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여행 - 낯선 공간을 탐닉하는 카피라이터의 기록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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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결코 안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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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던 3호선 열차의 안내 방송이 나온다.

자동 안내가 아닌 사람 목소리.

지금 열차를 운행하고 있는 기사의 목소리.

생각보다 젊은, 어쩌면 내 또래일지도 모를 목소리가 화들짝 현실로 나를 소환하더니

다시 2005년,

그러니까 벌써 11년 전

혼자 처음 떠났던 프랑스 파리, 그 추운 1월로 나를 데려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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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 첫날에, 숙소로 돌아가던 지하철이 급작스레 운행을 멈췄다. 곧 모든 불이 꺼졌고, 너무 놀란 내 머릿속엔 온갖 불길한 생각들이 동시에 떠올랐고,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불이 켜지더니 안내 방송이 나왔다. 무언가 멋쩍은 목소리. 나를 빼고 알아들은 열차 안 사람들은 웃기 시작했고, 나는 어리둥절했고, 기사는 방송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열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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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이런 추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영원을 사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여행을 또 가야지,

될 때마다 짐을 꾸려야지,

그래야지.

 

 

때로는 여행을 떠나와 누군가의 일상이 묵묵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위로가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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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으로 팬이 되었는데, 다시 한번 머리부터 발끝까지 찌릿찌릿한 책이었다.

어떤 훌륭한 책은 구절마다 우리를 데리고 떠난다. 이 책이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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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어 다크, 다크 우드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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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막 대놓고 피 튀기고 이유 없이 죽이는 그런 스릴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심리묘사나 공감으로 빨려드는 소설로 오싹하게 만드는 이 소설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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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싫다는 말을 못 할까 - 삶이 심플해지는 거절의 힘
김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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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남들이나 나 자신에게 던지는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마음 고생을 하곤 했다. 뒤늦게야 나는 진정한 의미의 성인이란 자신의 머리 어디쯤인가에 떠오르는 말풍선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솔직하게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 프롤로그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거짓말쟁이였다> 중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늘 느낀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속이지 않고,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정직하게 바라보고 알게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더랩에이치 대표인 김호는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늘 사진을 봐왔던 터라 익숙했는데,

이 책이 그 분의 책인 것을 책 날개 소개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끄앙. <쿨하게 사과하라>의 그 저자분이잖아!

 

미국의 상담심리학자로부터 "남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뚜렷"하니 "앞으로 마음 속의 진실을 남에게 잘 주는 쪽으로 노력해보자"는 말을 들었다는 저자처럼, 나도 그런 성격이기에 나도 앞으로 내 마음을 잘 전달하는 쪽으로 노력하고 싶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거절이 두려운 까닭은 나의 거절이 상대방의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미리 예측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관계가 멀어지면 어쩌지, 나는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은데 등등.

그런 거절을 '세련된 거절'로 상대방과 나 모두를 위한 결정으로 바라보자고 저자는 말한다.

세련된 거절이란 '상대방 편에서 바라보면서 (상대방의 의견과 반대일 수 있는) 내 뜻을 전달하는 기술'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브릿징bridging 테크닉'이란 기술인데, 내가 평소에 못하는 표현 기술이 바로 이것이었다. (캬! 머리를 탁 쳤다. 이건 외워야 해)

 

1단계.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이해( 꼭 반드시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혹은 공감을 나타낸다.

2단계. 자신의 입장( 때로는 상대방의 입장과 반대되는 뜻 혹은 거절)으로 연결하기 위해 다리를 놓는다.

예시) "좀 더 큰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런 점을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3단계. 자신의 진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흔히 거절은 단호하고, 재고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상대방에게 '직언'을 날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머리로는 이해하려고 하지만 마음으로는 거부와 분노를 일으키는 거절이 되어버린다.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 다시 한 번 나에게 묻게 된다.

어떤 일을 하는 과정에서 '거절을 위한 거절'을 하는 게 목표는 아니다. '나는 당신과 의견이 다르다'로 그치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나의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어 결국은 거절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로 표현은 이렇단다. "please, help me to help you."

 

책은 각 부마다 공감이 갈 만한, 평소에 어려움을 겪는 거절 상황들을 예로 들면서 저자의 설득력 있는 연구와 이야기가 제시된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가까이 하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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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퓨처클래식 4
세라 워터스 지음, 김지현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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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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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런치, 바람의 베이컨 샌드위치
시바타 요시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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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매일 쌓이는 뉴스는 슬픔, 분노, 불안에 휩싸이게 만든다.

일상을 지켜내는 것, 그저 내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면서도 그 깨달음이

다른 사람의 불행을 딛고 난 후에 오는 게 서글픈 그런 날들.

 

장마가 시작되고 이 비가 그치면 풍경 속 풀들은 한뼘씩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랄 테다.

그런 회색빛 오후에 초록의 기운을 주는 소설.

<오늘의 런치, 바람의 베이컨 샌드위치>다.

 

이 소설 속 주인공 같은 하루하루를 꿈꿔본다.

한때 우후죽순 펜션이 들어서던 곳에 한풀 꺾이고 난 뒤

오히려 찾는 사람들이 없어 한산함이 스산함으로 바뀌고 있는 마을, 유리가하라 고원.

그곳에 낡고 오래된 펜션 하나를 개조해 만든 나호의 카페, 송드방.

복잡한 도시 도쿄를 탈출하고 내려와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은 시골 생활에 적응하기도 힘들지만

자신이 꿈꾸던 공간으로 하나씩 스스로 고쳐가며 할 일을 차근차근 해나간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미식소설로,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침도 꼬올깍 넘어간다.

 

오리엔탈 드레싱을 뿌린 두부 샐러드에는 고원 양파도 듬뿍 넣고, 방울 토마토를 동그랗게 썰어서 귀엽게 장식했다. 카레에 사용한 콩은 모두 다섯 종류. 강낭콩, 붉은 강낭콩, 검은콩, 인도카레에 잘 쓰는 병아리콩, 그리고 나호가 아주 좋아하는 긴토키마메다. 콩을 불린 뒤에 야채수프에 부드럽게 조려서 향신료를 넣고 카레를 만들었다. 이 카레에는 밥도 좋지만, 차파티도 잘 어울린다. 발아현미밥과 카레를 함께 그릇에 담고 차파티도 두 장 구워서 다른 접시에 담았다. p.116

 

나호는 서른다섯에, 인생이 잘못되었구나 싶었을 때

힘껏 방향을 바꾸었다.

스스로 결단했다기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이 무너졌을 때

스스로 살고자 남은 힘을 짜내 바꾸어낸 것.

나호를 찾아와 각자의 사연을 숨기지 못하고 나누는 사람들에게, 나호는 흔한 격려 대신 맛있는 요리로 진심을 다해 대답해준다. 어떤 것보다 따뜻한 밥이 더 위로가 되는 시간을 자신도 견뎌왔기에.

 

이런 밤이 자신에게도 있었다. 남편으로서 같이 사는 사람을 참을 수 없다고,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쓰러져 울던 밤이.

흔한 위로나 이 자리를 넘기기 위한 격려는 지금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 밤의 괴로움은 맛본 사람밖에 모른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 이겨낼 수밖에 없다.

 

 

울고 난 뒤에 배고파진 누군가에게  맛있는 요리를 내어줄 수 있어서 더 안도하는 밤.

조금씩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가까워지려는 용기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건네주고 싶은 따뜻한 선의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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