둔해지는 반면 감각은 예민해진다.
그래서 인생 목표를 ‘떡볶이’로 잡았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떡볶이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치아와 소화력을 유지하기 위해 건강 관리에 신경 쓰기로.
더불어 감각 관리에도 힘쓸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먹는 음식이라면 무조건 손사래 치는 닫힌 입맛과 취향의 소유자가 되고 싶진 않다.
새로운 것이라면 움츠리지 않고 도전하는 활짝 열린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래서 당장 오늘부터라도 콘크리트처럼 굳어 버린 내 취향만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어떤 소스를 입히든 그 맛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말랑한 떡볶이의 자세로 살 것이다.
일이든 여행이든 그렇게 한 번씩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얼음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듯 정신이 차려졌다.
각자의 속도와 색깔로 살아가는 또래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곧 시작될 인생 후반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생겼다.
모두가 인정하는 ‘완벽한 어른’인지는 여전히 물음표이지만 어쨌든, 어른이 돼서 좋은 점은 딱 하나다. 하기 싫은 걸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정확히는 남들이 뭐라 하든 하고 싶지 않은 건 꼭 하지 않아도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어른들은 말했다. 인생에는 다 때가 있고 그러니 때를 놓치면 나중에 후회한다고.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남들 하는 건 다 해야 한다고.
그 ‘남들 다 하는 거’에는 주로 결혼, 임신, 출산이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이 안 하면 망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겁을 줬던 인생의 숙제를 안 해도 아주 살 만하다.
물론 세상이 말하는 ‘보통의 삶’ 혹은 ‘주류의 인생’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하지만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아이를 낳든 안 낳든 사는 건 고만고만하다.
하루는 즐겁고 하루는 괴롭다. 우는 날이 있으면 웃는 날이 있다.
철이 안 들 사람은 부모가 되어도, 결혼을 하지 않아도 철이 들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사람은 부양가족이 있든 없든 열심히 산다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되는데 평생 그렇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면 후회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주변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을 보면 분명 행복한 부분도 있지만 후회하는 부분이 있는 건 똑같았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부러움과 가고 있는 길에 대한 지겨움은 모두에게 공평했다.
주류의 삶과 틈이 살짝 벌어지고 어긋난다고 해도 내 인생이 뒤집어지진 않는다.
영원한 비주류란 없다. 선명하게 보장된 미래란 없다. 포기하지 않는 한 폭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서 무언가를 놓치거나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 겁먹고 남들 눈치 보느라 썼을 에너지를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쏟아붓는다.
그게 아직 가야 할 길이 까마득한 내 인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다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퇴장의 순간을 떠올렸다. 현업이라는 무대에서 후회 없는 열연을 하고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퇴장할 수 있을까? 웃으며 감격에 겨운 커튼콜을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현업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플랜 B를 구체화하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
대체 왜 엄마는 일찌감치 ‘그걸’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세상 사람들이 전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는 걸.
나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니 누군가도 당연히 나를 싫어할 수 있다는 걸
인생의 크고 작은 상처는 삶의 면역력을 높인다.
삶의 고비를 넘을 때마다 흐릿했던 인생은 점차 선명해진다.
걸러야 할 사람과 끝까지 함께 가야 할 사람, 피해야 할 사람과 붙잡아야 할 사람이 구분된다.
앞으로 가야 할 방향과 삶의 기준이 뚜렷해진다.
마치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듯 쏟아지던 소나기가 지나간 후 세상이 눈이 시리도록 투명해지는 것처럼. 그래서 나에게 상처의 손익분기점은 언제나 플러스다
남의 서랍을 열지 않는다(=사적인 비밀에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다).
분명 우리가 자라면서 배우고 익힌 사항들이다. 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잊어버리는 걸까? 저 항목은 ‘어른의 예의’가 아니라 ‘사람의 예의’다.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응당 지키고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늙은 몸에 갇혀 생각은 여전히 덜 자란 그들을 보면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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