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있는 채로 ‘일어나야지. 일어나자. 일어나야 하는데’ 하는 것과 같아요. 벌떡 일어나면 ‘일어나야지’라는 결심이 필요해요, 안 해요?"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과의 인간관계도 어떻게 좋은 관계로 바꿀 것인지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보세요.
그가 어떻게 행동을 하든지 간에 하라는 대로 해보세요.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고, 상급자가 어떻게 행동해도 그 사람한테 화가 안 나는 것을 목표로 세우세요
지금은 당연히 상급자에 대해서 화가 나겠지만, 자신이 화가 안 일어나는 사람이 되는 걸 목표로 삼고 ‘내가 화가 나네. 나는 화가 안 나는 사람이 목표야!’ 이렇게 자꾸 연습을 해보세요
우리가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알아야 할 점은 ‘사람은 다 고만고만하고 다 이기적’이라는 겁니다.
이기적이라는 게 나쁜 게 아니에요. 인간은 본래 이기적입니다.
내가 이기적인 줄 알아서 상대의 이기적인 면도 인정할 때 인간관계가 원만해집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인간관계를 맺어보면 실망할 확률이 좀 낮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사람 사귀는 연습을 좀 해본 다음에, 그 사람이 마음에 들면 이성으로 사귀는 연습을 해 보세요.
돈이나 물질적인 걸 얻는 것도 복이지만, 인간관계를 잘 만들어가는 것도 큰 복입니다."
이 세상에는 온갖 세균이 있어요. 그런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균들을 모두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균이 들어와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면역력이 있어서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거예요.
면역력이 없어지면 아주 작은 세균에도 병들지요.
몸에 저항력이 없는 사람은 무균상태로 만들어진 유리관 속에서 살아야 해요.
내가 우울증이 있으면 우울증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사는 것이 무균실에서 나와 세균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과 같아요.
때로는 병에 걸리기도 하고 병을 이겨내기도 하면서요.
예방주사의 원리를 보면, 특정 균이 몸에 못 들어오게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균을 미리 몸에 조금 투여하여 면역력이 생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직 면역력이 강하지 않은 상태여서 세균이 너무 많은 곳에 가면 안 됩니다.
우선은 주위 환경이 이해관계가 덜 부딪치는 공간에 가서 사람들과 조금씩 접촉하며 지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아요.
이럴 때 집에만 있는 집콕을 하게 되면 오히려 치유가 잘 안 됩니다. 조금씩 외출하면서 사람들도 만나되 덜 부딪치도록 하는 것이 좋아요.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키웠든 스무 살이 넘으면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세요.
평생 부모님의 노예가 되어 살 수는 없잖아요.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니까요.
몸은 어른이 됐는데,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어린아이 같은 관점을 가진 데서 생긴 문제입니다
질문자는 자기가 저절로 큰 줄 알지만, 아이를 키우려면 아주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 엄마의 손길이 가야 해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은 그들에게 잘 보여 관심받고 싶어서 그래요.
길가의 한 포기 풀은 누가 보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 없이, 꽃 피울 때가 되면 꽃 피우며 그 자리에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늘 나 좀 잘 봐주었으면 싶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거예요.
노예에서 해방되고 싶거든 남 눈치 안 보며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한 포기 풀처럼 사세요.
수행할 때도 ‘나는 한 포기 풀이다’ 하고 반복 암시를 주세요. 처음에는 잘 안 되더라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조금씩 편안해질 거예요. 그런데 남들한테 잘 보여서 뭐하려고 해요?"
세상에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원수가 안 됩니다.
나무와도 원수 된 적이 없고, 풀과도 산과도 원수 된 적이 없는데,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는 원수가 됩니다. 그만큼 기대가 크고 자기 좋아해달라는 요구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 물병은 크다고 할 수도, 작다고 할 수도 없어요. 다만 우리가 크거나 작다고 인식할 뿐이지요.
다시 말해서, 크거나 작다는 것은 존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식에 있는 거예요.
모든 존재는 크거나 작다고 할 수도 없고, 새 것이나 헌 것이라 할 수도 없고, 좋거나 나쁘다고 할 수도 없어요. 다만 그것일 뿐이에요.
내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크게도 작게도 인식되고, 좋거나 나쁘게도 인식되는 거예요. 그러면 질문자가 말한 친구는 좋은 친구예요, 나쁜 친구예요?"
내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크게도 작게도 인식되고, 좋거나 나쁘게도 인식되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인식하는 것일 뿐이지 존재 자체가 그런 게 아니에요
같은 꽃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예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말없이 피어 있는 꽃을 보고도 서로 다른 표현을 하는데 각자 자기 생각과 감정으로 하는 말에 내가 흔들릴 이유가 없지요.
어떤 칭찬이나 비난에도 걸림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사세요.
"실수를 반복한다는 건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거구요.
저기에 목적지가 있고 저곳에 도달하려면 열 걸음을 가야 하는데, 한 걸음 갔는데 도달하지 못하고 두 걸음 세 걸음 갔는데도 도달하지 못했다면 이게 실패일까요? 아니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과정이고 시도이며, 가야 하는 열 걸음 중에 한 걸음입니다.
이런 실수가 왜 문제가 됩니까? 여러분은 한두 번 실수로도 쉽게 좌절하고 괴로워하는데, 그건 어릴 때부터 아무 노력 없이 받기만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살아야 합니다. 누구도 여러분의 인생을 대신해서 살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라님이 대신 살아주겠습니까? 부모가 살아주겠습니까
질문자가 괴로운 것은, 안 되는 게 당연한데도 반드시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사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다고 생각하면, 늘 누군가에게 끌려 다니는 존재가 되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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