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실수나 혹은 애석한 불행은
다른 누군가에겐 그걸 피해 가는 힌트가 되어준다
그래서 나는 살아오면서 만든 숱한 철없는 실수와
원치 않았지만 경험한 슬픔 또는 자잘한 불행과 우울을
기록이라도 해야겠다 생각했다.
나의 실수와 애석한 불운을 보고
어느 누군가에겐 그걸 피해 가는 혹은 헤쳐 나가는
작은 힌트라도 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나이가 들어도 좋아하는 것을 보면 망설임 없이
"우-아!" 하는 감탄사를 지르며 살고 싶다.
특히 작고 귀여운 존재 앞에서 너무 좋아 발을 동동 구르며
"우-아!" 하는 환호성으로 행복을 표현하면서 말이다
그깟 일 아무것도 아니다.
그깟 일 별거 아니다.
그깟 일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다고 말이다.
그깟 걸로 기죽지 말라고 말이다
그냥 돈을 쓰며 아무런 의미나 목적, 혹은
남겨지는 추억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행복해서다
쓸데없고 의미 없는 소비를 하지 않고
차곡차곡 모았다면
지금 나는 조금 더 좋은 아파트에서 살고
매끈한 자동차도 타고 다녔을 거라
누군가는 충고해 줄지도 모른다.
그 말도 백번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를 안다.
건강한 소비 습관이나 경제 관념과는
거리가 먼 바보 같은 습관이지만
그런 소소한 낭비가 나를 그나마 지탱하게 해 주었다고.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난 그 말에 반은 긍정하고 반은 부정한다.
내 삶의 적지 않은 시간의 위로는
이렇게 스스로 쓴 소소한 돈에서 만들어졌다고 믿기에
‘힘내!’라는 위로보다 오조오억 배는 확실한 효과가 있는
나만의 소소한 낭비로
잘 살 힘을 얻으라는 파이팅을 전하면서
‘난 원래’라는 말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이들에게 외치고 싶다.
원래 그렇다는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갸우뚱하면
다시 크게 말해주겠다.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원래 없다고.
한 번 더 말해줄게.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원래’ 없다고
누군들 셋째 돼지가 되어 벽돌집에 살고 싶지 않겠냐고.
우리 손에 당장 쥘 수밖에 없는 것이
값싼 밀짚과 가시뿐이라는 현실인 것을.
밀짚과 가시밖에 손에 쥔 게 없음에도
집을 지은 것만으로도
실로 대단한 용기였음을 이제는 아니까.
훈화 말씀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을 길게 늘어놓는
눈치 없는 사람만큼은 되지 말자
글을 쓰다 보면
내 아픔과 슬픔과 아쉬움만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나 에세이는 일기와 같이 감정의 결이 함께 하기에
자칫하다간 지극히 내 슬픔은 과장하고
내 실수는 미화하는 글이 되기도 쉽다
인생은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하니,
내가 내게 상처 준 이름들을 최대한 입을 꾹 닫고
내뱉지 않음으로 누군가에게 상처 주었던 나 또한
부디 용서받기를 바란다고
설거지를 미루고 약속 시각에 맞춰
허둥지둥 나가는 그런 게으름의 종류가 아닌
세상의 숨겨져 있을
빛나는 예술을 찾지 않은 게으름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선택된 순위 차트에 있는 음악만 게으르게 듣는다.
선택된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있는 책만 게으르게 읽는다.
선택된 박스오피스의 영화들만 게으르게 본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
결코 무시 못 할 가치가 있다는 거니까.
다만 나는 그 모든 것들과의 만남에
나의 수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반성한다
대중이란 타이틀을 가졌지만 이미 선택된 것만 즐기는
나의 아쉬운 게으름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반성한다.
그렇게 나는 충분히 선택받아 마땅했던 예술가를
무명으로 만들었을지 모를
나의 게으름을 하찮게라도 갚는다
내가 쉽게 잊지 않길 바라는 행복을 얻는다는 건
저처럼 속물적인 사람으로서는
마냥 만만한 건 아니겠다 싶긴 합니다.
마치 단팥 크림빵을 득템하는 것에
성공하기가 어려운 것처럼요.
그럼에도 선뜻 빵을 사기 위해 길을 나서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되든 안 되든 정말 좋은 행복을 얻기 위해
오늘도 선뜻 살아가는 도전을 할 거예요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방이 지저분하지 않다고 해도 꾸준히 실천하면서
일상 속에서 정리가 습관이 되도록 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오늘 하루 정도 쉬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 들 때는 마법의 문장을 등장시킨다고요.
그 마법의 문장이란
"오늘 하루만 노력하자."라고 말입니다.
물건도 그렇기에 터무니없이 많았던 거죠.
내일 정리해야지, 다음 주에 시간 나면 살펴 봐야지,
몸 좀 덜 피곤할 때 비워야지…. 하며
미루기만 하니 대책 없는 숙제처럼 늘어놓고 살았습니다
오늘 하루만 노력해 보자는
묵묵한 침묵으로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이죠.
그렇게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야
내일의 희망도 연결이 되는 거니까요
"내일은 잘 될 거라 믿어!"라며
현실에서 도피해버리는 대책 없는 오늘보다는,
"오늘 하루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라는
현실을 직시하며 노력하는 오늘입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 하루만이라고 하지만,
그건 삶 전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 누구도 어제를 다시 사는 것도 아니고,
내일을 미리 사는 것도 아니고,
오늘을 사니까 말이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알려주다 보니
자연스레 삶의 의욕이 생김을 느꼈다
어쩌면
정말 위로가 되는 방식은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구체적인 관심을 표현하고
묻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어쩌면
정말 위로가 되는 방식은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구체적인 관심을 표현하고
묻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내일의 내가 조금 덜 외롭기를
내일의 내가 조금 더 힘내기를
오늘의 내가 보내는 달콤한 응원이다.
가능하다면
삶의 기준을 ‘정답’보다는 ‘해답’에 맞춰 살고 싶죠.
정답은 그 외의 것은 전부 오답이 되어버리지만,
해답은 어떤 상황에서도 찾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면
얻을 수 있으니까요
정답은 없다고,
느리게라도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요.
시기와 질투가 끼어들면
기쁨이 주는 환희는 모두 반 토막이 된다.
괜한 자격지심과 타인과의 비교로
자신의 처지를 우울하게 여기고,
상대방의 모든 상황을 어깃장 놓는 시선으로 보게 되므로.
타인을 부러워하며
시기(猜忌)로 낭비하던 삶이 아닌,
나 자신에 온전히 몰입하는
삶의 시기(時機)에 집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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