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르신만 물고기를 낚는 것인가요?"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자네가 조바심을 내기 때문이야. 나는 그저 조용히 앉아서 기다릴 뿐이지. 자네처럼 걸핏하면 낚싯대를 건드리거나 한숨을 쉬지 않지. 내가 고요히 있으니 물고기들도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야. 그래서 내 주변으로 와서 미끼를 무는 것이지."

마음이 급한 사람은 모든 일이 자신의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한다.

주변 상황의 변화에 적응할 여유도 없고 자신의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는 반드시 자기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느리다고 "바보 같다"며 자존심 해치지 말자

학습하는 속도가 느리면 바보 같다고 놀리는 이들이 있다. 행동이 굼떠도 바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는 신생아인지 모른다. 혼자서 할 줄 아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래도 그런 아기를 바보라며 깔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바보란 무엇일까?

학급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고 단체 생활에서 자신을 드러낸 기회도 없는 데다 집에서마저 부모에게 자주 혼이 나는 아이라면 결국 자신감을 잃기 쉽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든 상대의 자존심을 해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비판이나 거절을 해야 하더라도 사실에 집중해야지 상대가 공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은 피해야 한다.

‘나무는 껍질이 필요하고 사람은 얼굴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얼굴’은 곧 자존심을 의미한다.

자존감이 낮아 자아를 잃게 되면 남을 해치는 단계로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설령 현재 일하는 곳에서 능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도 생각과 자존심이 있다.

그가 다소 무능해 보이는 것도, 현재 자리가 그에게 맞지 않거나 아직 재능을 발견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특출한 재능이 없더라도 근면하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를 무시할 이유는 없다.

상대가 누구든지 가치를 인정하고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힘든 상대에게 "너 이럴 줄 알았다"면서뒷북치지 말자

‘사후 제갈량事後諸葛亮’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뒷북’을 의미한다.

중요한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나중에야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나면, "그러게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 했잖아"라고 말한다.

마치 자기 말을 듣지 않아서 이 지경이 된 것처럼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이러한 태도는 상대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그렇지만, 더욱이 직장에서 ‘사후 제갈량’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적시에 취하지 않은 행동은 나중에 떠벌려봐야 아무런 가치가 없다.

경영자 입장에서 필요한 인재는 기회를 포착하고 닥칠 수 있는 위험을 미리 경고할 수 있는 사람이지, 현장을 방관하다 나중에야 아는 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태풍이나 지진이 이미 휩쓸고 간 뒤에 경보를 울린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만일 책임을 질까 두려워 한발 물러서느라 입을 열지 못했다면, 차라리 끝까지 모른 척하는 것이 낫다.

실의에 빠진 친구에게 "내가 진즉에 그럴 줄 알았지"라는 말을 해서 뭣 하겠는가? 이러한 말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사람을 더 깊은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뿐이다.

아무리 걱정이 되어 한 말이더라도 듣는 처지에서는 위로는커녕 조롱으로 들린다.

간혹 우리는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에 충고를 한다. 이럴 때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내 말에 상대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고 지금의 좋은 관계에 금이 가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상대가 꼭 내 충고를 들어야 하는 법은 없다.

어차피 우리에게는 각자 살아가야 할 길이 있다.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도 있고 패자가 될 수도 있다.

결과에 따라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은 척한다.

내가 잘못했다고 깨달은 것, 또는 후회하는 것을 내 입으로 말하기 겸연쩍기 때문이다.

옆에서 굳이 사후 제갈량 노릇을 하지 않아도 이미 본인들이 알고 있다.

옆에서 해줄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다.

묵묵하게 지금의 어려운 시간을 함께해준다면, 실의에 빠진 상대는 시간이 흘렀을 때 내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따스한 포옹이지 잔소리와 냉소는 아니지 않겠는가?

흘려듣거나 대꾸가 없다면‘내가 우습나요?’로 들린다

비록 지금은 초라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현재 행색이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상상이 가지 않더라도 내가 그 사람과 나중에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어떤 일을 함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누구도 쉽게 대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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