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팝니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최혜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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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 글은 디지털감성e북카페에서 무상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목숨을 팝니다'라는 제목부터 강렬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과연 목숨을 판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책을 펼치자마자 독자는 주인공 하니오라는 인물을 따라가게 된다. 그는 도쿄 애드라는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제법 괜찮은 급여와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하니오는 지하철역에서 신문을 읽다 사회면에 나열된 여러 사건들을 바라본다. 그러다 신문 사이에 낀 바퀴벌레를 본 순간, 그가 보던 활자들이 모두 바퀴벌레처럼 기어다니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그 일 이후, 그는 약국에서 수면제를 사고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자살 시도였다. 뚜렷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충동적이었다. 하지만 죽음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하니오는 마치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을 느낀다. 직장을 그만두고 신문에 ‘목숨을 팝니다’라는 광고를 낸다. 그 광고를 통해 여러 의뢰인을 만나면서 하니오의 일상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첫 번째 의뢰인은 노인이었다. 그는 하니오에게 전 부인을 유혹해서 함께 죽어달라고 한다. 하니오는 노인의 부탁을 수락하지만 그녀도 자신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다음 날, 그 여자가 강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실린다. 죽음을 향한 그의 의지는 늘 어긋나고, 대신 주변 인물들이 죽어간다.


그 다음은 도서관 사서인 노처녀였다. 그녀는 20엔을 걸고 책을 사겠다는 광고를 보게 되고, 자신의 도서관에 있는 책을 훔쳐 팔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50엔을 더 벌고 싶지 않냐는 말을 들었지만, 뛰쳐나온다. 그것이 약 실험이었다는 의심을 품게 되었고 하니오에게 50엔을 받기 위한 실험 대상이 되어 달라며, 죽음을 의뢰한다. 하지만 하니오가 자살을 시도하려는 찰나, 그녀가 대신 죽고 만다. 역시 하니오는 살아남는다.


이후에도 수상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흡혈귀 어머니에게 피를 주러 왔다는 소년, 암호를 풀기 위해 당근을 사용하는 첩보 활동, 그리고 레이코라는 망상에 빠진 여자의 등장까지. 모든 이야기는 기묘하면서도 우화적이다. 레이코는 매독에 걸린 줄 알면서, 정신병, 불안정한 모습으로 하니오와 얽히다가, 어느 순간엔 차분하고 정상적인 주부의 모습으로 변해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꿈꾼다. 하니오는 그녀의 그 ‘정상적인’ 상상 속 삶을 오히려 바퀴벌레처럼 느끼며 역겨움을 느낀다. 그렇게 그녀에게서 도망치지만, 자신의 몸에 위치 추적기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를 찾아온 이는 처음의 노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ACS'의 일원임을 밝힌다. 가까스로 도망친 하니오는 파출소에 도움을 청하지만, 경찰은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주소도 없고 직업도 없는 하니오에게 경찰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 세상에 성인 남자라면 가정을 이루고, 직장을 가지고, 자식을 키우고, 주소가 있어야 정상적인 거야.” 결국 하니오는 파출소 앞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이 작품을 통해 하니오가 겪는 내면의 변화는 인상 깊다. 처음엔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했지만, 계속해서 죽음을 피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는 오히려 삶에 대한 집착과 의지를 불태운다. 그러나 그 의지가 ‘정상’이라는 틀 밖에 있다는 이유로 사회는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쓰레기’로 취급된다.


책의 배경은 1960년대 일본이다. 하지만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과거에는 가정을 이루고, 직장이 있고, 자식이 있는 삶만이 정상이라 여겨졌지만, 지금은 1인 가구, 비혼, 친구와의 동거 등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형태의 삶이 배제되곤 한다. 그 이분법적인 시선을 비틀며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읽는 내내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리라’는 말이 떠올랐다. 죽음을 팔겠다는 남자의 여정을 따라가며, 결국 삶의 의지를 되찾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살아간다’고 부를 수 있는지를 묻는다. 기묘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시대를 넘어선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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