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사람 취급 못 받아야 사람이 되나 / 김소민
‘학대로 사람 만든다’는 생각은 2020년에도 강력하다. 그 생각이 얼마나 강력하냐면, 스스로 학대 속으로 들어가게 할 정도다. 얼차려를 견디는 장면에 시청자들이 ‘감동’할 정도다. 시즌1 누적조회수가 6천만이었다는 유튜브 프로그램 <가짜 사나이>를 보면 그렇다. 군복을 입고,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는 참가자들은 "나약함을 이기고" "게으름을 극복하려고" 눈이 뒤집힐 정도(한 참가자는 정말 눈에 흰자위만 남았다)의 얼차려를 받는다. 중간에 그만둔 참가자들은 패배감에 눈물을 흘렸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려는 ‘더 나은 인간’은 어떤 사람일까? ‘게으름을 극복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사람? ‘나약함을 이기고’ 어떤 모욕이라도 참아내는 사람? 어쩌면 이 땅에선 그렇게 개조된 사람이 ‘더 나은 인간’이라 폭력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은행나무 수난시대 / 이경수
짧은 기간 일시적인 악취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생물을 죽이고 없애는 것이 과연 능사일까. 과거의 인류가 현재 우리처럼 생각했다면 은행나무는 지구상에서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가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는 상황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배려가 없다면 지구의 미래는 앞으로 더욱 암담해질 것이다.
[태원준 칼럼] 정책이 만든 전세난, 싸우게 된 사람들 / 태원준
이렇게 정책이 빚어낸 전세 수요-공급의 극단적 불균형 속에서 사람들은 내용증명을 보내고 통화 내용을 녹음하며 싸움을 벌이게 됐다. 갈등을 조율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부추긴 이 갈등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서울의 신규 입주 물량은 올해까지 예년 수준을 유지했지만 내년부터 이 정부의 재건축 규제 여파가 닥쳐 절반으로 급감한다. 전세 물량은 더 부족해질 테고, 분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홍 부총리는 "이런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는데, 또 대책이 나온다니 벌써 마음이 무겁다.
[이명희의 인사이트] 죽음을 대하는 자세 / 이명희
얼마 전 9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한원주 권사는 국내 최고령 현역 의사로 마지막 순간까지 중증 치매 환자들을 돌보다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란 세 마디 말을 남기고 떠났다. 2018년 별세한 ‘목회자들의 목회자’ 유진 피터슨 목사가 남긴 마지막 말은 ‘레츠 고(Let’s go·가자)’였다. 천상병 시인은 시 ‘귀천’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노래했다.
어느 죽음인들 슬프지 않을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에 악착같이 발붙이고 하루 1분1초라도 더 살고 싶어하는 게 범인(凡人)들이다.
[살며 사랑하며] 심리적 보호대 / 배승민
수술 직후라 다리가 워낙 약해져 있으니 보호대가 더 큰 외상을 막아주고 재활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오래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보호대에만 의존하게 돼 정작 근육과 인대 발달에는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보호대가 심리적 방어기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어기제란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개인만의 습관 같은 것이다. ‘지식화’의 방어기제를 쓰는 사람은 고민이 생길 때마다 책에서만 답을 찾으려 들고, ‘투사’의 습관이 있는 사람은 힘들 때마다 남 탓으로 그 상황을 넘기려 한다. 즉 방어기제는 인간이 외부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으로 터득한 싸움의 기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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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몸의 일부가 돼버린 보호대를 막상 뺄 생각을 하니 덜컥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이런 편안함이 결국 과도한 심리적 보호대가 돼 내 몸과 마음이 보다 건강해질 기회를 뺏는 것이란 생각에 조심스레 걸음을 내디뎠다. 편한 익숙함보다는 이 서툰 걸음이 결국엔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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