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 이 서양 격언은 착한 의도에서 출발한 정책이 나쁜 결과를 초래했을 때 흔히 인용된다. 의도는 좋았지만 방법론이 틀렸다는 데 방점이 있다. 목적이 아닌 수단이 비판의 초점이다 보니 실패한 정책에 ‘면죄부’를 주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의도는 착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약자를 돕는다는 정책이 역설적으로 약자를 괴롭히는 경우다.


[차병석 칼럼] 지옥 길은 위선으로 포장돼 있다?
20.09.03

이 시대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쓴 <노예의 길>에는 재미있는 부제가 달려있다. 바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진실’이다. 무슨 진실일까. 어두운 진실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유주의를 배척한 사회는 모두가 노예가 되는 길이라고 일갈하면서,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개인의 자유를 마음껏 보장하는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최고의 가치라고 설파했다.

그의 주장은 일장일단이 있다. 당장 미중 무역전쟁의 흐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주의와 다양성의 나라 미국은 단일지도자체제를 갖춘 중국과의 싸움에서 ‘온전한 전력의 집중’을 이뤄내지 못하는 행보를 연출하기도 한다.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강력한 지배력으로 민간시장을 콘트롤하는 중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어려운 난제들을 쉽게 풀어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들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도 2차 세계대전 후 나치즘의 광기를 목도한 당대의 ‘박제된’ 지식인일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다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말년에 자기의 눈으로 목도했듯이, 1990년대 사회주의 소련과 동유럽은 몰락했고 지금은 자유시장경제의 시대가 만개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도 뚜렷한 부작용과 반작용이 존재하고 있으나, 지금이 ‘기회의 시대’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정부가 계획하고 설정한 시대는 오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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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모두가 걸어가는 상황에서 누군가 달리기를 시작하자 "달리지 말고 걸어라"고 명령하며 "걸으면 제도권으로 인정하겠다"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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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큐레이션]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최진홍 (19.12.09)

1789년 일어난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 로베스피에르에 얽힌 일화.

프랑스 혁명을 진두지휘했던 로베스피에르는 모든 어린이에게 ‘우유를 마실 수 있는 기쁨‘을 안겨주고 싶었다.

혁명을 이끈 로베스피에르는 우유 가격 인하를 지시했다. 물가 안정과 국가의 미래인 아이들의 영양 보충을 위한 정책이었다.

누구도 로베스피에르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의 명령을 어기려는 사람도 없었다. 우유 가격도 자연스럽게 내려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유가격이 떨어지자 우유를 생산하는 소의 가격도 덩달아 떨어졌다.

우유가 돈이 되지 않자 농민들은 젖소를 내다팔았다. 소고기 가격도 급락하면서 젖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반전이 일어났다. 로베스피에르의 압력으로 하락하던 우유 가격이 폭등했다. 젖소가 사라져 우유 공급이 줄면서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이제 우유 가격은 로베스피에르가 가격 인하를 명령하기 전보다 훨씬 비싸졌다. 우유도 이제 귀족 자제들만 마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의 세상도 복잡했다. 사실 우유가격이 하락하자 소 먹이가 문제였다.

소가 먹는 건초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농민들은 우유를 싸게 팔아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당국이 우유 가격을 억지로 내리자 농민들은 소를 먹일 건초 가격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로베스피에르의 선의, 그리고 짧은 생각이 농업경제를 망쳐버렸다.

이 일화는 서양의 오래된 속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과 함께 자주 회자된다.

우유 가격 인하라는 로베스피에르의 ‘선의‘는 목축업 위기라는 최악의 결과로 귀결됐다. 시장에 대한 몰이해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주는 오래된 사례다.

로베스피에르는 법률에 정통한 엘리트로 서민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던 인물이었지만, 공포 정치를 펼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장태민 칼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기사입력 : 2020-04-07 13:29


국내에선 로베스피에르 사례보다 더 유명한 마오쩌뚱의 사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선의로 포장된 지옥길은 너무나 많았다. 서양에서 이 속담이 심심찮게 거론되는 이유다.

선의로 포장된 지옥길 중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마오쩌뚱과 참새‘ 이야기일 것이다.

중국 공산화에 성공한 마오쩌둥이 참새 박멸을 지시한 일화는 로베스피에르 사례보다 국내에선 더 유명하다.

마오쩌뚱이 참새가 곡식 낟알을 쪼아먹는 모습을 보면 참새를 없애야 식량 증산에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전역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참새 소탕의 결과는 처참했다. 아이들까지 새총으로 참새를 다 잡고 나니 대대적인 흉년이 들었다.

천적인 참새가 없어지자 해충이 창궐하면서 곡식을 모두 갉아먹어 버렸던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 인민 3천만, 4천만명이 죽었다고 전해진다.

모든 인민들을 배불리 먹이겠다는 모택동의 선의가 중국의 농업경제를 절단내고 말았던 것이다.

전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도자의 선의가 얼마나 큰 폐해를 안겨주는지를 가르쳐 주는 사례다.

(장태민 칼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기사입력 : 2020-04-07 13:29


문재인 정권 사람들은 불법 비리가 드러나면 도리어 화내고 눈 부라린다. 그런데 최근엔 여당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판사, 검사, 관료, 군인들도 이 철면피 행태에 가세하고 있다. 판·검·관·군은 늘 정권의 눈치를 보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마저 없다. 왜 이토록 뻔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지만 답은 하나뿐이었다.
이들은 이 정권이 최소 5년을 더 간다고 나름 확신한 것 같다.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물론이고 후년 대선도 민주당이 이길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6년 여인데, 이 정도 기간이면 지금 저지르는 잘못들은 모두 덮힐 수 있다. 이 기간 중에 자신을 대법관, 헌법재판관, 장관, 검찰총장, 참모총장 시켜주는 것도 민주당 정권이다. 그러니 이 정권에 눈 딱 감고 충성하자고 작정한 듯하다.

[양상훈 칼럼] 判·檢·官·軍, 이 정권이 ‘또 이긴다’ 확신한 것

양상훈 주필  2020.10.15 03:20


택배 노동자의 열세번째 부고 소식을 기사로 본 날, 답답함과 미안함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열두명이나 사망한 후에도 죽음이 다시 반복됐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안온한 내 책상에 앉아 그 기사를 볼 수밖에 없는 미안함이 똑같이 절박하게 무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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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현장에서의 죽음에 모두가 상주의 마음을 갖는 사회, 아니 상주가 될 필요도 없는 사회, 그러니까 일하는 중에는 단 한명도 죽지 않는 사회가 도래하기를. 노동자들의 땀이 바람 따라 흘리는 꽃들의 땀, ‘꽃 땀’처럼 아름답게 존중받기를. 새해 소망이다.


[조해진의 세계+] 누구든 살아 있으라
2020-11-02


고운 미소에 선한 마음씨의 수진은 마음이 아프면서 눈빛과 말투가 공격적으로 변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자꾸 사업을 벌이고 빚도 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남편과의 말다툼도 잦아졌고, 집을 나가 연락 두절도 여러 차례라고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사막의 태양 같은" 몇달이 지나고 나면, "극단적 추위의 밤 같은" 시간이 수진을 찾아왔다. 대책 없던 수진은 가고 한없이 가여운 수진이 나타났다.

이 가족을 덮친 불행에 이웃들은 아파했다. 병의 성격상 치료가 어렵다니 수철이 감당해야 하는 ‘끝이 안 보이는 터널’ 같은 상황이 기가 막혔다. ‘수진의 병은 수철이 가장으로서 무책임했기 때문’이라며 수진을 동정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게 또 수철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다. 아무렴 수철을 비난한 건 아니었다. 그저 수진이 너무 안타까웠던 것일 뿐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 배달노동자 수철 덕분에



2020-11-02


글을 써보려고 머리를 쥐어짜다 마침표를 찍으면 안도의 한숨을 쉰다. 같은 점이라도 일기도에서 보면 뜻이 달라진다. 어딘가 비가 오고 있다는 신호다. 점이 하나면 안개 낀 호숫가에 빗물이 여기저기 동그라미를 그리며 퍼져가는 모습이 보인다. 점이 세개 모이면 큰비로 개울의 징검다리가 넘쳐 종아리를 걷어붙이고 건너다 거친 물살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점 안에서 비를 보고 있는 누군가의 감정과 경험도 느껴볼 수 있어서다. 날씨의 표정을 전하는 이모티콘인 셈이다.


[이우진의 햇빛] 이모티콘에 담긴 날씨
2020-11-02 02:38

이우진 ㅣ 이화여대 초빙교수(과학교육)

김 위원장은 "일본에서 이미 1970년대 말 시작된 저출산을 해결하지 못해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는데, 우리도 그런 과정 속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출생률 하락세가 지속하면 국가로서의 존립 자체가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출생률 문제를 단순히 복지 문제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제일 중요한 것이 교육 문제"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주택도 문제지만 젊은 세대가 아이를 안 낳는 것은 교육이 불평등하기 때문"이라며 "사교육비가 계속 늘고 공교육이 취약해지는 것이 출생률을 떨어뜨리는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보육이라는 것도 복지 차원에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 종일 교육을 받는 전일수업제도를 도입하면 교육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고 돌봄 역할도 할 수 있어 전일교육제를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인 "아이 안 낳는 건 교육불평등 때문…7세 입학도 재고해야"

뉴스1|입력 2020-07-17


지금 삶이 우울하고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는 ‘당위적인 자아’와 ‘현실의 자아’가 충돌할 때 사람들이 우울과 불안을 느낀다고 말한다. 당위적인 자아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집을 사려면 돈을 벌어야 해’ ‘승진하려면 완벽하게 일해야 해’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출세해야 해’….

그런데 그 조건들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타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일수록 사회가 만들어준 신념에 맞춰 산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른 채 나이가 들어간다. 진정한 나와 사회적 역할을 혼동할수록 삶은 불만으로 가득해진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는 정신적·영적 동물이다. 매 순간 자신의 내면과 삶을 향해 진실한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던진 질문만 들여다보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멈추지 말아야 할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이 질문은 잠든 내면을 깨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과 거의 같다.


[이지현의 티 테이블] 멈추지 말아야 할 질문들

입력 2020-10-31 


199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선택의 가능성’이란 시의 일부분이다.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명확하지 않은 기념일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기념일처럼 소중히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아름다운 문체로 사색적인 작품을 주로 썼던 심보르스카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지금 느껴지는 불안감을 ‘진정한 당신이 돼라’는 내면의 신호로 감지하자.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들을 빼고 나면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과 마주하고 지금까지 ‘거짓된 자기’를 깨닫는 순간 자신의 진짜 존재를 만나는 인생 후반기로 넘어갈 수 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고 만든 신념과 가치관은 미래의 나를 만드는 토대가 된다. 끊임없이 ‘나’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지현의 티 테이블] 멈추지 말아야 할 질문들

입력 2020-10-31 


만일 지금 마흔 무렵을 살고 있다면 삶을 다운시프트(downshift)해야 한다. 자동차 운전 시 저단 기어로 변속해 속도를 줄이는 것을 ‘다운시프트’라고 한다. 마흔 이후엔 우리의 삶도 다운시프트해야 한다. 정신없이 살아온 청년기를 뒤로하고 시작하는 중년기는 "지금까지의 생활이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앞으로도 이 같은 삶을 계속 살아야 하나?"란 질문에 답을 찾는 시기이다.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 시기엔 젊은 시절 추구해 오던 물질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생긴다. 삶의 방식을 ‘성취 지향적’에서 ‘관계 지향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이 공간은 더 커지고 공허감을 느끼게 될 수 있다. 떠밀려 살지 않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

[이지현의 티 테이블] 멈추지 말아야 할 질문들

입력 2020-10-31 


농사꾼의 품격은 그가 짓는 밭으로 결정된다는 것, 평생토록 농사지으며 살아온 농부 어르신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 늘 겸손해야 한다는 것은 시골살이에서 얻은 귀중한 깨달음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줍니다. 나의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남편인 나의 품격은 아내에 의해 결정되고, 아버지로서 나의 품격은 자식들의 성품과 태도로 결정됩니다. 나를 자랑하고 나의 품격을 격상시키려 애써 보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선생의 품격은 제자들의 성장한 수준에서 결정되고, 학자의 품격은 연구한 학문에 의해 결정되며, 목사의 품격은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의 인격과 삶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그것들을 생각하면 나는 더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시골살이의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농자천하지대본의 이유가 무엇인지 경험적으로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바이블시론] 신부의 품격을 위하여

유장춘 (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입력 2020-10-30


경남 함양군 안의면 대대리에 ‘바래기재’라는 고개가 있다. 산악인들이 백두대간 능선 진양기맥(晉陽岐脈) 2구간 산행의 끝 지점으로 삼는 곳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 거창 마리면이다. 충남 보령에도 같은 지명이 있으니, 요즘 패러글라이딩 체험장으로 유명한 옥마산 활공장을 지나 성주산 왕자봉으로 이어지는 고개가 또한 바래기재이다. 성주지맥(聖住枝脈) 1구간에 해당한다.

내가 바래기재를 알게 된 건 등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이름 때문이었다. 싸리재, 노루목재, 너릿재, 멧둔재, 꼭두방재 등등 우리말 고개에는 개성 강한 이름이 많지만, 유독 바래기재에 끌린 건 이름의 유래 탓이다. 땅의 생김새에서 유래한 다른 지명들과 달리 바래기재는 이름 자체가 한 편의 서사이고 서정이다.

바래기재는 ‘바래다’에서 왔다. 바래주다, 바래다주다. 배웅한다는 그 말. 지금은 등산 날머리나 들머리인 이 고개가 옛날에는 이별의 고개였던가 보다. 남자들이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갈 때면 여인들은 이 고개까지 그를 바래다주었다.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가 이 고개에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앞날을 약속했을 것이다. 대개는 괴나리봇짐을 멘 남자가 먼저 등을 보이고, 여인은 손을 흔들며 그 등을 오래오래 바라보았을 테다.

바래기재라는 이름은 이렇게 바래다주는 곳이란 뜻에서 유래했다. 바래다준다는 말에는 ‘바라보다’라는 뜻이 있고, 누군가를 오래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바래다주는 일의 본질임을 한 번이라도 바래다준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배웅이라는 말이 설령 같은 어원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배웅한다는 말과 바래다준다는 말은 공(公)과 사(私)만큼 다르다. 영어의 ‘see off’나 ‘take’ 같은 말로는 우리말 ‘바래다주다’의 정답고 따뜻하고 환하고 또한 쓸쓸한 느낌을 도저히 전달할 수가 없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이렇게 노래했다. ‘그대만 보면 내 맘이 떨려요. 내겐 그대만 보여요. 바래다주는 길이 좋아요. 우릴 모르는 누구라도 아름답죠. 손을 흔들어 그대 인사해주면 난 그걸로 충분해. 난 정말 행복해.’ 이들의 대표곡 중 하나인 ‘그대’는 바래다주는 것과 바라보는 것이 같은 뜻이고 그것이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고, 그대만 보이고, 내 맘은 떨리고, 세상 사람들이 다 아름다워 보이고, 그런데 그의 집은 점점 다가오고. 그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은 조금 쓸쓸하지만,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그 순간 그 마음.

집이 어디니? 바래다줄게. 오래전 책을 읽다가 이 문장 뒤에서 딱 멈춰 섰다. 저녁 어스름이 내릴 즈음이거나 이미 어두워져 거리의 불빛들이 촘촘히 밝아진 다음이어도 좋으리라. 이 계절엔 너를 바래다주고 싶다. 너의 집 불빛이 보일 때까지만, 그 불빛의 이마 앞에서 내 마음이 놓일 때까지만. 너를 바래다줄게. 우리들의 삶 순간순간이 넘어야 할 첩첩산중인데, 그 들머리 고개가 서로를 바래다주는 바래기재가 된다면야. 그거면 충분하다


[최현주의 알뜻 말뜻] 오늘은 너를 바래다줄게
2020-10-31

호우가 계속되고 있다. 기후위기 전북비상행동은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라고 말하며 온라인 피케팅 운동을 시작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대륙의 북극곰 이야기가 아니다. 코앞에 닥친 미래를 바꿔놓을, 이미 시작된 재난 이야기다. 우리의 보금자리에서 점점 심각해질 기후재난의 속도와 강도를 최대한 늦추고 약화시킬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기후위기와 탈육식/이슬아


기후위기를 늦추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결정적 실천은 탈육식이다. 텀블러를 쓰고 일회용품을 줄이는 생활습관도 중요하지만 탈육식은 그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가져다준다. 육식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아서 외면할 뿐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의 18%가 축산업에서 배출된다. 공장식 축산에서 발생하는 탄소의 비율은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에서 발생하는 탄소의 비율보다 높다. 소고기 1㎏을 얻는 데 옥수수 16㎏이 사료로 쓰인다. 사육 과정에서 막대한 경작지와 물이 소모되며, 운송과 보관 등의 과정에서 꾸준히 화석연료가 쓰인다. 가축이 배출하는 메탄가스도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킨다. 육식은 지구의 에너지 자원을 광범위하게 그리고 빠르게 소진하는 생활습관이다. 수많은 개인들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고기를 먹는다면 기후위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희망은 갈수록 희미해질 것이다.

-기후위기와 탈육식/이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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