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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의 섬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미쓰다 신조 덕에 호러 미스터리에 재미를 붙여 이것저것 찾아 보다가
'시귀'의 작가가 쓴 '본격 호러미스터리!'라길래 샀는데, 왜 책 선전을 그렇게 했나?
내 기준으로 '호러'는 개미 발끝 만큼도 없음. 그냥 본격 추리에 가깝다는 거..
그럼 본격 추리물로는 괜찮냐 하면 별로 그렇지도 않다는 거..
흥신소 직원인 주인공이 실종된 지인을 찾아 외딴섬에 흘러드는 장면까지는 아주 좋다.
사람 잡는 귀신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야차도.
그곳 마을 곳곳에 수없이 걸린 풍경과 바람개비가 풍기는 불길한 기운.
외지인을 배척하는 섬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그리고 섬을 지배하는 가문의 거대 저택..
이런 것들이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이면서
뭔가 불안하고, 음산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잡는데까지는 성공했단 말이다.
그런데 거기까지가 다였다..ㅠㅠ
논픽션 작가인 지인이 참살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탐정인지 민속학자인지 모를 주인공은
먼저 마을 사람을 찾아다니며 섬의 전승과 민간신앙을 묻고 다닌다.
아무리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사건을 묻어버리려고 한다지만,
지인이 살해당한데다 그 살인 사건의 증거까지 쥐고도 어찌보면 사람이 참 태평해 보이더라..
그 방면에 아는 것도 많은지 이야기 상대와 죽이 잘 맞는다.
게다가 3인칭 서술이니 아예 중간중간 작가가 직접 끼어들면서
민간신앙에 음양오행을 대입하며 장광설을 풀기도 한다.
그러면서 결국 마을 지배 가문의 족보캐기(?)에 몰두하게 되는데..
읽다보니 마치 오래된 족자 속의 인물들이 입만 살아서 나불나불나불 대는 느낌이다..
사건의 진상을 밝혀가는데 '액션'은 없고 '토크'만 있으니 상당히 지루하다.
여러 등장 인물들이 한 얘기를 하고 또 하고.. 하지만,
정작 사건을 당한 사람이나 좇는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이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가 없다..
결국 후속 사건 없이 - 마지막에 한번 더 일어나긴 하지만 - 진상은
지배 가문의 핏줄과 후계에 얽힌 문제로 요약된다.
집안 내력이 곧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니 추리할 부분도 별로 없다.
막판에 약간의 반전이 있긴 하지만, 밋밋해진 분위기를 다잡기엔 임팩트가 약하다.
한 가문의 내력이 민간 신앙화되면서 섬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설정은
상당히 그럴듯 했으나, 그것이 어떻게 현실의 사건이 되었는지 어필하는 부분은
치밀하지 못하다. 차라리 이런 류의 가문에 얽힌 이야기라면, 보다 진득하게 파고 들어
각 '인물'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틀은 잘 짜놓았는데, 작가가 자기 할 말만 급하게 하다 끝낸 느낌.
이해 불가한 오싹한 사건을 이성적 추리로 해결해가는,
공포스러우면서도 스릴감 있고 무릎을 치게 되는 추리의 통쾌함이 있는
그런 작품을 바랐던 나로서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독서였다..
주제넘게 오작가님께는 송구하지만, 역시 사람은 각자 잘하는 분야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