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표가 처음부터 회사원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16년째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회사일에 딱히 소질이나 적성이랄 게 없다 보니
(회사가 파도고, 회사원이 파도타기 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멋있게 파도를 타 넘는 서퍼는 아니었고
무작정 보드를 꽉 붙들고 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이젠 알 것 같습니다.

보드를 잡고 발버둥치던 순간이 삶의 근육이었고,
반짝이던 물결과 귓전의 바람이 삶의 위로였음을.
사실은 그런 게 우리가 살면서 가질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최고의 서퍼란 가장 즐겁게 타는 서퍼를 말합니다.(필 에드워드)
노련한 서퍼는 아니어도끈질긴 서퍼, 
나아가 가장 즐거운 서퍼에 도전하는365일의 기록입니다.

벌어먹는 일을 하느라 하루 종일 일한 뒤에나는 피곤했다.
이제 나 자신의 일은 또 하루를 손해보았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그러나 나는 천천히 시작했고,
천천히 힘이 내게 돌아왔다.
분명히, 밀물은 하루에 두 번씩 온다.
찰스 레즈니코프

올해 첫날엔 그런 걸 했었다. 처음 본 것, 처음 만난 사람, 처음 들은 말, 처음 먹은 음식, 처음 본 책, 처음 들은 음악, 처음 산 것, 새해의
‘처음‘을 전부 적는 일이었다. 눈 뜨자마자 핸드폰 보고, 늘 그렇듯 스타벅스에서 전날 읽다 만 책을 펼쳤으니 새로운 건 하나도 없었다. 단지
‘처음‘이라는 꼬리표를 붙임으로써 그 모든 게 ‘2019년의 처음으로 영원히 남게됐다

고작해야 회사에서 심기를 거슬렀던 사소한 한마디 따위가 오늘의 인상적인 일‘로 남는 날들의 연속이다. 더이상 새로운 향수를 갖는일이 설레지 않을 때 향수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런 모양이구나, 이런감촉이었지, 멀리 놨다 가까이 봤다 해가며 연필로 포착하는 처음의기록. 다 익숙하고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토록 처음이라니, 아직도멀었다. 그 아직도 멀었음이 나를 설레게 한다. 오늘부터 그린다. 나의첫, 모든 것.

2. 더 할까 말까 할 때가 바로 안 할 때다.
나이 앞자리에 4자 들어가는 순간부터 무조건 이 말을 책상머리에 써붙여놔야 한다고 외칩니다. 조금만 더 하면 좋을 것 같을 때가 바로 안 할 때다! 내일 할 일을 오늘 해치우면 네 건강도 해치워진다! 넌일을 못할 때가 아니라 몸이 상할 때 갈아치워진다! ‘이것만 더 하면 이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릴 때, ‘아하, 이때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날 때로구나‘라고 인식하도록 하자.

3. 네가 기분이 나쁜 것은 네가 해결해야 할 네 일이다.
내게 직접적으로 불평, 주문, 지시, 부탁을 하지 않는 한 너의 기분은 네가 해결해야 할 너의 일이다. 비언어적 제스처에 마음쓰기, 빙빙 돌린 말을 해석하려 애쓰기를 멈추고 표면에만 반응하는 눈치없는사람이 되자. 내가 염려하지 않아도 상사는 권력 쥐고 잘 살고 후배는앞길 창창해서 잘 산다. 중년은 자기 살길부터 챙깁시다.

 너무 평범한 식사만한 것 같아, 이거 했으면 저기 갔으면 좋았을걸, 괜한 후회를 하는 서툰가이드에게 "괜찮아 괜찮아, 평범한 식사가 좋아" 말해주는 친구.
사실 임광빌딩은 십 년 전에 내가 회사 다녔던 곳이다(아직도 그회사가 입주해 있다). 그때도 서툰 날들을 지나가며 후회를 했더랬다.
괜찮아 괜찮아, 서툴고 평범한 날들도 반짝이는 날들만큼이나 좋아. 십 년 전의 나에게, 십 년 후의 내가.

피곤하면 삼라만상이 귀찮고, 건강한 신체에 제정신이 깃든다. 긴긴 인생길에 스스로의 손을 잡고 걸어줄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임을이제서야 깨달은 40대 원숭이는 오늘도 운동을 간다. 즐거움과 열의에찬 청춘이 지나가도 나는 여전히 나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사는 일은베스트컷 한 장이 아니라 수십 년짜리 활동사진임을 이제서야 뼈에 새기는 중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진짜 푸빳뽕 커리를 알 수 있어서다. 운이 나빠 맛없는 식당에 들어가거나, 고생하거나, 한국에서 편히 먹는것만 못할 수 있지만, 그래도 진짜 세계여서, 불편하거나 초라하대도먹어보려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고작 이게 푸빳뽕 커리인줄 알고살아갈 테니까.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파이는 망망대해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편 끊임없이 그를 집어삼키려는 호랑이(리처드 파케와도 사투를 벌인다. 삐끗하면 죽는 바다 한가운데, 한눈팔면 먹잇감이 될 호랑이와 함께라니 하늘도 너무하시다. 파이는 싸우고, 지치고,
절망하고, 도전하여, 마침내 살아남는다. 

회사원으로 살며 치러온 싸움들을 떠올린다. 일하는 손도,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단단해져야만 했던 시간들. 그래서 그들을 엿먹일‘
수 있게 되었다고,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고 생각했다. 글쎄, 내가 정말 단단해졌는지는 모를 일이다. 단지 그들이 이를테면 나의 리처드 파커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호랑이 때문에 내가 죽을 것 같았는데, 혹시 호랑이 때문에 내가 살아남은 건 아니었을까

"지금 먹는 밥 한 끼 한 끼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한 끼한 끼 잘 먹어야 한다" 하신다.
나와 인생관이 비슷한 할머니와 냉면을 먹었다. 할머니와 나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올해 여름이 온다. 한 끼 한 끼, 하루하루, 여름 그리고 여름,

의미가 없다면서 왜 썼던 것일까. 애초에 다 헛짓이고 퇴사하면잊을 일들이라지만, 이 역시 인생의 일부가 아닌가. 회사에 다니는 순간도 엄연히 삶의 순간이라면, 회사를 대하는 태도 역시 삶을 대하는 태도일 거다. 모든 걸 무의미하다고 간단히 단정지을 수 있을까.

무언가를 쓰는 인간을 무조건 존경한다. 그건 쓰면서 느낀 단 하나의 진리다. 쓰는 일은 아주 쉽지만 아주 어렵다. 별다른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우리가 글을 쓰는 일은 사실 무의미하다. 

무엇이라도 매일 쓰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회사생활에 의미가 없다면 왜 의미가 없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적어도 내가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불평을 하자. 의미를 회사에 맡기지 말고 스스로 찾자

된 사람을 만난굉장히 좋아하는 작가가 몇 있는데, 그의 책 중 별로인 걸 읽어도이건 별로였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 작가는 나를 모르니 아무 상관도없는데도 그렇다. 나는 이상한 사람.
듯 얕잡아보는이라는 걸 확사랑하는 사람을 단편적인 어긋남으로 쉽게 재단하지 않으려 한다. 배신당해도 사랑했던 기억만으로 이미 다 받았다.

회사원이 귀중한 여가시간에누군가를 만나는 건 돈보다 귀한 시간을 쓰는 거다. 좋아하는 사람만만나기에도 인생이 짧다.

사회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진짜 좋아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니,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존재만으로 고맙다.

처음 입사했을 때 항상 자리에 앉자마자 기도를 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하게 해달라고, 하루하루가 소중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책 일하길 바랐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늘 처음 같을 순 없으니까. 권태로운 순간도 인생이니까. 어떤 삶에도 그럴 때는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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