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이 누군가의 독서를 확장시키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삶이 보다 두터워지는 데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램비에이스는 서점에 오자마자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게 말이야, 처음엔 그다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점점 좋아지더라니까, 와."

(2017, 루페)— 개브리얼 제빈, 《섬에 있는 서점》

나를 매혹하는 것이 나의 일이 될 때, 일은 삶의 각별한 일부가 된다

모니터가 아마 거울이었다면 분명 내 눈이 반짝이는 걸 발견했을 것이다. 사람은 즐거우면 우선 눈빛이 달라진다. 일과 삶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다"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오십 개의 섬들"에 대한 책이 실용적인 ‘필요’에 의해 탄생했을 리는 없다. 이런 이야기는 세상의 요청 없이 오로지 한 사람의 마음에서 태어난다.

애정의 크기가 마음의 용량을 차고 넘쳐서 밖으로 꺼낼 수밖에 없을 때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나온다.

글을 쓰고 지도를 그리는 내내 작가의 얼굴은 상기되었을 것만 같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공을 들이고 싶은 일을 상기된 얼굴로 하고 싶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조각난 풍경보다 지하철에서 읽는 책 속의 풍경이 더 만족스럽다

서울 사람들은 어디서나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모습이 매정해 보이기보다 근사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빠르게 동화되었다

서연(書緣, 책의 인연)

지하철은 땅 아래(sub) 있어서 subway지만, 내겐 일과 육아 외에도 필요한 시간을 대체(sub)해줘서 sub-way다.

아이가 아프니 일상은 비상이 되었다. 큰 병에 걸린 것도 아니니 호들갑을 떠는 것이긴 한데, 그 호들갑스런 상태가 내 마음의 정확한 상태였다

경험은 익숙함과 능숙함을 선사했지만 평정은 가져다주지 못했다.

아이는 앞으로도 몇 번이고 아플 테지만, 나는 더 능숙해지겠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편안하지는 못할 것 같다. 경험이 더 쌓이면 다를까. 글쎄, 부모란 결코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 같다고, 지금은 느끼고 있다

이런 생각도 자주 든다. ‘부모’라는 이름과 ‘나’라는 이름을 나란히 놓고, 아무리 둘의 균형을 잘 유지하려 해도, 결국엔 ‘부모’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 어쩌면 이 둘의 균형점이란 한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상태를 일컫는 것 같다는 생각. 앞으로의 내 삶은 아이를 향해 기울어진 상태를 받아들이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상의 중압감에 눌려서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대화를 회피할 때가 많다.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가장 적게 논의한다.

(2016, 어크로스— 시어도어 젤딘, 《인생의 발견》

평소에 늘 너에게 마음을 쏟겠다고.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낸 후에야 네 차례가 오게 하지 않겠다고. 네가 잠든 후에도 너의 마음을 생각하겠다고.

이런 책들을 연이어 읽다 보면 낮이 밤이 되고 새벽이 되었다. 시간을 잘게 토막 내지 않고 길게길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책을 덮을 즈음엔 어느덧 다시 시동을 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모니터를 보며 밥 먹고 잠들고 누웠다 앉았다 다시 눕길 한참 반복했다.

생활 리듬이 뒤바뀌어 피곤할 것만 같은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는 오히려 회복되었음을 느꼈다. 현실의 시간 감각에서 나를 잠시 놓아주는 일이 나를 정화시키는 것 같았다.

운전이 미숙한 시간을 통과하자 오히려 운전은 ‘작은 숨구멍’을 만들어주었다. 두려웠던 공간에서 포근함을 느끼고 있다

‘부모의 삶’과 구분되는 ‘개인의 삶’도 분명 필요하다. 내게(그리고 누구에게나) ‘라이프’는 하나가 아니다.

인생을 구성하는 각각의 삶에 어느 정도는 균형 있게 시간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게 바로 ‘라라밸’이다.

해야만 할 일을 잊고 다른 무언가에 오롯하게 몰입하는 시간. 그것만으로도 그날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우선순위에 놓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운동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여행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친구와의 만남일 수 있다. 내겐 책 읽기가 일순위다.

책에서 얻는 작은 만족감을 일상에서 작지만 꾸준하게 쌓길 원한다.

어느 하나에 집중해서 대단히 잘할 때보다, 어느 하나에도 소홀하지 않을 때 나는 행복하다. 일에, 가족에게, 나 자신에게 시간을 고루 들이고 싶다

아내의 진통을 옆에서 꼬박 지켜본 남편이라면 모두 동의할 것이다. 세상에 순산은 없다

아이가 첫 돌을 맞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장면은 아이를 처음 안았던 순간이 아니라, 아내가 덜덜 떨던 모습이었다. 텅 비어가던 눈동자였다. 먹이지 못한 순댓국이었다. 돌잔치 날 아이를 안고 부모의 소감을 말하면서, 나는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처음으로 울음을 쏟아냈다.

목표는 내 것이지만 목표를 달성할 수단은 내 손에 쥐여져 있지 않다.

모든 부모는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목표와 책임을 부여 받지만, 실제로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부모가 온전히 좌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아이도 아주 가까운 ‘타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고, 가 닿으려고 노력할 때, 그때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건 우리의 노력과는 무관한 일이다. 하지만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의 영혼에 어떤 문장이 쓰여지느냐는 것이다.

(2014, 문학동네)— 김연수, 《소설가의 일》

거절하는 일도 고역이다. 부탁하는 입장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매번 거절해야 하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고충은 있다.

온라인 서점 MD에게 필요한 자질 중 하나가 ‘거절의 고충’을 견디는 힘이다. 책의 가치와 입지를 이해하는 일, 시장의 흐름을 읽는 일, 적절하게 판매 계획을 수립하고 재고를 관리하는 일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그래도 잘 거절하는 것은 MD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자질이다.

다른 능력들이 ‘책’이나 ‘출판사’ 또는 ‘서점’을 위한 것이라면, 거절의 힘겨움을 견디는 능력은 ‘나’를 위한 것이다.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이 자꾸 쌓이면 자신의 마음이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초도 수량과 메인 노출에 대한 부탁은 끝없이 밀려온다. 한 권의 책이 출간되면 그만큼의 부탁이 함께 태어난다. 부탁은 대부분 노골적이지 않고 은근하다.

수많은 책 중 몇 권의 책을 골라내야 하는 입장에서 나는 늘 정당한 기대와 책임감을 배반하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의 기대에 화답하지 못하는 일이 쌓이면 스스로 당당하기 힘들다.

출판사는 ‘그 책’을 팔아야 하지만 서점은 ‘다른 책’을 팔아도 된다

상대에게 냉랭을 넘어 무례했던 날엔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내가 놓인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 뿐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자주 다독였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MD가 처한 상황이 ‘거절’과 ‘딱딱함’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나는 참 인격이 얄팍한 인간이구나,
인정하니 비로소 마음속 찜찜함이 사라졌다

‘배달받는 마음’은 익히 알지만 ‘배달하는 마음’은 헤아려본 적 없는 ‘무지’가 어쩌면 이 사태의 본질은 아닐까

누군가의 ‘일하는 마음’을 읽으며 계속 곱씹어보려 한다. 가급적 폐는 끼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대개 누군가와 얽혀 일하는 인생이니까.

나는 내 취향을 닮은 한편 나의 부족한 면은 극복한 존재로 아이의 미래를 그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삶은 나의 몫이고 아이 삶은 아이 몫이다.

부모는 가능한 만큼 넓은 여백을 주고, 아이는 자기 마음에서 피어 오른 것들로 인생을 채워가야 한다. 스스로 겪고 느낀 것만이, 결정적으로 삶에 깊이 뿌리내리므로.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

(2018, 한겨레출판—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최선이라는 말은 엄격하다.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해도 내가 최선을 다했는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돌아보면 늘 조금은 더 열심을 쏟을 여지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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