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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천선란.윤혜은.윤소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평점 :
[하니포터 7기 서평]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천선란∙윤혜은∙윤소진 저, 한겨레출판(2023)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일기를 꾸준히 쓰는 사람들이 주변에 그리 많지는 않다. 나 또한 그렇다. 이유가 무엇일까? 하루의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잠들기 전에 유튜브나 SNS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대부분의 루틴이 되었고, 그 사이에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끼워 넣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일기를 쓰고 싶어질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일기와 수다가 교차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도서이다. 세 분의 수다 같은 일기, 일기 같은 수다를 접하면 마음이 따스해지는 느낌이다. 살아가며 하는 고민은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하다. 인간관계, 실패, 사랑, 번아웃, ∙∙∙∙∙∙. 그러한 고민들에 때로는 재치 있게, 때로는 누구보다 울적하게, 때로는 솔직하게 답변해주신다. 그게 왠지 위로가 되었다.
또한 이 책은 팟빵의 팟캐스트 “일기떨기”에서 시작한 책이다. 호기심에 팟캐스트도 들어 보았는데, 다른 콘텐츠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매력을 느꼈다. 시각적 자극 없이 온전히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기분을 느꼈다. 이 책 덕분에 일기뿐만 아니라 팟캐스트의 매력도 알게 되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드는 생각은,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 팟캐스트 1화에 일기에 대해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별로였지만 내일이나 모레쯤엔 또 모르지'라 는 막연한 낙관으로 일기를 쓴다. 기다리던 내일과 모레가 한참 늦게 와도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우선은 별로인 오늘에 최선을 다한다. 일기장 앞에선 최선을 다해 하루를 미워하되, 아침이 밝으면 뒤끝 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내 하루를 미워하는 것이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최악의 하루는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최악의 ‘나’로 이어지지 않게 해주는 수단이 일기인 것 같다. 이리저리 산재된 내 잡념을 한 데 모으는 과정, 하루 동안 겪었던 불행을 하나의 글에 집적시키는 과정이 오히려 그것을 털어낼 수 있게 도와준다.
언젠가는 꼭, 일기를 쓰기 시작해야겠다. 이런 마음이 들게 해준 이 책에게 감사하다.
- 문장들
좋아하는 게 많은 것과 표현하는 건 좀 다른가? 그래, 다를 수도 있겠다. 좋아하는 게 많은 건 그저 내 안에 담아두고 쌓아두고 간직하면 되지만 표현하는 건 꺼내야 하니까. 꺼내어 주는 걸, 어릴 때부터 못했던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될 거라고 믿었지만 이십 대의 나는 만남보다 많은 이별을 했고, 누구의 잘못도 없는 다툼을 했으며 그렇게 원망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들었다.
이십 대는 내게 정말 최악이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지만 삭제하고 싶은 시절은 아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삼십 대가 될 것이다. 삼십 대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해 상처받고 좌절하고 또 다른 최악을 경험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 나는 이십 대의 나를 견뎠으니까. 그런 의미로 이십 대의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가련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살아가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인생은 그리움에서 그리움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까지도.
∙∙∙∙∙∙ 그러고 나서 나는 섬에 그리워하러 온 게 아니라 누군가를 더 깊이 좋아하기 위해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굳셈을 과신하지만 동시에 그런 자신을 아슬아슬하게 여기기 때문에 나약함을 들키려거든 부디 안전한 곳에서 무너지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여전히 밀어붙이기를 멈추지는 않은 채로 살게 되는 시기가 있다.
“저는 난관이나 처한 상황을 게임이나 하나의 소재로 생각하는 게 진짜 잘 돼요. 마치 내가 주인공 같잖아요. 나를 저 드라마 속에 주인공으로 넣어놓고 잠깐 떨어져서 어떻게 깨나 보자! 약간 이런 게 있어야 해요.”
나는 모두가 꿈을 꿨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제 이 말은 마치 모두가 외로웠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읽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어차피 우리는 모두 외로우니까 외로운 김에 꿈을 더 꾸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