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사에서 출간한 싯다르타 읽고 있는데 왜 안 나오지
이제 절판된 책인건가




그는 이미 자기 본성 속의 불멸과 우주의 유일한 존재인 아트만(참된 자아(自我)-역주)을 깨칠 수 있었다

싯다르타 - 우리시대의 세계문학 054 | 헤세

싯다르타
고빈다

싯다르타는 어린 나이에도 어느덧 현자들 틈에 끼여 함께 이야기했고, 고빈다와 함께 토론에도 참여했으며, 명상과 사색의 방법도 배웠다

누구보다도 싯다르타를 가장 사랑한 사람은 그의 친구 고빈다였다

언젠가 싯다르타가 신의 경지에 이르고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그 자신은 친구로서, 반려자로서, 하인으로서, 창을 든 시종으로서, 그림자로서 그의 뒤를 따르려고 했다

뭇사람들도 싯다르타를 사랑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었다. 하지만 싯다르타 자신은 행복하지 못했다

그 우아한 몸가짐으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자기의 그릇에 부어 넣었으나 그릇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신에게 제물을 드리고 기도를 올리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가? 제사를 드려 과연 행복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신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나 자신, 즉 자아(自我), 가장 깊은 나, 가장 궁극적인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너의 정신은 전 세계이니라"

인간은 곤히 잠들었을 때 가장 깊은 세계에 들어갈 수 있으며, 아트만에 거처할 수 있다고 씌어 있다.

그렇게 훌륭한 학식을 지닌 아버지는 과연 행복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가? 그 역시 아직도 여전히 탐구하고 갈망하는 한 사람의 구도자가 아닌가?

싯다르타 사상은 이러하였다. 이것이 그의 목마름이었고 고뇌였다.

고빈다는 곧 이제야말로 때가 되어 싯다르타가 자기의 길을 가게 될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의 운명이 움트기 시작함과 동시에 자기의 운명도 움트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쓸데없는 말로 시간낭비 않기로 하세.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나는 사문의 생활을 시작할 작정이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러니 저러니 하지 않는 것이 좋겠네."

"브라만으로서 성급히 화를 낸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만, 불쾌해서 견딜 수가 없구나. 다시는 그런 소망 따위는 입 밖에 내지 마라."

아버지는 시간마다 가만히 가서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가슴은 처음에는 분노와 불안으로, 다음에는 두려움으로, 마지막에는 슬픔으로 가득 갔다.

"그러다가는 죽고 만다, 싯다르타야."

"네, 그럴 테지요."

"그럼, 너는 이 아비의 말에 순종하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할 작정이냐?"

"저는 언제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 왔습니다."

"그럼, 너는 네 계획을 포기하겠다는 거냐?"

"저는 아버지가 분부하시는 대로 행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싯다르타가 이미 자기 곁을 떠나 고향을 등지고 멀리 가 버린 것을 깨달았다

"그 곳에 가서 설법의 기쁨을 찾게 되면 돌아와서 이 아비에게도 가르쳐 다오. 그러나 만일 실망하게 되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오너라.

그는 하루에 한 끼만 먹었으며, 요리한 음식은 입에 대지 않기로 했다. 그은 보름씩, 때로는 한 달씩이나 단식을 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장딴지와 뺨에서는 살이 빠졌다

그러나 어느 것도 거들떠볼 만한 가치가 없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모든 것에서 썩은 냄새가 풍겼다. 모든 것은 의미가 있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같이 보이지만, 실은 다 썩어 없어질 것이었다. 세상은 괴롭고 인생은 번뇌로 가득했다.

그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천 번이나 자기를 잊어버렸으며 몇 시간씩, 때로는 며칠이고 무아의 경지에 머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아를 잊는다고 해도 나중에는 언제나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게 마련이었다.

"명상이란 무엇인가? 육신을 버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단식과 호흡 중지는 다 무엇인가? 그것은 모두 자기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라네.

그리고 존재의 고통으로부터의 일시적 이탈이며, 인생의 괴롭고 무의미함을 잊으려는 경솔한 마취에 지나지 않네.

그런 미천한 도피나 마취쯤은 목동들도 주막집에서 몇 잔의 술을 마시거나, 발효된 야자유를 마시면서 얻을 수 있네. 그러면 그들도 자기를 잊고, 살아가는 고통을 잊을 수 있고, 일시적인 마취에 빠지게 되네. 그들은 술잔을 들고 졸고 있을 때에, 우리가 오랜 세월 도를 닦음으로써 육신을 벗어나 무아의 경지에 이를 때의 세계를 찾아 볼 수 있네"

고빈다가 말했다. "싯다르타,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배웠네. 그렇지만 아직도 배울 것이 많네. 우리는 윤회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높은 세계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걸세. 윤회란 나선 모양과 같아서 우리는 이미 꽤 많은 계단을 올라왔을 것이네.

싯다르타는 말했다 "그는 예순이나 되었으나 아직도 열반(涅盤;불교의 해탈의 경지-역주 )에 이르지 못했네. 그러니 그분은 앞으로 그 상태로 일흔이 되고 여든 살이 될 걸세. 그리고 자네와 나도 그들처럼 늙어 가며, 수도에 힘쓰며, 단식하고 명상에 잠길 걸세. 열반에는 이르지 못할 것 같네. 스승도 우리도 마찬가지일 거야.

친구여, 나는 세상에는 단 하나의 ‘깨달음’만이 있다고 생각하네. 그것은 도처에 흩어져 있네. 그것은 나의 내부에나 자네한테도 있고, 그 밖의 모든 존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트만을 두고 하는 말이네. 그런데 이 아트만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소망, 배우려고 하는 것보다 더 나쁜 적(敵)은 없다고 믿네."

어떤 때는 칭찬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비방하는 것이었다

어떤 것은 희망으로 가득 찬 것이었지만, 어떤 것은 의혹에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배운다는 것 자체에 의문을 느끼고, 스승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자네가 그 곳에 더 머물러 있었더라면 물 위를 걸어가는 법도 터득하게 되었을 텐데그려"

"나는 그런 건 바라지도 않네." 그러면서 싯다르타는 이렇게 덧붙였다. "늙은 사문들이나 그런 기예를 배우는 것에 만족할 것이네."

싯다르타는 유심히 고타마의 머리, 어깨, 발 그리고 조용히 늘어뜨린 팔을 바라보고 그의 손가락 마디까지도 그대로 산 교훈임을 느꼈다. 온몸 이 진리를 말하고 호흡을 하고 향기를 발산하고 진리로 빛나고 있었다

"나의 벗 고빈다, 이제 자네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갔네. 스스로 자네의 길을 선택하였네.

자네는 지금까지 언제나 다정한 친구로서 내 뒤를 따라왔지. 나는 가끔 이렇게 생각해 보았네. 고빈다도 언젠가는 자기 힘으로 혼자서 걸어갈 때가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제 그 때가 왔네. 자네는 혼자서 자기의 길을 택하였네. 친구여, 부디 끝까지 쉬지 말고 그 길을 가게. 그리하여 해탈에 이르기를 축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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