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할은 노예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었다.

주인의 이야기를 전할 사람이 부족한 경우는 없었으니까.




… 프레더릭 더글러스 …

그러나 지금 나는 기억의 경이로운 힘을 안다.

기억이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푸른 문을 열 수 있으며 우리를 산에서 평원으로, 또 푸르른 숲에서 눈이 두껍게 쌓인 들판으로 옮겨줄 수 있다는 것을

내가 그 짧은 온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 빛에서 빠져나오고 보니 내가 물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봐야 죽음이 앞당겨질 뿐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일단 그런 깨달음을 얻고 나자 한쪽에 빛이 있고 다른 쪽은 어둡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며, 어둠은 깊은 물속이고 빛은 그 반대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물장구를 치며 빛 쪽으로 두 팔을 뻗었다

"도와줘!"

나는 그런 처지였다. 나 자신의 목숨이 간당간당할 때조차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라는 요구를 받는 처지였다.

그는 노력을 게을리하다가 제 게으름에 결실이 주어지지 않으면 시무룩해져, 편견에 사로잡혔다.

지금의 나는 노예제도가 그를 죽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노예제도가 메이너드를 어린애로 만든 셈이다. 노예제도가 아무 힘을 쓰지 못하는 세계에 떨어진 지금, 메이너드는 물에 닿는 순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언제나 그를 지켜주었다.

내 발목을 잡는 납덩이가 문득 신경에 거슬렸다. 아주 오래전부터 어쩔 수 없이 끌고 가야 한다고 믿었던, 이제는 영원까지 나를 따라가려 드는 납덩이. 나는 돌아보았다. 지나온 물살 안에 그 짐덩이가 있었다. 나의 형. 울부짖고 발버둥 치고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비는, 나의 형

나는 메이너드의 오른팔이었다. 그래서 나 자신의 팔은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 모든 게 끝났다. 나는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지켜보고 기억하는 데 가장 익숙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내게 들린다기보다 보였다

모든 것이 그렇듯 죽음도 자연스러운 일이야. 이곳보다 더 자연스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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