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유를 들어 옳고 그름을 밝히는 논증이 체스 게임과 같다고 생각해왔다
체스 게임과 논증이 비슷하긴 해도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다. 모두가 체스 두는 법을 배울 필요는 없지만, 논증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일상에서 논쟁과 마주친다.
따라서 토론의 규칙과 작전을 배우는 것은 올바른 문법과 요리법을 배우는 것 못지않게 삶의 필수적인 기술이다.
논증에 숙달되면 정확히 어떻게 우리의 삶이 나아지게 될까?
첫째로 논증은 정치, 경제, 학문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중요한 질문의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여러 다른, 또는 반대되는 이슈와 가치 명제를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시각으로 따져봐야 한다.
따라서 가장 설득력 있게 논증을 펼치는 사람이 최선의 답을 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는 논리를 가장한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가는 일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이 책에 근거를 악용한 실제 사례가 줄줄이 등장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그중 하나에 당하거나, 이미 당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궁극적으로 논리를 파악하는 능숙함은 상대방을 대하는 방식을 두 가지 면에서 향상시켜줄 것이다.
일단 논리가 불쑥 침범해올 때 속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지적할 수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날카롭게 응수하면 논증을 끝장낼 수 있다.
때로는 당신이 정확하게 오류의 이름을 대기라도 하면 당신의 권위가 더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상 대화에서는 좀 더 영리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세심하고도 적절하게 대응을 할 수 있는지도 알려줄 것이다.
둘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당신은 좀 더 나은 논증을 만들 수 있고 매섭게 응수당하는 쪽에 놓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의 논증이 공격받기 쉬움을 알아차리는 것은 우리도 그처럼 공격받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유용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에서 선생으로서, 형제자매로서, 친구로서 등등 누군가에게 뭔가를 끊임없이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누군가의 말에 혹하지 않고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사적으로 혹은 공적으로 대답을 더 잘하게 될 것이다.
생각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 최고의 논증자이며 자신의 관점을 최고로 잘 방어하는 사람이다.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인물 A가 P를 주장한다. 인물 B가 A는 형편없는 사람이므로 P가 거짓이라고 진술한다.
정의 논증하는 내용은 논박하지 않고, 그 논증을 펴는 사람을 모욕하는 방식으로 공격하는 것
이처럼 주장을 펴는 사람의 인종, 계급, 성별을 공격하는 것은 대인논증 중에서도 특히 악질적인 사례다
대인논증은 그야말로 논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논증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으며, 논증을 제시한 사람의 됨됨이에 대해 말할 뿐이다(사실은 대인논증을 남용하는 상대방의 됨됨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인물 A가 P를 주장한다. A가 처한 상황이 P라는 주장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따라서 우리는 P를 믿지 말아야 한다.
정의 논증을 펴는 인물에 관한 특정 사실을 끌어들여 논증의 신뢰성을 약화시키는 것.
상대방이 이해관계를 문제 삼는다면, 당신은 논증에 치우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즉, 주장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허점을 찾게 하거나, 중립적인 제삼자에게서 당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공정한 증언을 구해야 한다.
인물 A가 P라고 논증한다. 그런데 제삼자인 B도 P라고 논증한다. B는 행실이 불미스럽다. 그러므로 우리는 P를 믿지 말아야 한다. 또는 논증 P의 제시자가 B와 어울려 지낸다. 그런데 B의 행실이 불미스럽다. 그러므로 우리는 P를 믿지 말아야 한다.
정의 논증을 펴는 사람과 연관 있는 사람이나 단체, 또는 논증에 연관 있는 사람이나 단체를 비방해 논증을 공격하는 것.
형태 어떤 인물이 Q라는 특정 행위나 행동에 반대하는 논증 P를 펼친다. 그런데 그 인물이 Q에 관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P를 믿지 말아야 한다.
정의 특정 행위나 행동에 반대하는 논증을 편 인물이 그 행위나 행동에 관여되어 있다는 이유로, 상대방이 그 논증을 약화시키는 것
모든 대인논증과 마찬가지로, 논증을 편 사람에 대해 신경 쓰지 말고 논증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본질을 논증하자는 것이지, 각자의 행동을 논증하자는 게 아니다.
이 논증은 라틴어로 ‘Tu quoque’인데, ‘너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어떤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 그 행위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숯이 검정 나무란다.’는 속담이 바로 이런 경우에 들어맞는다
인물 A가 P라고 논증한다. 상대방 B는 P를 뒷받침하는 논증을 다루지 않고, P를 조롱함으로써 P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정의 당면한 문제를 다루지 않고 조롱으로 상대방의 논증을 공격하는 것. 예컨대 상대방의 논증을 비꼬는 투로 되풀이하는 것.
이것은 그야말로 논증이 아니다. 상대방이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고, 당신의 논증이 왜 부당한지 보여주지도 않으며, 토론에 실질적인 내용을 새롭게 보태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당신의 논증이 우스꽝스럽게 보이도록 힘쓸 뿐이다.
상대방에게 실제로 반박거리가 있는지, 아니면 우스꽝스럽게 굴면서 청중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것인지 물어야 한다
이런 논증을 쓰는 사람은 상대방의 논증을 조롱함으로써, 상대방의 논증이 어리석다고 암시할 뿐 아니라 그 논증을 옹호하는 상대방도 어리석다는 것을 내비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청중들로 하여금 그런 논증을 믿는 사람들도 어리석다고 믿게 만든다
‘조롱에 기대기’는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차단한다. 그래서 그토록 효과적인 것이다
인물 A와 인물 B가 P라는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B가 평소 버릇대로 P와 무관한 주제 Q를 제시한다.
정의 토론자가 논증과 전혀 무관한,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를 제시함으로써 토론을 궤도에서 이탈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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