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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나방
마태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 글은 디지털감성e북카페에서 무상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처음 마태 작가의 책을 읽었던 날도 이렇게 눅눅한 날씨였다. 그날, 축축하게 가라앉은 공기에 어울리는 음습한 소설을 찾다가 우연히 집어 든 작품이 습기였다. 습기를 읽고 난 뒤에도 마음속에 쉽게 마르지 않는 찝찝함을 남겼다. 불쾌할 만큼 서늘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날씨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그 기억 때문이었을까. '누에나방'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망설임 없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습기'와 닮은 결의 분위기가 스며들었다. 그리고 오늘도, 공교롭게도 비가 내리고 있다.
이야기는 교통사고 이후 오랜 병원 생활을 이어가던 소영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서서히 회복해 퇴원을 앞둔 소영은 다시 학교에 가고 싶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엄마는 완강히 이를 만류한다. 표면적으로는 딸을 위하는 극진한 간호처럼 보이지만, 그 태도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위화감이 감돈다.
예컨대 엘리베이터에서 염색한 간호사를 본 소영이 “엄마, 나도 염색하고 싶어”라고 말하자, 엄마는 “안 돼. 네 얼굴에 염색하면 너무 싸 보여”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이 한마디는, 보호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폭력을 드러낸다. 그 순간, 등골을 스치는 싸늘함을 느꼈다.
본격적인 균열은 퇴원 이후 시작된다. 엄마는 아빠가 아파서 병문안을 오지 못했다고 말해왔지만, 집에서 마주한 아빠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말을 하지도,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는 존재. 그리고 집 안 곳곳에서 발견되는 엄마의 기묘한 흔적들. 소영은 자신을 끊임없이 통제하고 감시하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 손목을 다쳐 다시 병원을 찾은 날, 과거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을 때 자신을 찾아왔던 한 소녀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서서히 풀려간다. 이후 펼쳐지는 전개는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읽는 내내 '습기' 속 영희 엄마의 기괴한 이미지가 겹쳐졌다. 두 작품 속 인물은 어딘가 닮아 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어지는 결을 남겨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더 소름이 돋았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 난 뒤 가장 궁금해진 것은 소영의 미래였다. 부디 그녀가 엄마의 그림자를 답습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되찾기를. 이 눅눅하고 음습한 세계를 빠져나와, 끝내는 환한 곳으로 걸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비 오는 날에 더욱 선명해지는 소설. '누에나방'은 그렇게 또 한 번, 마음속에 쉽게 마르지 않을 감정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