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의 원인은 자신에게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인생은 원래 가시밭길’이라든지 ‘고독한 팔자’ 혹은 ‘기구한 운명’ 따위의 핑계로 자신을 몰아붙여선 안 된다.

불행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는 순간 자라난다.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르는 원인은 일상에서 다양한 역할 수행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비롯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마음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자신의 그림자를 들여다봐야만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자정 작용을 시작하는 스위치를 스스로 누르는 순간, 지금까지 자신을 압박하던 모든 고민이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사회심리학은 개인와 집단의 사회심리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은 또 다른 개인 혹은 집단과 서로 교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조율한다. 또 타인과 관계를 맺고 이를 유지하면서 자아를 알아가고 개성을 발휘한다. 이러한 개인의 심리현상은 집단과 사회 전체의 분위기까지 좌우한다.

인생이라는 큰 무대에서 박수갈채를 받고 싶다면 여러 페르소나를 연출하는 배우가 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우리 주변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능력을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것을 겸손의 미덕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귀하처럼 소극적인 지원자는 입사 후 실제 업무에 투입되었을 때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결국 그 이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아쉽지만 귀하의 탈락은 불가피한 결정이었습니다

제아무리 능력자라 해도 스스로 존재감을 입증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잠재력을 알아주지 않는다. 즉 모든 이에게 공평한 기회가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만약 상사의 지시 사항이 부당하다고 느낄 때는 그 자리에서 즉각적인 반대 의견을 내놓기보다는 개인적인 자리에서 조용히 반론을 제시하거나 이성적인 피드백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눈은 영혼의 창이다. 비록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지만 말은 진솔한 감정을 모두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눈빛은 천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눈치 경쟁이 치열한 직장에서 상사의 눈빛을 읽는 일은 때때로 업무 능력보다 중시된다

자신을 발탁해준 상사나 조직과 운명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위기와 어려움을 함께 하는 일은 자신의 잠재력을 시험하는 절호의 기회이자 도덕 수준과 품행을 입증하는 관건이 된다.

끈끈한 동지애는 시련 앞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지 않은가

꽃길만 걷고 싶은가? 그렇다면 발아래 잡초부터 뽑아야 한다. 직장은 호사를 누리러 가는 곳이 아니다. 궂은일이라고 마다하거나 하찮은 일이라고 거들떠보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업무인데도 거창한 명분만 따지려 들면 답이 없다.

오히려 응달처럼 볕 들지 않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본분을 다하다 보면 상사의 오른팔이 되어 주목받는 날이 올 것이다

일상에서 불거지는 모든 문제를 항상 상대의 입장과 시각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속마음을 헤아리려는 역지사지의 태도가 필요하다.

상대라면 어떻게 느끼고 행동했을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봐야 하는 것이다

실수하고 나서 주눅 든 모습을 보이거나 의기소침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무능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인간의 잔인한 속성 하나가 약자를 향해 더욱 무자비하게 돌을 던진다는 것이다.

‘포연 없는 전쟁’에 비유되는 직장 생활에서 약자로 인식되기 시작하면 어디에도 숨을 참호가 없다. 잘못 낙인 찍히면 영원히 이미지를 회복하기 어렵다

맥스웰 몰츠(Maxwell Maltz)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련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상상해보라. 도망칠 것인가? 우회할 것인가? 현실을 직시하고 시련을 친구로 삼으면 이를 뛰어넘을 진취적이고 현명한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의 충고는 인생의 시련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방식임에 틀림없다.

"백번을 보면 뜻을 깨우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반복적인 학습 효과를 강조하는 것으로,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법은 사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노출 효과를 노린 오래된 학습법이다.

중국엔 "신임 관리가 오면 횃불을 세 개 밝힌다"는 속담이 있다. 옛날 신임 관리들은 부임 초기에 ‘횃불’을 환히 밝혀가며 밤샘 공무를 수행했다.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고을의 백성과 하급 관리의 눈에는 ‘훌륭한 관리’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노출 효과
자주 보면 좋게 보이고
오래 보면 마음이 열린다

당신도 모임의 꽃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셀럽’이라고 부르는 인기남, 인기녀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낯선 이와의 만남을 거부하지 않는다.

첫 대면에서 통성명을 하고 나면 친근감이 생길 때까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상대를 공략한다. 물론 사회 초년생들이 이런 노출 전략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므로 평소에 몇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타인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싶은 심리는 인간의 본성이다. 이는 대중 앞에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노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

따라서 시간과 장소를 적절히 활용하는 노출 전략을 통해 ‘지명도’를 쌓아간다면 만인의 사랑을 받는 모임의 꽃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에만 가면 갑자기 긴장하거나 뻣뻣해지는 폐쇄적인 성향이라면, 안타깝지만 노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이들은 아무리 여러 번 얼굴을 익힌 사이라 해도 호감도 상승은 고사하고 ‘누구시더라’ 하는 눈빛 앞에서 사교성이 부족한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매너 있는 ‘인싸’가 사랑받는다

‘적극적인 모임 주도형 인간’이 돼라. 직장 동료나 지인의 크고 작은 일에는 될 수 있으면 빠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만약 불특정 다수가 모인 공적 성향의 모임이라면 개인적인 매력을 발산하되 지나친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인 호감도 역시 모임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러서야 정점에 다다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미소를 띠고 베푸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쾌활하고 상냥한 이미지를 만들고 대외 봉사를 즐겨라.
사심 없이 아끼지 않고 베풀 때 내가 베푼 만큼 나에게도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뿐만 아니라 좋은 이미지도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인 셈이다.

안부 묻기를 쑥스러워하지 말자

일상에서 가벼운 안부 인사를 수시로 주고받는 습관을 들여라. 문득 생각나서 보낸 듯한 소소한 안부 문자가 상대의 호감을 자연스레 이끌어낼 수 있다.

생일이나 명절 따위에 축하 인사를 건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를 계기로 나와 상대방 모두가 기쁘고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작은 선물이 될 것이다

영국의 유물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진정한 연설가는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가벼운 농담에서도 심오한 통찰을 이끌어낸다. 사교의 고수들은 대화의 흐름을 쥐고 있으며 어느 장소에 가든지 찬사를 받는다"고 말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적보다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 사회생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반드시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해도 대화가 오고 가는 도중에 능수능란하게 주제를 이끌어낸다면 호감도 면에서 후한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사전 조사만이 승리의 발판이 된다

인간관계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하며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다각도의 분석이 요구된다.

만나는 목적에 따라 이해의 방향과 깊이를 조절해야 하는데, 냉엄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중요한 협상을 앞둔 경우에는 치밀한 사전 조사가 필수다.

대화가 유쾌하면 모두가 유쾌해진다

불특정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화제를 선택할 때는 개개인의 상황을 세심하게 판단하라. 구성원들의 개인적 정서와 입장을 고려해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분위기를 띄우는 립 서비스를 아끼지 말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이다

우아함을 잃지 않는 것이 대화의 무기다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친근한 대화 주제를 선택해야 한다. 개인사에 치우치는 사적인 주제는 최대한 피하고 공감대 형성에 적합한 주제를 선택하는 전략적 안목이 필요하다.

"실력으로 따지면 여러분이 저보다 능력자라고 생각해요. 단지 제가 운이 좋은 편이었나 봅니다.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여러분의 아이디어도 빛을 발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동료끼리 서로 이끌어줘서 회사가 성장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잖아요."

스스로 존중받고 싶으면 상대를 먼저 높여야 한다. 처음 보는 상대에게 극존칭을 쓰거나 겸양의 표현을 사용한다면 누구라도 경계를 풀 수밖에 없다. 상황과 직급에 맞는 적절한 호칭과 겸양어(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편을 높이는 말)는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에티켓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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