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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 보이는
이호준 지음 / 몽스북 / 2021년 9월
평점 :
요즘 억지로라도 일찍 일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다. 몸이 예전같지 않음을 느끼고, 낮에는 결코 혼자만의 시간을 낼 수 없는 생활일이기에, 좋은 책의 영향을 받아 아침 시간을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쓰고 있다. 그 중 걷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다. 건강을 위해 걷기 시작한 것이지만, 걷게 되면서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 날 그날의 공기, 하늘, 바람, 나뭇잎, 꽃, 사람들의 자연들, 그리고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아파트 단지, 건물, 콘크리트 바닥들도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서일까. 마음이 바뀌었던 것일까. '걸으면 보이는'의 작가는 그것들을 그냥 두지 못하고 그 시간들을 잡아두었다. 고스란히 이 책에,,, 시간의 흐름도 아니고, 장소의 흐름도 아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배치된 글과 사진들은 그것이 언제였든, 어디였든이 중요하지 않았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소도 다른 장소처럼 느껴지고, 다른 장소인데 같은 감정이 밀려들기도 했다. 그가 걸으면서 보았던 수많은 자연물과 인공물들은 그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예술이 되어 있었다. 때론 글이 방해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사진을 한참 들여다본 후에 나중에 시간이 흘러 따로 글을 읽기도 했다. 사진이든, 그림이든 그것을 보는 대로 느끼고 감상하는 게 좋아서, 그 감흥을 오롯이 혼자 느끼고 싶어서 따로 읽는 게 더 좋았다. 어떤 렌즈로 어떤 구도로 어떤 기법으로 촬영했는지 모르기에 그저 사진이 주는 느낌만 전해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분석하고, 따지면서 그것들을 감상하고 싶지 않았다. 한 장에 쫙 펼쳐진 사진이 작은 사진보다 더 좋았고, 글이 없는 사진이 더 좋았다. 발걸음이 닿지 못했던 그곳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 걷기는 관능의 세계로 들어가는 의식, 모든 감각을 동원해 세상을 느끼는 방법' 이라고 설명된 작가의 생각이 걷는 동안, 한동안 계속해서 떠올랐다. 같은 시간의 바깥 풍경이 늘 달라보였던 건 그래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