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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 나에게 친절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상희 외 지음, 김경태 사진 / 새의노래 / 2023년 9월
평점 :
여러가지 일들을 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정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림책을 소재로.
이 책은 '내'안에 있는 다정함을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오늘 나를 힘들게 한 말들,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하는 기억들 저편에 분명 존재하는 소중한 시간들을 불러오는 그림책들을 소개한다.
이 책을 쓰면서 작가들이 다정함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과일에 표시되는 당도처럼 다정함의 온도를 숫자로 나타내보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하지만 이 책을 쓰면서 오히려 다정함의 온도를 재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것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정함의 기준은 너무나도 주관적이라 그것을 일개 숫자로 단정지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다정함이 가진 특별한 힘은 웬만해선 부정하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그 정도는 개개인마다 분명 다를 것이다.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서 큰글씨책과 그림책만 빌려보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동네에서 우연히 그림책 하브루타 모임이 있었고 그곳에서 다양한 그림책들을 보면서 일종의 놀라움과 따스함을 느꼈는데, 그게 아마 '다정함'이었던 걸까. 구체적으로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 그 기억이 좋아서 아이는 잘 읽지 않는 그림책을 지금도 한 번씩 읽어보곤 하는 거겠지.
요즘에도 그림책 수업은 빠지지 않고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림책이 불러오는 기억과 추억은 특별한 모습을 하고 온다.
그것이 공룡일 때도 있고, 할머니의 식탁에서 나는 밥 냄새일 때도 있다.
공룡은 잊고 있던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공룡은 자신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주인공에게 묻는다. '잊혀지는 게 힘들까, 잊는 게 힘들까?'
인간은 기억으로 만들어진 집이다. 아픔도 즐거움도 모두 인간이라는 집을 만드는 벽돌이다.
기쁨과 슬픔은 따로 오지 않는다. 잊혀지는 것과 잊는 것은 둘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책에서는 슬픔과 망각을 '기억'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무 할머니는 스튜를 끓인다. 푸짐하게 장을 봐서 오직 자신을 위한 저녁 요리로.
근처에서 일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 이웃집 아이 등등에게 할머니는 아낌없이 스튜를 퍼준다.
결국엔 스튜가 동이 나게 되고 할머니는 한숨을 쉬신다. 하지만 곧 사람들이 다양한 먹을 것들을 노크와 함께 내려놓는다. 할머니는 계획대로 최고의 저녁 식사를 하게 된다.
산다는 건, 이 순간을 사는 것임을 할머니는 알고 계신 것 같다. 그녀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자신을 위한 최고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것만 봐도 아직 행복한 나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할머니의 스튜에서 책에만 존재할 것 같은 작지만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모든 그림책은 이런 다정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가 가진 풍요로움을 모르고, 항상 남이 가진 것을 탐내도록 가르치는 세상에서 크든 작든 자기가 가진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이 백번 나은 일 아닐까. 다정함은 경쟁하지 않는다. 수치로 매길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