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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다는 것
투에고 지음 / 자화상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소한 일에도 상처받고 아파하기도 한다. 세상살이가 참 숨가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보듬어 주지도 못한 채 묻어두고 산다. 계속 그렇게 상처를 받다보면 우리도 모르게 어느새 웬만한 상처에는 끄떡하지 않는 무딘 사람이 되어버린다. 투에고의 에세이집인 《무뎌진다는 것》은 세상의 때가 묻어서 무뎌져만 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엿본 것처럼 상처받은 우리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돌이켜보면 나도 삶을 살아오면서 내 안에 쌓인 상처가 많다. 잠재되어 있는 상처를 꾹 눌러 담아 숨기려만 했을 뿐, 치유하는 과정이 없었다. 그것을 글로나마 풀고 싶었다.
상처받은 자아, 치유하는 자아.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중주라 하여 필명을 '투에고'라 정했다.
- 《무뎌진다는 것》 중
작가의 내면에 상처받은 자아와 치유하는 자아가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지은 필명이라는 '투에고'. <1. 잘 살고 있는 건지>, <2.누군가의 꿈>, <3. 무뎌진다는 것>, <4. 내가 나를 기억해>라는 네 개의 장을 읽으며 우리는 필명이 의미하는 두 자아의 대화를 볼 수 있다. 자신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받았던 상처를 담담하게 풀어낸 글과 그렇게 상처 받았던 자신에게 때로는 다정하게 위로를, 때로는 솔직하고 단호한 조언으로 치유하는 글이 마치 서로 이야기를 하듯이 나온다.
아마 상처를 받으면서 자신이 했던 솔직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구조의 글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구조에 독자는 작가에게 자신이 받은 상처를 토로하면서 작가에게 치유받는 기분이 든다. 투에고가 솔직히 드러낸 그가 상처를 받은 상황은 엄밀히 말하면 주관적인 상황이지만 그가 받은 상처는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우리 자신을 떠올리며 투에고가 쓴 자신의 이야기에 우리를 몰입해가면 읽게 된다.
그러니 굳이 너무 완벽하게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돼.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니까.
쉽게, 쉽게.
때로는 마음도 가볍게 만들 필요가 있어.
- 《무뎌진다는 것》 중
표지 한 구석에 들어간 '내가 기억하는 모든 나에게'라는 문구는 《무뎌진다는 것》을 잘 나타내준다. 그는 이 에세이에서 자신이 삶에서 받아온 상처를 하나 하나 토로하면서 그 자신의 약한 부분을 보여준다. 이렇게 자신의 상처 받은 모습까지 보여준다는 점은 그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그런 자신의 모든 부분을 다 끌어안고자 한다고 본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나'는 괜찮은 나의 모습만이 아닌 나약한 자신의 모습까지도 포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가며 세상을 살아보고자 한다.
여기서 이 에세이의 매력은 그런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대하는 투에고의 자세이다. 그는 우리가 완벽해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좀 더 내려놓고 '쉽게, 쉽게' 살 필요도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불완전한 면모를 완전히 사랑하지는 못한다. 완전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후회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까지 보여주는 것이 이 에세이의 매력이다. 불완전해도 괜찮다고 다독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자신이 못내 아쉬운 그런 모습이 그가 얼마나 진실한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지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불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의 이야기는 공허하게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와 닿는다.
많은 사람들은 자발적 장애를 앓고 있다.
들을 수 있음에도 두 귀를 막고
볼 수 있음에도 두 눈을 감고
말할 수 있음에도 입을 닫는다.
가장 무서운 건,
무관심과 외면이다.
- 《무뎌진다는 것》 중
투에고는 《무뎌진다는 것》에서 단지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만 파고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눈을 바깥으로 돌려서 타인까지 본다. 관계에서 내가 상처를 받지 않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 또 타인의 상처를 외면하는 것까지도 그는 고민한다. 그런 그의 생각은 좀 더 넓게 사회에 대한 생각으로 퍼지기도 한다. 완벽하지 않은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그는 불완전한 개인들이 모여있는 사회에서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상처 주는지까지 그린다. 그런 타인과 사회에 대한 성찰까지도 합해지면서 시처럼 짤막한 글에도 무게감이 실린다.
《무뎌진다는 것》은 시처럼 짧은 글로 이루어져있지만 상처받은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에는 충분했다. 오히려 짧은 글이기에 독자가 자신의 생각을 입혀가며 읽기 좋기도 했다. 자신의 불완전한 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그의 글은 마치 달콤하면서도 쓴 초콜렛 같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처받은 나 스스로를 위해 이 책을 선물하기를 추천한다. 이 에세이집을 읽는 짧은 시간동안 불완전한 당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