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아리를 할 때는 카메라가 갖고 싶어서 6개월 정도 학교 매점에서 도넛을 팔았다." "1995년에 결혼해서 2003년 〈살인의 추억〉 개봉까지 굉장히 힘들었다. 대학 동기가 집에 쌀도 갖다줄 정도였다." "첫 영화 〈플란다스의 개〉 시사회 때 영화가 끝나기 전에 자막 올라가기 시작할 때 뛰쳐나왔다. 얼굴이 새빨개졌다. 너무 외롭고 창피했다." "영화 〈괴물〉 촬영 전에는 투자자를 찾기 쉽지 않았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작업한 회사와 예산 때문에 결국 계약이 결렬됐다. 그때 자살하려고 했다. 자살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이미 촬영 일정은 발표가 된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되니 나 자신이 사기꾼처럼 느껴졌다."1

MBC 스페셜- 감독 봉준호

대학생이 자신의 꿈을 위해 학교 매점에서 도넛을 파는 거야 장려할 일이겠지만, 결혼 후에도 집에 쌀이 떨어질 정도로 꿈에만 미쳐 있다면, 더욱 부정적인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영화가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 이후 투자자를 찾지 못해 자신을 사기꾼처럼 느끼면서 자살 생각을 많이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면, "살기 위해서라도 꿈을 버리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의 정치학

제가 정작 관심을 갖는 건 ‘꿈의 정치학’입니다. 지금 우리는 학생이나 청년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해도 욕을 먹고, 아예 꿈을 갖지 말라고 해도 욕을 먹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회학자 엄기호는 "자본주의는 청춘들에게 ‘꿈’을 꾸라고 강요하고, 그 ‘꿈’을 실현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거의 공짜로 착취한다"며 "꿈은 자본주의가 청춘에 깔아놓은 가장 잔인한 덫이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너 하고 싶은 걸 해. 나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폭력인지에 대해선 잘 모른다는 겁니다.4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세상 물정 모르거나 참 무책임한 말이 될 수도 있겠지요

꿈에 대해 어떤 취향을 갖고 있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 인간은 꿈 없인 살 수 없는 ‘꿈꾸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그 꿈을 확률을 앞세운 사회과학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건 제3자의 자유일망정 꿈을 가진 주체는 그럴 필요가 없지요.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매우 낮은 확률을 이겨냈으며, 실패한 꿈에 대한 책임은 제3자가 지는 게 아니라 꿈을 꾼 자신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회가 져야 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책임의 개인화’가 아닙니다. 사회가 어떤 책임을 지건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과 판단은 자신이 내려야 하며 그 책임은 자신에게 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꿈을 둘러싼 논란은 대부분 제3자의 강요나 조언 때문에 빚어지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모든 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강요나 조언을 삼가는 게 필요합니다.

사실과 의견의 구분도 필요하겠지요. 13만 5,800분의 1 이하라는 확률은 제시해줄 수 있겠지만, 평범하게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 자살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에게 "살기 위해서라도 꿈을 버리라"고 말할 순 있겠지만, 제3자가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을 알 길은 없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나는 밤에 꿈꾸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꿈꾼다. 나는 살아가기 위해 꿈을 꾼다"

미국 과학자 로버트 고다르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이고 내일의 현실이기 때문에 무엇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가요? 꼭 성공해야만 하는 건가요? 삶은 연애와 비슷합니다. 누구의 강요나 압력이 아닌, 나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일 때에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 생깁니다.

미국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삶을 사랑하면 삶도 당신을 사랑해줍니다"라고 했지요.6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잘 생각해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사랑해서 택한 주체적 삶의 방식이 어찌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미국 IT 미래학자 니컬러스 카
"데이터를 수집하는 효율적인 시간도 필요하지만 생각하는 비효율적인 시간도 필요하다. 휴대폰을 만지는 시간이 필요하듯 한가롭게 정원에 앉아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정말 모를 게 세상일인가 봅니다. 모든 면에서 선진국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라들이 코로나19에 대한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대처로 무너지는 걸 지켜보면서 흔들리는 게 하나둘이 아닙니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의 차이를 실감하면서 세상을 보는, 아니 나의 삶을 보는 시각도 그렇게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배움엔 끝이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새삼 "수렁 속에서도 별은 보인다"는 말의 무게를 실감하면서, 희망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더욱 잘해보자는 의지를 다지게 됩니다. 이 책이 그런 희망과 의지를 북돋을 수 있는 ‘세렌디피티’의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아무리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도 인용이 많은 글이나 책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역발상을 껴안기도 합니다. 많은 인용이 싫다면, 아예 인용 중심으로 특화된 책은 어떻겠느냐는 거죠. 다른 쓰임새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심정으로 독자들 앞에 다시 섰습니다만, 어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자기계발 베스트셀러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저자인 스펜서 존슨도 『선물』(2003)이라는 책에서 비슷한 말을 했지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현재의 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지금이다!"11

"언제든 우리를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많은 외적 압박에 그때그때 대응하려다 보니 계획을 세우는 인간의 능력은 퇴화하고 있으며 계획을 지키는 능력은 그에 못 미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굳건히 발 디딜 곳을 찾기보다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자극과 지시에 끊임없이 반응할 수밖에 없는 신세다."16

볼테르는 오랫동안 사랑과 우정의 경계를 넘나들던 친구인 샤틀리에 부인에게 정식으로 사랑을 고백했지만 거부당하고 말지요. 그는 흐느껴 울면서 이런 편지를 씁니다. "사람은 두 번 죽소. 이제야 그걸 깨달았지.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없거나 자신이 더이상 사랑스럽지 않을 때 그게 바로 참을 수 없는 죽음이오. 사는 걸 멈추는 것은 오히려 쉽소."17

영국 시인 프랜시스 톰슨은 "우리는 타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고 했고,20 프랑스 정신분석가 피에라 올라니에는 "나는 고통스러워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지요.21 인간인 이상 고통은 피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을 종종 고통이 부재하는 상태로 상상한다. 하지만 진실은 그 정반대이다. 견뎌낸다는 의미로,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24

"새로운 행복을 경험하게 되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일종의 쳇바퀴를 타는 셈이다. ‘쾌락’이란 쳇바퀴를. 행복을 유지하려면 계속 쳇바퀴를 굴려야 한다."

"재난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영원한 허상을 버려라. 그리고 재난은 모든 걸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쓸어간다는 생각도 버려라. 전염병은 쫓겨나서 위험 속에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사람들을 집중 공격한다. 에이즈도 마찬가지다."34

그러나 재난은 점차 정반대로 변하면서 계층이 나뉘어 있는 끔찍한 미래를 보여주었다. 경쟁과 돈으로 생존을 사는 세상 말이다."35

재난이 사람, 즉 사람의 계급을 차별하는 현상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런 계급의 차이를 넘어서는 재난도 있지요. 때로 재난은 국경도 넘어서고 앙숙들끼리도 손을 잡게 만듭니다.

"눈물이 우리의 공동 언어가 될 줄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그리스 아테네에서 터키의 텔레비전 방송사 기자가 마이크에 대고 외친 말입니다.

영어로 뜻풀이를 해보자면, ‘재난disaster’은 ‘별astro’이 ‘없는dis’ 상태를 가리킵니다.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별을 보고 항로를 찾던 선원들에게 별이 사라진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지요. 마찬가지로 절망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은 개인은 극심한 혼돈과 무기력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별을 바라보는 걸 멈출 수 있겠습니까? "수렁 속에서도 별은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가 빠진 재난의 수렁 속에서 ‘희망과 관용과 연대의 힘’이라는 별을 보면서 극복의 의지를 다져나가는 동시에 새로운 삶의 방식도 찾아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왜 우리는 불안해하는 걸까요? "사람이 짐승이거나 천사였다면 불안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짐승이며 동시에 천사이기 때문에 불안을 느낄 수 있고, 불안이 클수록 더 위대한 사람이다."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의 말입니다.

‘불안이 클수록 더 위대한 사람’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요? 불안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은 아닐까요? 그런 의문이 들긴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불안 관리’의 필요성입니다. "불안을 전혀 모르거나 혹은 불안에 파묻혀서 파멸하지 않으려면 누구나 반드시 불안에 대해 알아가는 모험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따라서 적당히 불안해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일을 배운 사람이다."41

"태어난다는 행위는 불안을 최초로 경험하는 것이고, 따라서 출생은 불안의 근원이자 원형이다."42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오스트리아 정신병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입니다.

"불안은 걱정이 아니다. 걱정은 불안이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트랑 베르줄리의 말입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걱정은 심리학적 상태이며, 불안은 존재론적 상태이다. 이 둘 사이에는 철학과 병리학 사이를 가르는 깊은 구덩이가 존재한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이데거에서 사르트르에 이르는 실존주의적 사상들은 하나같이 ‘불안’을 토대로 사색을 전개했으며, 객관적으로 독립된 의식은 없고 오로지 살아 숨쉬며 반응하는 의식만이 존재함을 역설해왔다."45

"‘공연한 불안’에 대처하는 내 나름의 해결책은 걱정거리의 내용을 노트에 구체적으로 적는 일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말입니다.

"제목을 붙여 적다 보면 걱정거리는 ‘개념화’된다. 내 걱정거리의 대부분은 아무 ‘쓸데없는 것’임을 바로 깨닫게 된다. 아주 기초적인 셀프 ‘인지 치료’다. 간단한 덧셈과 뺄셈은 암산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복잡한 계산은 노트에 수식을 적어가며 풀어야 한다. 마찬가지다. 다양한 경로로 축적된 ‘공연한 불안’ 역시 ‘개념화’라는 인지적 수식 계산을 통해 처리해야 한다. 생각이 복잡할 때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이유는 바로 이 ‘개념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48

"어쩌면 불안은 사치인지도 모른다. ‘진짜’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았을 때에만 누릴 수 있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중세 유럽인들은 (현대인들과는 달리) 두려워해야 할 진짜 위협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불안해할 여유가 없었을지 모른다."49

세상 사람 모두가
서로를 두려워한다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작 〈절규〉(1893)는 워낙 유명해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그림입니다. 그는 실존의 고통과 공포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 그림에 대해 설명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들은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나만이 공포에 떨며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질러가는 것 같았다."50

뭉크가 느낀 공포의 정도가 심하긴 했겠지만, 공포는 인간의 기본 조건이라는 게 많은 사상가의 주장입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는 "공포라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감정이고 근본적 감정이다. 공포로부터 모든 것, 타고난 죄와 타고난 덕이 설명된다"고 했습니다.53 미국 정치학자 해나 아렌트는 "공포는 생존에 절대 필요한 감정이다"고 했지요.54

랠프 월도 에머슨
"당신이 두려워하는 일을 하라. 그러면 두려움의 죽음은 확실해진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공포는 미신의 주요 근원이며 잔인성의 주요 근원 중 하나이다. 공포를 정복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우리가 두렵게 생각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3년 3월 4일 취임 연설에서 대공황 극복 의지를 밝히며 한 말입니다.

원조는 "두려움만큼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 초월주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이지요.56 소로의 글은 1851년에 발표된 것인데, 이 또한 독창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 영국에서 비슷한 글들이 발표되었거든요. 1623년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1831년 군인이자 정치가인 아서 웰즐리도 거의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억되는 건 오직 루스벨트뿐이지요.57

"두려움은 피하는 게 아니라 이해해야 할 대상이다." 인도 사상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입니다.

"도망치거나 통제하고 억압하려 하거나 저항하려 들기에 앞서 먼저 두려움의 실체를 이해해야 한다. 즉, 두려움을 그대로 바라보고, 연구하고, 맞닥뜨려야 한다."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