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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런치, 바람의 베이컨 샌드위치
시바타 요시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하루가 다르게 매일 쌓이는 뉴스는 슬픔, 분노, 불안에 휩싸이게 만든다.
일상을 지켜내는 것, 그저 내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면서도 그 깨달음이
다른 사람의 불행을 딛고 난 후에 오는 게 서글픈 그런 날들.
장마가 시작되고 이 비가 그치면 풍경 속 풀들은 한뼘씩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랄 테다.
그런 회색빛 오후에 초록의 기운을 주는 소설.
<오늘의 런치, 바람의 베이컨 샌드위치>다.
이 소설 속 주인공 같은 하루하루를 꿈꿔본다.
한때 우후죽순 펜션이 들어서던 곳에 한풀 꺾이고 난 뒤
오히려 찾는 사람들이 없어 한산함이 스산함으로 바뀌고 있는 마을, 유리가하라 고원.
그곳에 낡고 오래된 펜션 하나를 개조해 만든 나호의 카페, 송드방.
복잡한 도시 도쿄를 탈출하고 내려와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은 시골 생활에 적응하기도 힘들지만
자신이 꿈꾸던 공간으로 하나씩 스스로 고쳐가며 할 일을 차근차근 해나간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미식소설로,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침도 꼬올깍 넘어간다.
오리엔탈 드레싱을 뿌린 두부 샐러드에는 고원 양파도 듬뿍 넣고, 방울 토마토를 동그랗게 썰어서 귀엽게 장식했다. 카레에 사용한 콩은 모두 다섯 종류. 강낭콩, 붉은 강낭콩, 검은콩, 인도카레에 잘 쓰는 병아리콩, 그리고 나호가 아주 좋아하는 긴토키마메다. 콩을 불린 뒤에 야채수프에 부드럽게 조려서 향신료를 넣고 카레를 만들었다. 이 카레에는 밥도 좋지만, 차파티도 잘 어울린다. 발아현미밥과 카레를 함께 그릇에 담고 차파티도 두 장 구워서 다른 접시에 담았다. p.116
나호는 서른다섯에, 인생이 잘못되었구나 싶었을 때
힘껏 방향을 바꾸었다.
스스로 결단했다기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이 무너졌을 때
스스로 살고자 남은 힘을 짜내 바꾸어낸 것.
나호를 찾아와 각자의 사연을 숨기지 못하고 나누는 사람들에게, 나호는 흔한 격려 대신 맛있는 요리로 진심을 다해 대답해준다. 어떤 것보다 따뜻한 밥이 더 위로가 되는 시간을 자신도 견뎌왔기에.
이런 밤이 자신에게도 있었다. 남편으로서 같이 사는 사람을 참을 수 없다고,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쓰러져 울던 밤이.
흔한 위로나 이 자리를 넘기기 위한 격려는 지금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 밤의 괴로움은 맛본 사람밖에 모른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 이겨낼 수밖에 없다.
울고 난 뒤에 배고파진 누군가에게 맛있는 요리를 내어줄 수 있어서 더 안도하는 밤.
조금씩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가까워지려는 용기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건네주고 싶은 따뜻한 선의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