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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깨어나는 지금 - 나날이 닦는 즐거움에 대하여
알마스 지음, 김훈 옮김 / 김영사 / 2018년 4월
평점 :
저자는 세계적인 영적 교사이자 자기실현 기법인 ‘다이아몬드 어프로치’의 창시자입니다. 이 책 <늘 깨어나는 지금>은 ‘다이아몬드 어프로치’의 가르침을 포함하여 다른 여러 가르침들을 더 큰 관점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수행과 깨달음의 상관관계를 전체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이 모두 수행을 할 수 있는 기회이며, 삶의 모든 활동이 곧 수행의 일부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걸을 때는 걷고, 앉을 때는 앉으며, 먹을 때는 먹고, 명상할 때는 명상하라. 저자는 이렇듯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현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의 다양성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겸허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삶을 바라본다면 삶은 우리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자기중심성이 강한 에고가 아닌 참나로서, 참본성으로서 삶을 바라보게 합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고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는 전체성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렇게 수행과 깨달음은 조화를 이룹니다.
‘나’라는 존재는 참본성과 실재가 표현되는 통로입니다. 깨달음의 길은 끝이 없습니다. 깨달음의 끝없는 여정 속에서 수행에 정진하다보면 참본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그에 따른 삶의 체험도 경이롭게 우리에게 펼쳐질 것입니다. 수행과 깨달음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이 책 <늘 깨어나는 지금>은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 우리는 스스로와 교감하는 참된 실재(rellity)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당신으로서, 나로서, 다른 모든 이로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실재의 에센스다. 내가 보기에, 진리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더없이 간절한 것이 될 때 우리는 실재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럴 때면 실재 그 자체가 그것의 모든 일상적인 표현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우리 삶은 실재의 끝없는 드러남, 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이 될 수 있다. 당신이 보고 있는 이 책은 실재의 그 끝없는 속성, 삶이라는 모험의 그침 없는 펼쳐짐을 지적하려는 내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p.17)
- 깨달음의 구현은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실재가 원하기 때문에 사물들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들에게 우리를 열어주면서 더 깊은 깨달음으로 발전하는 깨달음이 된다.(p.23)
- 실재는 끝없는 신비다. 실재는 항상 스스로를 아는 것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 실재를 알고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 우리 삶의 완성이 된다. 실재의 청정함은 우리에게, 우리를 통해서, 우리로서, 동시에 그 모든 것으로서 스스로를 표현한다. 우리 삶은 의식적으로 살고, 우리로서 스스로를 표현하고, 우리로 존재함으로써 우리를 사용하는 참본성, 곧 실재의 핵심에 자리한 청정함의 삶이 된다. 이런 점이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인간 자유의 핵심이다.(p.27)
- 우리가 ‘깨달음’이라고 할 때 그 말은 무엇을 뜻할까? 일반적으로 깨달음은 영적 탐구 행로에서의 진보를 뜻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자신의 본성으로 존재하는 것을 통해서, 나와 내 본성이 둘이 아님을 알아차리는 것을 통해서, 나와 내 본성이 같은 것임을 아는 것을 통해서, 내 본성을 비이원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p.32)
- 간단히 말해, 수행은 실재와 함께하면서 명상도 하고 스테이크도 먹는 등의 일을 하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 수행은 우리의 공식적인 수행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탐구하고 있거나 명상하고 있을 때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수행은 현존하는 것을 통해서, 곧 나날의 삶을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통해서 삶의 모든 순간과 맞닥뜨리는 것이다.(p.35)
- 수행이 깨달음을 완전하게 표현할 때 수행은 곧 깨달음이다. 그리고 수행이 깨달음을 완전하게 표현하기 전에조차도 수행은 이미 깨달음이다. 참된 마음가짐으로 수행하는 것은 항상 깨달음을 어느 정도 표현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진지한 마음가짐을 갖고서 제대로 수행하기 시작한다면 우리가 알든 모르든 간에 깨달음은 이미 그곳에 있다. 그러므로 어느 의미에서는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미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p.38)
- 수행과 깨달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역동이다. 하나는 영혼의 작용으로 나타나고, 다른 하나는 참본성의 드러남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은 나눌 수 없는 한 과정이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의 원인이 되지도 않는다. 나는 그런 점을 알면 알수록 어떻게 해서 수행이 깨달음이고 깨달음이 수행인가를 더욱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p.103)
- 수행은 당신이 명상하고 염송하고 영적 훈련을 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수행은 항상 하는 것이 될 수 있다.(p.142)
- 전체성의 관점은 이 모든 관점들을 갖고 있으며, 개인이나 다른 어느 누구도 아직 알지 못하는 관점들도 역시 허용해준다. 따라서 이 관점은 완전히 열려 있고 자유롭다. 전체성의 관점은 우리가 그 관점을 완전히 이해할 때면 특정한 어떤 한 관점에 고착하거나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많은 관점들을 포함하고 인정할 수 있으며, 그와 동시에 전체성의 관점은 특정한 어떤 시점에 어떤 한 관점을 우리의 이데올로기나 실재에 관한 결론으로 여기고 집착할 필요 없이 그냥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우리에게 제공해준다.(p.146)
-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를 전체성으로, 전체적인 우주로 경험한다. 우리는 모두 우주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는 우주의 본성인 참존재며, 그런 변화는 곧 우주 진화다. 달리 말해 참본성의 드러남이 곧 우리가 보는 우주요. 우리가 맛보는 경험들이다. 그러나 참본성은 그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광대하고 신비로우며, 투명하도록 맑고 텅 비어 있으며, 현존으로 가득하다. 비이원적 깨달음은 분명 자유의 상대요 깊은 깨달음의 상태며, 일부 가르침들은 그런 상태 속에 있는 것을 진정한 깨달음으로 여긴다.(p.162~163)
- 그들 각자(각각의 영혼을 뜻함)는 그 차체 안에 전체를 포함하고 있고 그와 동시에 다른 모든 것 속에서 전체를 보고 있기에(비이원적 상태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체지만, 다른 모든 것 속에서는 전체를 보지 못한다), 그 어디에서나 전체가 존재하고, 전체는 전체이자 각각의 전체이며, 그렇게 해서 무한한 영광이 펼쳐진다. 그들 각자(각 개별자들)는 거대하다. 작은 것들도 거대하다. 거기서 태양은 모든 별이요, 다시 모든 별은 모든 별의 태양이다...... 거기서 각각의 존재들은 전체의 영원한 산물이고, 전체면서 그와 동시에 부분으로 나타나는 개별자들이다. 하지만 예리한 안목을 지닌 이에게 그 개별자는 전체로 알려진 개별자다.(p.170)
- 당신이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깨달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수행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꼭 앉아서 명상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열린 마음으로 실재에 관심을 갖는 것을 뜻한다. 당신이 배우고 진화하고 성숙한다면, 그것이 바로 수행이다. 그와 동시에 깨달음은 단지 수행을 통해서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깨달음의 두 측면인 수행과 은총 둘 다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꼭 둘이 아니고, 그렇다고 꼭 하나도 아니다.(p.184)
- 우리는 실재가 이원적인 것이라거나 비이원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로지 인간들만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알려면 사물과 현상들을 분리시키고, 분리가 뭔지 알고 있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그런 이분법을 넘어서 있을 때, 실재는 단지 실재일 뿐이다. 그 경험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상, 곧 유일무이함에 대한 증폭된 감각 속에서 생겨나는 개별적인 것들의 광휘에 대한 자각이 될 뿐이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상호작용하는 둘도 아니고 현현되는 하나도 아니다. 그것은 둘 다이자 둘 다가 아니며, 전체적인 참존재의 활력을 통해서 조명된 실재의 경이이자 신비다.(p.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