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롭고 번뜩이는 이야기
다니에 꼬르네호 글.그림 / 쿵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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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부조리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그런 부조리를 다들 겪으며 산다. 하지만 너무 많은 부조리에 취해 종종 그를 관습정도로 생각해서 당연하게 여기며 은근슬쩍 넘어가게 된다. 누구나 다 그런 일을 겪는다며 우리 스스로, 그리고 서로를 타이르며 사회에 순종하자고 이야기 한다. 이런 부조리는 누군가가 나서서 잘못되었다고 고함을 치듯 외쳐야만 간신히 수면 위로 올라올 자격이 생긴다. 그 고함은 간혹 사회 질서를 흐트러뜨린다는 비난과 야유에 묻히기도 한다.

요새 수면 위로 떠오른 미투(me too)운동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권력 체계하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끌어올렸으니 성공한 외침에 가깝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피해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처절하게 알려야만이 사람들이 사회를 성찰한다는 점이 너무나 안타깝다. 우리는 눈을 감고 입을 닫고 부조리한 상황을 방관하며 수많은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방치했다. 왜 우리 스스로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을까. 그들이 당하는 것을 보고 잘못 되었다고 한마디도 못했을까. 이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누군가 피해자와 연대해서 목소리를 내줄 수는 없었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번개가 번쩍여 어둠을 가른다. 덕분에 눈앞에 창이 보인다. 번개가 칠 때, 창 옆에 서 있는 무언가의 윤곽이 잠시 드러난다. 불길해 보인다. 나를 감시하고 있다. 번갯불 덕에 그들의 몸이 보인다. 나를 가둔 존재는 인간들이구나. 그들을 비춰준 번갯불이 고맙다. 이제 두렵지 않다.”

 

나의 이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달래준 것은 스페인 사람인 작가 다니엘 꼬르네호의 그림에세이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롭고 번뜩이는 이야기 번개(이하번개로 표기)이다. 다니엘 꼬르네호의 그림에세이는 제목처럼 번개 같은 글들을 담고 있다. 짧은 분량이지만 짧은 한 편의 글마다 작가의 관찰력과 재치가 번뜩인다.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한 사회 비평을 어두컴컴한 가운데 내리꽂혀 세상을 순간적으로 밝히는 번개에 비유한 서문에서부터 독자들은 자연스레 다니엘 꼬르네호의 말에 끌려가게 된다. 스페인 사람이 직접 우리말로 글을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다듬어진 날카로운 다니엘 꼬르네호의 글과 그가 생각한 이미지를 적절히 담아낸 그림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번개처럼 우리의 뇌리에 꽂힌다.

번개는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장에서는 노동 문제를, 두번째 장에서는 정치 문제, 세번째 장에서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네번째 장에서는 인권 문제, 다섯번째 장에서는 교육 문제, 여섯번째 장에서는 기술과 환경 문제를 주로 다룬다. 각각 다루는 문제는 다르지만 다니엘 꼬르네호는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의 배후로 자본주의와 상업주의, 권력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나는 백화점에 자주 가. 딱히 쇼핑이 좋아서 가는 게 아니라 나도 상품이니까 가는 걸지도 몰라.”

 

우리는 자본주의가 좋다고만 배워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며 자본주의 덕분에 우리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 꼬르네호는 이런 생각에 반박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상품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가치를 매기며 자본과 권력에 선택받기 위해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우리를 바꾸고 우리끼리 경쟁한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패배'하면 도태되는 것을 규칙이라고 생각해서 자연스럽게 차별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나눠주는 아주 작은 자본에 미혹되어 눈이 가려진 채로 우리끼리 아등바등 살고 있는 추악한 모습을 다니엘 꼬르네호는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람들 사이에서 위계와 지배, 억압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 관계의 정당성을 묻습니다. 힘을 행사하는 자가 자신의 위치와 행동을 정당화하지 못하면 나는 그 관계를 없애기 위해 싸웁니다. 지배자는 지배관계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덧붙여 지배당하는 자와 이를 목격하는 모든 이들은 그 지배관계를 의문시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정당성도 의문시해야 합니다.(중략)내가 발견하는 모든 지배관계에 같은 방식을 적용하여 분석합니다. 가족관계는 물론 정부들 사이의 관계까지요.”

 

꼬르네호는 우리 사회는 권력을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사회라는 점을 번개에서 통렬히 비판한다. 그러면서 사회 전반에서 권력 구조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놓치지 않았다. 정치와 경제에 따른 권력, 사회 문화적인 권력이 서로 연결되어 나타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다니엘 꼬르네호는 자신이 발견한 권력구조의 문제를 우리에게 친절히 그림에세이로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권력구조에 계속해서 우리가 스스로 물음을 던지며 권력구조에 대해 분석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번개'가 치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부조리하다는 것을 잊지 않고 우리 스스로 세상을 밝혀가는 것이야말로 세상이 더 좋아지는 방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사회비평을 하는 그림에세이라니 처음 받아들었을 때에는 만평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만평이 특정 사건을 다룬다면 번개는 좀 더 굵직한 사회 문제들을 폭 넓게 다뤘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사람이 한국 생활을 하며 쓴 책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문제를 담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서 다루는 사회 문제들은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스페인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봤다는 경험을 토대로 하여 자본주의와 권력구조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부정할 수 없는 사회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비평적인 관점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비판만 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라는 그들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지만 이 책의 의도는 일단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편 다니엘 꼬르네호는 비판을 하면서도 은근히 사회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비판한 문제 상황의 반대로 해보는 것이다. 권력구조에 순응하지 않고 반항해보고 우리 스스로 상품이 되지 않게 발버둥도 쳐보고, 사람을 차별 없이 보도록 노력해본다거나 하는 것들은 늘 제시 되어온 이야기지만 우리는 한 번도 실천해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그렇지 못했다는 부채감을 우리가 잃지 않게 한 번 시도해 볼 생각이라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이 책의 또다른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번 미투 운동으로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눈을 뜬 사람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해주고 싶다.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보고도 보지 못하는 불상사에서 벗어나 본 것을 보았다고 외칠 수 있는 마음 가짐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사회 문제가 만들어낸 피해자들인 우리가 서로 연대하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번개가 번쩍여 어둠을 가른다. 덕분에 눈앞에 창이 보인다. 번개가 칠 때, 창 옆에 서 있는 무언가의 윤곽이 잠시 드러난다. 불길해 보인다. 나를 감시하고 있다. 번갯불 덕에 그들의 몸이 보인다. 나를 가둔 존재는 인간들이구나. 그들을 비춰준 번갯불이 고맙다. 이제 두렵지 않다."

"나는 백화점에 자주 가. 딱히 쇼핑이 좋아서 가는 게 아니라 나도 상품이니까 가는 걸지도 몰라."

"사람들 사이에서 위계와 지배, 억압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 관계의 정당성을 묻습니다. 힘을 행사하는 자가 자신의 위치와 행동을 정당화하지 못하면 나는 그 관계를 없애기 위해 싸웁니다. 지배자는 지배관계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덧붙여 지배당하는 자와 이를 목격하는 모든 이들은 그 지배관계를 의문시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정당성도 의문시해야 합니다.(중략)내가 발견하는 모든 지배관계에 같은 방식을 적용하여 분석합니다. 가족관계는 물론 정부들 사이의 관계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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