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할 수 없는 모임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떤 모임에 소속되면 그 무리의 규칙을 지키려 하게 된다.
주체적인 내 삶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모임에 소속될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아, 내가 보고 듣는 만큼이 내 세상이구나, 내가 만나는 사람을 보면 내 세상의 크기가 보이는구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환경이 변해야 한다.
내 주변에 좋은 정보가 넘치며, 항상 열심히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으면 본인도 그들과 함께 뭐라도 배우게 된다.
의지로 나를 다스리려 하지 말고 환경으로 나를 바꿔야 한다.
만나는 사람이 한정적이면, 내 삶도 단조롭고 변화가 없다.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를 위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나를 위한 정보는 거의 없다.
나는 엄마라는 틀에서 벗어나 나로서, 나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 살았다. 아이가 어리다는 핑계로 꿈도 미래도 방치한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시시콜콜한 시댁 얘기, 옷을 뱀처럼 질질 흘리며 벗는 남편에 대한 불만에 내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지금 내 삶에 집중하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과 발전하는 ‘우리의 삶’에 대해 토론한다.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키기는 너무나 어렵다. 그러나 모임을 바꾸고 만나는 사람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다. 노는 물을 바꾸자.
더 이상 옆집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말자.
내 인생을 플러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자.
초반에 미친 듯이 달려서 남들보다 고퀄리티로 잘하면 뭐하나, 포기하면 말짱 꽝이다.
조금 느려도, 조금 어설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내 상황 안에서 계속 롱런하는 게 결국 승자다.
가끔 힘들고 지칠 때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가 의문이 든다면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그려보자.
내가 잘되고 싶은 이유도 내 안의 행복, 우리 가족의 행복이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일에 몰입하다 보면, 숲을 잊는 경우가 많다.
조급하게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 결국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거북이처럼 느리게라도 지속하는 게 더 낫다.
이런 식으로 하나가 익숙해지면, 또 하나를 도전하고, 또 하나가 익숙해지면, 그다음 스텝으로 나아갔다.
편해졌다고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았고, 편해진 업무는 편해진 대로 하면서, 또 다른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한 방에 모든 걸 한 게 아니라, 1년 반 동안 하나씩 마스터해가면서 시간 단축을 하고, 그 페이스를 유지하며 또 하나를 추가하는 식을 반복했다.
이미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이를 보면, 저 사람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요새 내가 경험해보니 그렇지도 않다.
그들은 이미 이전의 것들을 선행해서 걸어갔고, 그 일이 익숙해짐에 따라 또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만의 노하우, 인맥, 그리고 삶에 시스템화가 형성되었을 뿐이다.
결국 시작을 했고, 한 가지 완성을 해본 자만이 또 다른 시작을 하고, 또 다른 완성을 해나간다.
승자라는 말이 거부감이 들긴 하지만 어쨌건 완주를 해본 자만이 또 다른 시작을 하고 또 다른 완주를 거듭함으로써 눈덩이처럼 커진 존재감을 발휘하게 된다.
그것이 영향력이고, 그것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나의 재주를 찾고, 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에이, 세상에 잘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제가 뭘로 어떻게." 이런 말 이제 그만하자. 실력이 있으면, "나 잘해요."라고 어필해야 봐주는 시대이다
요즘은 내가 잘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세상에 외쳐야 주목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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