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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설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평점 :
잠 못 드는 새벽, 스멀스멀 찾아드는 우울감과 이상한 생각들을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모양인가 와 같은 고통스러운 고민들은 결국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고 ‘내’가 아닌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만들게 한다.
하지만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종종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나름대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내어 실현해 보려하지만 마음먹은 것처럼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꿈이 내 발목을 잡으며 더 우울함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은 엠마뉘엘 카레르가 겪는 우울한 감정이 만들어낸 상황에 대한 르포르타주이다. 문학비평용어사전에 따르면 르포르타주는 사회현상이나 사건을 충실히 기록하거나 서술하는 보고기사 또는 기록문학이다. 즉, 사실에 기반하여 쓰는 글이라는 것이다.
이를 알고나자 정말 엠마뉘엘 카레르의 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그러자 엠마뉘엘 카레르라는 타인의 일기장에 오롯이 담긴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훔쳐 읽는다는 오묘한 기분이 묘한 중독감을 일으킨다.
그의 스스로에 대한 자기 성찰은 그의 모든 방면에서 일어난다. 그의 ‘타고난’ 우울함과 광기, 애인인 소피와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함, 불우하다면 불우하다고 할 수 있는 가족사 등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낸 그의 불안하고 우울한 내면을 그가 나름대로 해석하고 풀어내려한 노력의 증거가 이 책이다.
왜 제목이 <러시아 소설>인가.
헝가리인을 취재하러 갔던 러시아의 코텔니치에서 그는 자신의 ‘러시아어’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 ‘러시아어’에 대한 집착은 곧 러시아 말을 할 수 있었던 조지아 사람인 자신의 외조부에 대한 생각와 연결된다. 똑똑하지만 암울한 인생을 살다가 실종된 자신의 외조부. 그의 흔적은 자신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에 퍼져있다고 여기는 그는 그의 행방을 찾으면 자신의 내면의 불안함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외조부처럼 ‘실종’ 되었었던 헝가리인이 있던 코텔니치에 그는 흥미를 가지고 그곳에서 르포르타주 영상을 찍으려 한다. 그의 외조부의 흔적인 러시아 어를 숙달하려 한다.
그가 그렇게 그의 내면의 불안을 러시아-‘코텔니치’ 프로젝트로 해소하려하자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한 요소였던 소피와의 관계도 점점 더 위태로워진다. 그는 내면의 고통을 치유하고 있다고 믿으며 불완전하게 소피에 대한 사랑을 키웠지만 그 사랑은 기형적으로 완성되었다. 그의 소피의 대한 기형적이지만 열정적인 사랑은 가장 관능적인 3부에서 정점을 찍고 점점 비틀려간다. 또 3부의 내용으로 인해, 그의 외조부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그의 가족- 그의 어머니와의 관계도 일그러진다.
결국 파국이다.
그의 일상은 계속 달려나가지만 그의 우울함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우울한 이야기임이 틀림없지만 우리는 <러시아 소설>을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 내면의 어둠에 대해 알아보다가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누구나 해보는 일이기 때문에, 남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간에 너무 우울하다고, 나는 행복한 책을 읽고 싶다고 돌아서지 않기를 권한다. 다 읽고 나면 느낄 수 있는 그 후련함이 정말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