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요가 - 인도 최고의 지성과 영성, 비베카난다의 말
스와미 비베카난다 지음, 김성환 옮김 / 판미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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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마음의 요가>의 저자 비베카난다는 인도 최고의 영적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인도의 위대한 영혼 라마크리슈나가 인정한 유일한 계승자이기도 한 그는 스승의 타계 후 스승의 사상을 서양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는 모든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는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어떤 종교도 배척하지 않고, 나름의 쓸모를 인정하며 포용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런 관점은 세상 만물에 내재되어 있는 신을 통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며, 분리가 아닌 통합을, 우리가 곧 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가 신이고, 만물이 하나라면 세상은 서로를 적대시할 이유가 사라질 것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도 분명 긍정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이 책 <마음의 요가>는 인도의 <우파니샤드>를 근간으로 하는 베단타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서양인들에게 많은 강연을 통해 가르침을 전했던 비베카난다의 강연 중 베단타라는 주제를 다룬 핵심적인 강연 12편을 모아 펴낸 책입니다. 이 책은 다양한 비유와 체계적인 논리, 일상적인 언어를 통해 비교적 쉽게 그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고, 오랜 시간 숙고하고, 평생 동안 신을 보는 것에 매진했던 위대한 사상가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본문 중에서,

 

- 인간들은(그가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그 너머에 있는 완전한 인간의 희미한 반영체로 묘사한 신화들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정당화됩니다. 하나이자 무한한 영혼은 원인과 결과를 넘어서 있고,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않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 곧 하나의 영혼은 자유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결코 속박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속박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반영체인 현실 속 인간들은 시간과 공간, 인과관계에 의해 제한되어 있고, 속박되어 있습니다. 또는, 다른 철학자들의 말을 빌자면, 그는 속박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도 합니다. 이것이 무한하고 편재하며 영적 본성을 지닌 우리 영혼의 진실입니다. 영혼은 무한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습니다.(p.30~31)

 

- 분리된 관념을 버리고 과거나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칠 때, 한정된 체로 가고 오는 이 몸의 관념을 포기할 때, 사람들은 더 고차원적 이상을 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진정한 것이 아니고, 이는 마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은 강해졌다 약해지기를 반복합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이들 배후에 존재하는 영혼뿐입니다. 몸과 마음은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사실상 일련의 현상들에 붙여진 이름들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흐르면서도 같은 모습으로 비춰지는 강물과 비슷합니다.(p.32)

 

- 모든 윤리 체계의 심장부에는 공통된 중심 관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결국은 타인을 향한 선행이라는 하나의 의미로 모아집니다. 인류의 핵심 동기는 다른 사람을 향한 자애, 모든 생명을 향한 자애입니다. 이때, 이런 말들은 모두 내가 곧 우주이고, 이 우주는 하나다.’라는 영원한 진리의 다양한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p.39)

 

- 가장 근본적인 무지는 무한자가 한탄하고 슬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한마디로 무한자를 유한자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무지의 기반입니다. 순수한 불멸자이자 완벽한 영혼인 우리가 자신을 작은 마음으로, 작은 몸으로 생각하는 것, 이것이 모든 무지의 뿌리이고, 모든 이기심의 어머니입니다.(p.41)

 

- 우리는 세상을 우리 식대로 바라봅니다. 탁자 위에 금이 든 가방이 놓여 있고 옆에 아기가 있다고 해 봅시다. 이때 도둑이 들어와 금을 훔쳐간다면, 아기가 과연 도둑을 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겉으로 볼 수 있는 건, 그것이 우리 내면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도둑을 보지 못하는 건, 내면에 도둑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는 모든 지식에 적용됩니다. 그러니, 세상의 사악함과 죄악에 대해 말하지 마십시오. 대신 당신 눈이 여전히 사악함을 본다는 사실에 슬퍼하십시오. 당신 눈이 모든 곳에서 죄를 본다는 사실에 슬퍼하십시오.(p.47~48)

 

- 절대자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관념, 자연을 훨씬 넘어선 곳에서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관념은 교정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자라는 이상을 가까이, 더 가까이 가져와야 합니다. 그것의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손상시키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에 있는 신은 자연에 내재된 신이 되고, 자연에 내재된 신은 자연 그 자체인 신이 되며, 자연 그 자체인 신은 인간의 몸이란 이 신전 속에 거주하는 신이 되고, 몸이란 이 신전 속에 거주하는 신은 결국 신전 그 자체가 됩니다. 마침내 영혼과 인간 전체를 포괄하게 되는 것입니다.(p.71~72)

 

- 베단타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자신이 짐작해 온 대로의 세상을 포기하라. 너의 짐작은 매우 제한된 경험에, 매우 빈약한 추론에, 너 자신의 허약함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세상을 포기하라. 오랜 세월 동안 당연하게 여겨 온 그 세상, 오랜 세월 동안 집착해 온 그 세상은 스스로 창조해 낸 거짓 세상이다. 그 세상을 포기하라. 눈을 뜨고 그런 세상이 결코 존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라. 그것은 꿈, 마야다. 진정으로 존재하는 건 그 자신뿐이다. 아이의 내면에, 아내의 내면에, 남편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가 바로 . 선함 속에, 악함 속에 존재하는 자가 바로 . ‘는 죄 속에도 있고, 죄인 속에도 있다. ‘는 삶 속에도 있고, 죽음 속에도 있다.”(p.83)

 

- 우리는 살면서 크게 후회할 만한 일들을 수백 가지는 저질러 왔지만, 그 실수들은 동시에 위대한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저로서는, 지금까지 살면서 좋은 일도 해 보고 실수도 많이 저질러 봤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쁩니다. 내가 올바른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기쁘지만, 많은 실수를 저질러 왔다는 사실 역시 기쁩니다. 그 모든 경험 하나하나가 위대한 교훈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생각들과 모든 행위들의 총합입니다. 각각의 생각과 행위가 나름의 영향력을 일으켰고, 그 영향력들이 장기간 축적되어 지금의 모습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p.84~85)

 

- 삶을 신성한 것으로, 신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부단히 일하는 것이 우리가 알고 행해야 할 모든 것임을 베단타 철학은 알려 줍니다. 신은 모든 것 속에 존재합니다. 그 밖의 어느 곳에서 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미 모든 것 속에, 모든 생각 속에, 모든 느낌 속에 현존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행위와 결과에 구속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p.89~90)

 

- 생각은 우리 내면에서 추진력으로 작용하는 힘입니다. 그러니 내면을 가장 고차원적인 생각들로 채워야 합니다. 그것을 매일같이 듣고 숙고하십시오. 실패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주 자연스런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실패들은 삶의 아름다움 자체입니다. 실패가 없다면 삶은 대체 뭐가 되겠습니까? 만일 삶에 투쟁이 없다면 산다는 것에는 별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시적인 측면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실수와 투쟁 같은 것들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저는 소가 거짓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소는 인간이 아니며, 그저 소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인간적인 실수나 작은 퇴보들에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단지 이상을 위해 1,000번 시도하고, 민일 1,000번 다 실패한다 해도 한 번 더 시도하십시오. 인간의 이상은 모든 것 속에서 신을 보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p.94)

 

- 사물들의 심장부에는 어떤 단일성이 존재합니다. 표면 아래로 파고들 수만 있다면, 당신은 인간과 인간 사이, 인종과 인종 사이, 높음과 낮음 사이, 부자와 빈자 사이, 신과 인간 사이, 인간과 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된 단일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충분히 깊이 들어갈 수만 있다면, 당신은 모든 것이 하나의 변형체에 지나지 않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p96)

 

- 모든 행복에는 불행이 그림자처럼 뒤따릅니다. 삶에 항상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우듯, 이 둘은 함께 갈 수밖에 없습니다. 동일한 실체의 두 측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실체가 삶과 죽음, 슬픔과 행복, 선과 악 등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두 개의 분리된 개체라는 관념, 이 각각의 개체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이원론적 관념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하나의 동일한 실체가 한 번은 나쁘게, 다른 한 번은 좋게 구현된 것뿐입니다. 그들은 모순되는 두 개의 실체가 아니며, 그들 사이에는 종류의 차이가 아닌 정도의 차이만이 존재합니다.(p.105)

 

- ‘는 움직이는 모든 것들 속에 존재합니다. ‘는 순수한 모든 것들 속에 존재합니다. ‘는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는 집을 찾는 손님이고, 사람 속에도, 물속에도, 동물 속에도, 진실 속에도 존재합니다. ‘위대한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불이 다양한 형상들을 취하듯, 우주의 진정한 영혼인 도 그 자신을 이 모든 다양한 현상들로 현현시킵니다. 우주에 나타나는 공기가 다양한 형상들을 취하듯, 모든 영혼과 모든 존재들의 진정한 영혼인 도 그 자신을 이 모든 현상들로 현현시킵니다.(p.115)

 

- 베단타는 우리가 지녀야 할 유일한 기도가 다음과 같다고 가르칩니다. “내게는 죽음도, 두려움도 없다. 내게는 계급도, 사상도 없다. 내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탄생도, 죽음도, 친구도, 적도 없다. 나는 존재이자 의식이자 지복인 절대 자체다. 나는 축복받은 존재이며, 내가 그 축복받은 하나. 나는 덕에도, 악덕에도, 행복에도, 불행에도 구속당하지 않는다. 순례와 책과 의례로는 결코 나를 움켜줄 수 없다. 내게는 배고픔도, 갈증도 없다. 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몸이 겪는 망상과 부패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 나는 존재, 의식, 지복의 절대자다. 나는 축복받는 존재이며, 내가 그 축복받은 하나.”(p.153)

 

- 비난을 에게 돌리면서 신을 심판자나 보상자로 만드는 우리의 태도는 무지의 산물입니다. 그는 심판하지도 보상하지도 않습니다. 그의 무한한 자비는 모든 이들에게, 모든 장소에서,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모든 조건하에서 그 자비는 변함이 없고,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 자비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을 비난하지도, 신을 비난하지도 마십시오. 고통 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은 뒤, 더 잘할 수 있도록 시도해 보십시오. 이건만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입니다.(p.201)

 

- 불이이원론 철학에 의하면, 우주는 진실된 것이 단 하나뿐입니다. 브라흐만이라 불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마야의 힘에 의해 브라흐만으로부터 현현되어 나옵니다. 브라흐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는, 브라흐만이라는 그 실재에 마야를 더한 결과물입니다. 이러한 마야, 즉 무지를 제거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p..233~234)

 

- 저는 그 어떤 종파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종파들이 존재해서 기쁘고, 앞으로도 종파들이 더더욱 많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당신과 나, 그리고 여기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완전히 똑같은 생각만 한다면, 우리에게는 생각할 거리가 전혀 남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다양성은 생명의 징표입니다. 따라서 종파는 존재해야만 합니다. 나는 종파가 계속해서 증가하기를, 그리하여 결국, 종파의 수가 세상의 인구수만큼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종교관을 갖게 되기를 기도합니다.(p.344~345)

 

- 이 사람들은 서로를 적대시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 각각은 세상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 다양한 마음들 모두를, 이 다양한 유형들 모두를 필요로 합니다. 이상적인 종교라는 게 가능하다면, 그 종교는 이 모든 마음에게 양식을 공급할 정도로 넓고 클 것이 분명합니다. 그 종교는 철학자들에게 철학의 힘을 공급해 주고, 숭배자들에게 헌신적인 가슴을 제공해 주며,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에게 온갖 종류의 놀라운 상징을 제시해 주고, 시인들에게 충분한 감흥을 불러일으켜 줄 것이 분명합니다. 그처럼 광대한 종교를 만들려면, 우리는 종교의 원천으로 되돌아가, 그들 모두를 하나로 융합해 내야 할 것입니다.(p.364~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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