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그림자 속에서
알비다스 슐레피카스 지음, 서진석 옮김 / 양철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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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늑대는 누구이며, 그림자는 무엇일까. 그래서 우리는 늑대의 그림자 속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다소 낯선 리투아니아 소설가가 들려주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야기. 호기심이 들었다.


🔖 겨울이다, 끝이 나지 않는 겨울. 끝나지 않는 눈보라와 서리, 저녁 어스름, 추위, 바람, 끝날 줄 모르는 배고픔, 추위는 여인의 옷을 뚫고 들어가 심장과 뼈와 머리를 꿰뚫는다.13p


🐧 소설은 살을 파고 들다 못해 온몸을 꿰뚫어버릴 듯한 추위처럼 강렬하게 전개된다.


🔖 예쁘고 하얀 보리스의 손이 옷장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러고 나서 꽃이 되었다가 사라졌다가 이내 참기 힘든 텁텁한 냄새가 퍼졌다. (…) 몸이 비쩍 마르고 굶주린 개가 나타나더니 보리스의 손을 물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_76p


🐧 어둠과 대비되는 예쁘고 하얀 손. 아마 꽃으로 채 여물지 못한 아이의 손이라 ‘꽃이 되었다가 사라졌다가’ 했을 작은 손. 전쟁은 모든 것을 삼킨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라도 예외 없다. 그저 굶주린 개의 한입 거리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 “내 이름은 마리톄예요.”

“아냐, 너 독일 년이야. 하일 히틀러 해 보라고!”

미키타는 한 손으로는 총을 들고 다른 손으로 여자아이의 목을 잡았다. 그는 눈이 벌게졌다. 레나테는 숨이 막혔지만, 쉰 목소리로 “내 이름은 마리톄예요”를 반복했다.


🐧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러시아 군대가 휩쓴 동프로이센의 독일 사람들은 한순간에 나라를 잃는다. 살아남기 위해 동프로이센과 맞닿은 리투아니아 국경을 넘나들던 이 아이들을 ‘늑대의 아이들’이라 한다. 죽음이 턱 밑까지 찾아와도 모국어는 입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내 이름은 마리테예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발화인 것이다. 늑대의 그림자 속에는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던 아이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이 소설은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참혹하게 사라져간 늑대의 울음소리를 마주할 수 있는 기록이자 기억이다.

울이다, 끝이 나지 않는 겨울. 끝나지 않는 눈보라와 서리, 저녁 어스름, 추위, 바람, 끝날 줄 모르는 배고픔, 추위는 여인의 옷을 뚫고 들어가 심장과 뼈와 머리를 꿰뚫는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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