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갈 수 있는 배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윤희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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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타임라인을 둘러보다 보면 공허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이 사회에, 자신의 삶에 잘 적응해서 이 사회를 살아나가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느낌이 종종 찾아온다. 다들 어떻게 저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나랑 같은 사람들일텐데, 그들은 나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는지, 왜 나는 그들처럼 일반적이지 않은지, 왜 사회에서 기대하는 바에 부응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한 사람, 바로 당신을 응원해줄 소설이 여기에 있다. 무라타 사야카의 멀리 갈 수 있는 배평범하지 못한 것 같아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무라타 사야카는 일본 소설 작가로, 그녀는 초등학생 시절, ‘이야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가보고 싶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 문학부 예술학과 재학 시절부터 편의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해서 데뷔한 후에도 일하는 틈틈이 소설을 써왔다고 한다. 그녀의 인생이 묻어나는 소설들은 일본 사회에서 많은 반응을 얻어냈고, 2016년에는 편의점 인간으로 일본의 양대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평범과 범상치 않음을 넘나드는 소설을 써내며 크레이지 사야카라는 별명을 얻었다.

 

멀리 갈 수 있는 배는 독서실에서 만난 세 여자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과 성적 취향을 찾아 헤매는 19살의 리호와, 여성스러움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31살의 회사원 츠바키, 인간이 아닌 우주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서 남다른 섹슈얼리티를 가진 31살의 치카코는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독서실이라는, 타인에 대한 큰 관심이 없어지는 공간에서 이들은 자신을 찾으려 한다. 이 곳에서 만난 세 사람이 같이 저녁을 먹으며 자신들의 섹슈얼리티, 즉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기호로서의 남자 혹은 여자의 신체가 아니라 그저 육체 그 자체로서 서로 사랑하는, 그런 단순한 행위를 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이 기호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멀리 갈 수 있는 배

 

첫 페이지부터 섹슈얼한 표현이 잔뜩 나오더니, 끝까지 섹슈얼리티에 대한 내용이 계속 나와서 당황스러울 수 있겠다. 하지만 단순히 섹슈얼리티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책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섹슈얼리티와 젠더라는 제재를 통해 정체성과 사회적 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자극적인 섹슈얼리티와 젠더라는 제재를 선택했을까?

 

사회에서 섹슈얼리티와 젠더는 타고난 것으로 가장 개인적인 부분으로 여긴다. 그렇지만 가장 사적인 영역인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영역에도 사회는 정상의 틀을 이미지로 제시한다. 젠더에 기대되는 역할은 물론, 섹스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조차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섹슈얼리티와 젠더라는 영역에서 사회에서 제공하는 정상의 범주에 소속되지 못하면 변태로 낙인이 찍히며 사회에서, 또 스스로 심리적으로 소외된다. 그렇기에 섹슈얼리티와 젠더는 수많은 정체성의 종류 중 어쩌면 가장 사적이어야 하지만 가장 공적으로 폐쇄적인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인 무라타 사야카는 이런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정형화한 정체성에 속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은 것이다.

 

저 독서실에서, 배에서, 어딘가 멀리 자유로운 곳으로 나가고 싶었어요. 나에게는 노아의 방주였거든요.” - 멀리 갈 수 있는 배

 

여기서 주인공이 사회에 잘 적응한 츠바키가 아닌, 리호와 치카코라는 점이 흥미롭다. 작중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리호, 츠바키, 치카코 세 명이지만, 실제 주인공은 리호와 치카코이다. 두 사람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리호와 치카코는 세상에서 제시하는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캐릭터들이다. 둘 모두 일반적인 범주에 소속되어 적응하지 못하는 것에 고민하는 캐릭터이다. 이들은 스스로가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는 것에 고민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 스스로 자유로워진다. 츠바키는 이들과 다르게 사회에서 제시하는 젠더와 섹슈얼리티 정체성에 안착한 캐릭터이다. 그녀에 기대되는 역할에 부합하기 위해 충실히 노력하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불만만 많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으로 본다. , 츠바키는 사회가 제시하는 틀에 순응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반적인 사람이고, 리호과 치카코는 사회에서 제시하는 틀에 속하지 못해 고민하고,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대비를 통해 저자는 사회에서 제시하는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을 이야기한다. 자유로운 바깥에서야 억압되지 않은, 온전한 자신을 마주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무라타 사야카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틀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제시한 방법은 연대이다. 19살 어린 나이에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자 괴로워 하는 리호는 우주적 관점에서, 사회를 바깥에서 구경하는 치카코와 연대하며 자신을 찾아간다. 치카코 역시 자신이 소꿉놀이와 같은 인간 사회에 끼어들고,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것에 고민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인간 사회는 만들어진 규칙으로 지어진 것이며 무용한 것임을 알고 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두 사람이 모여 서로의 고민과 생각을 털어놓으며 그들은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기에 치카코는 아직 세계가 제시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리호와 함께 사회에서 만든 한계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범상치 않은 두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민이 중심이 되다보니 조금 낯설고 어렵게 느낄 수 있다. 글 자체는 어렵지 않고 쉽고 깔끔하다. 중간중간 일본 여성들의 삶과 고민이 슬쩍슬쩍 묻어나서 섬세함도 드러난다. 여성 작가가 쓴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특히 여성 독자들이 쉽게 공감하고 몰입해서 읽기 좋을 것 같았다.

 

이 책은 앞서 말했듯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톨이라는 느낌을 받은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당신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 다르니까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 시점에 이미 당신은 좀 더 자유롭게 당신을 누릴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얘기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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