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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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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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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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다. 이때 교회에서 구유에 작은 아이 예수를 꾸미고 미사를 드린다. 펄룽은 아이를 낳은 한 소녀를 구출한다. 그 소녀는 펄룽의 엄마 이름과 같은 '사라'라는 이름을 갖고 있고, 14주 된 아이를 빼앗겼다. 수녀원의 차가운 창고에 감금되어 있었다. 펄룽은 며칠 전 소녀를 데려오지 않고 수녀들에게 되돌려주었다. 소녀는 숨바꼭질 장난 때문에 창고에 숨어들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펄룽은 배로강에 빠져 죽어버리고 싶다는 소녀의 말을 들었다. 수녀원장은 크리스마스 보너스 봉투를 챙겨 펄룽을 돌려보낸다. 이 소설은 구조에 복종하지 않은 작은 사람의 이야기다.


처음 소녀를 목격했을 때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경고했다. 미시즈 윌슨처럼 부유한 사람이나 남을 도울 수 있는 거라고. 세상에는 사고를 치는 여자들이 있다고.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펄룽이 세탁소 소녀를 목격했다는 소문은 작은 마을에 금세 돌았다. 야적장 근처에서 식당을 하는 미시즈 케호는 조언했다. "그 수녀들이 안 껴 있는 데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이 근방에서 잘 풀린 여자애 중에 그 학교 안 다닌 애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야." 펄룽은 야적장에서 외국인들과 일한다. 석탄, 토탄, 무연탄, 분탄, 장작의 무게만큼 돈을 벌었다. 크리스마스에 다섯 딸이 원하는 선물을 챙겨 줄 수 있는 것도 이 덕분이다.


펄룽은 어째서 얼어붙은 맹꽁이자물쇠처럼 가만히 있지 못했을까? 일요일만 되면 반추가 계속된다. 정신없이 일을 할 때는 괜찮지만 "[나는] 왜 다른 남자들처럼 미사 마치고 맥주 한두 잔 마시면서 쉬고 즐기고 저녁 배부르게 먹고 불가에서 신문을 보다가 잠들 수 없는 걸까?" 어린 시절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빠 또는 농장을 담은 지그소 퍼즐을 받고 싶었다. 미시즈 윌슨은 『크리스마스 캐럴』 책을 주었다. 몹시 서운해서 울었다. 엄마 사라는 미혼모지만 박대받지 않고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나를 낳고 키울 수 있었다. 펄룽은 가난한 태생이지만 부유한 집에서 자랐고 빌이라는 개신교 이름을 얻었다. 어린 시절부터 물었다. 학교에서 펄룽은 아빠가 없는 아이라는 이유로 비웃음과 놀림을 당했다.


내 아버지가 누굴까? 네드가 아프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니까 인사하고자 네드를 들렀다. "닮았어요. 네드가 삼촌이에요?" 미시즈 윌슨 집에 새로 일하는 여자가 펄룽에게 물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네드가 아버지일 수도 있겠다고 알아차렸다. 농장 일꾼으로 살았지만 네드는 만족하고 살았다. "일요일이 되면 미시즈 윌슨은 (…) 네드가 운전하는 포드 자동차를 타고 교회에 갔고, 네드는 엄마와 아이를 태우고 조금 더 가서 성당으로 갔다." 만약 네드가 아버지라면 아버지는 엄마와 나를 버리고 떠난 게 아니었다. 항상 곁에 있었다. 왜 그렇다면 말하지 않았을까? 사라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지 않았을까? 아마도 사정이 있었을 거다.


몇 년 전 미시즈 윌슨에게 아버지에 대해 묻기 위해 방문했지만 없었고 부엌에서 담배를 피던 네드를 만났었다. 네드의 방으로 따라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펄룽의 아빠가 누굴지에 대해서 묻고, 엄마에게 어떤 남자가 있었을지 물어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이날 네드가 노래했던 〈까까머리 소년〉을 기억한다. 뒷머리가 쭈뼛 섰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펄룽은 생각도 못 했다. 네드가 자신의 아버지일 수 있다는 걸. 그토록 닮아 보이는데 어째서 몰랐을까? 네드가 함께 지내면서 아버지라는 걸 안 밝혔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엄마도 왜 얘기를 안 했던 걸지도. 이제는 미시즈 윌슨과 어머니는 죽었기에 물어볼 수 없고, 네드는 아마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처연한 노래만 기억에 남는다.


펄룽은 그날 네드를 못 만나고 돌아왔지만, 평생을 궁금해하던 답을 찾은 것 같다. 자신은 버려진 아이가 아니었다. 숨길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거다. 미시즈 윌슨의 친절에도 이야기가 있었을 거다. 농장 일꾼과 하녀가 자신의 집에서 아이를 낳고 살도록 해줬다. 그 덕분에 펄룽은 잘 자랐고, 결혼을 해서 아내와 딸아이를 다섯 두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수녀원에서 소녀를 구출해 왔다. 자신이 받은 친절을 되돌려주고, 누군가 자신의 어머니를 구출했듯이 펄룽이 사라라는 소녀를 구출해 나온다. 소녀를 구조했기 때문에 "평생 지고 살아야 했던 일은 지나갔고" 두려웠으나 "순진한 마음으로 어떻게든 해나가리라고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펄룽은 소녀 사라를 구출하면서 어머니와 자신을 구출했고, 자신의 평생의 짐을 내려둘 수 있었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버려진 아이라는 수치심.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혼돈이 정리됐다. 네드에게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네드를 받아준 미시즈 윌슨에게도 이야기가 있을 거다. 그 이야기를 알 수 없어도 괜찮고 꼭 알아야 하지도 않다. 수녀원에 맞섰기에 딸들의 미래가 저당 잡힐 수 있어 두렵지만 이 소녀를 돌보기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최대한 용기를 내서 맞서기로 했다. '나는 건장한 체격을 지녔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사내가 아닌가?' 불량품이 아니다. 부모에 더해 미시즈 윌슨의 사랑까지 받고 자라났다.


네드의 정체에 대해서 가설을 세워서 추론해 볼 수 있다. 왜 아버지란 정체를 숨겼는지, 미시즈 윌슨은 뻔히 알 수 있었을 텐데 이 아이를 왜 보호했을지. 네드가 〈까까머리 소년〉을 부른다는 점에 착안해 볼 때, 그는 1920년대 아일랜드 내란과 혼돈기를 겪고 은둔한 인물로 보인다. 미시즈 윌슨에게 네드가 단지 농장 일꾼이었다면, 자신의 집에서 하녀 소녀 사라와 통정해서 아이를 낳는 걸 용인할 이유가 적다. 미시즈 윌슨은 일요일이면 네드가 자신의 포드 자동차로 매번 사라와 펄룽을 태우고 미사에도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네드는 방탕자라서 혼외자를 만들고 나 몰라라 하는 남자가 아니었고, 네드와 사라 사이에 혼전 실수로 아이가 생긴 거라도 해도 미시즈 윌슨은 도움을 줄 만큼 친절해 보인다. 게다가 펄룽처럼 네드도 “건장한 사내”였다. 수녀원장의 압박 아래서도 펄룽은 두렵지만 용기를 갖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아직 옛날이던 이때는 남자가 힘들지만 열심히 일한다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네드는 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자신이 펄룽의 아버지고, 사라의 남편이라고 밝히지 못했을까?


나의 가설은 이렇다: 네드는 아일랜드 저항 운동가였을 수 있다. 그렇기에 영웅적인 행적을 갖고 숨어 지내는 걸지 모른다. 하지만 이 가설은 그가 왜 개신교 집안인 미시즈 윌슨의 집에 의탁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또는 다른 추측이 가능하다. 네드는 아일랜드 저항운동가들에게 어떤 연유로 인해 “밀고자”로 낙인찍힌 사람이다. 도주해서 새 삶을 사는 중인 인물이다. 1920년대 아일랜드 독립운동은 분열되어 내전 양상을 띠었다. 혼돈의 시기가 왔고, 지주들과 개신교도들에 대한 테러의 위험이 고조됐다. 네드도 아마 그때는 평범한 사내였을 테다. 그도 가톨릭교도고 아일랜드 저항전선과 약한 연결관계가 있었던 평범한 사람일 테다. 그도 여느 청년처럼 민족정서를 갖고 있고 독립을 원했고 오랜 세월 박해받았던 기억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는 그가 부르는 노래 〈까까머리 소년〉이 전해온 오래된 아일랜드인의 반란 기억과도 겹쳐진다. 그렇지만 네드는 들불처럼 번지는 방화와 테러 앞에서 대의보다 양심을 선택을 했을 테다. 개신교 지주 또는 부역자로 낙인찍힌 아일랜드인들을 도왔다. 도주를 도운 것일지도, 더 적극적으로 구출한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영웅적 행적이 있었는지가 아니다. 네드가 선택한 것이 큰 대의가 아닌 작은 사람이라는 점이고, 이 때문에 가톨릭교도고 아일랜드인이며 지극히 정상인 건장한 사내였던 그는 숨어든다. 부유한 개신교인 미시즈 윌슨의 농장에 의탁해 산다. 아내와 정당한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자식의 곁에 머물 수 있음에 만족한다. 결혼은 교구 문서를 필요로 하고 자신의 행적이 밝혀질 수 있다.


소설은 이런 큰 이야기를 재구성할 근거는 제공하지 않았다. 나의 가설일 뿐이다. 그러나 클레어 키건이 남겨둔 펄룽과 딱 붙은 이야기 밖 공간의 바람이 유혹한다. 배로 강이 흐르는 이 땅의 구슬픈 노래, 양심의 고뇌를 느꼈을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싶어진다. 그들은 글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아름다운 작은 단어들만이 남았다. 이 어휘들이 가끔 고개를 내밀고 말을 건넨다. Adeste Fideles 같은 라틴어도, 『크리스마스 캐럴』을 적은 디킨스의 영어도 아닌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 입에 붙은 말이 있다. 펄룽이 소녀에게 건네는 말에서도 이 말이 고개를 내민다.


"Is there anything I can do for you, a leanbh?"

애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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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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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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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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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Hello, Stranger."

마이크 니콜스의 영화 "클로저"(2004)의 첫 라인이다. 앨리스는 미국인이고, 스트리퍼로 일을 때려치우고 런던으로 넘어왔다. 그녀는 인생이 알 수 없으나 즐거운 몇 안 되는 순간에 있다. 출근길 인파 사이를 걷는 앨리스와 맞은 편 저 멀리에서 걸어오는 한 남자가 눈을 마주치며 걷는다. Damian Rice의 The Blower’s Daughter가 깔린다. 그 남자는 댄이다. 인상 깊은 오프닝 시퀀스이다.


앨리스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주시하는 댄에게 웃어 보인다. 댄이 받아 미소 짓는다. 대로의 한 복판이지만, 마치 두 사람만이 있는 것처럼 주변을 잊는다. 긴 시선을 주고받는다. 그 순간 앨리스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인다. 앨리스는 정신을 잃기 전 자신의 곁으로 달려든 댄을 바라보며, 첫 대사를 말한다. 

“Hello, Stranger.” 댄은 앨리스를 병원으로 옮기고, 깨어난 앨리스는 댄과 함께 지내게 된다.


여기까지가 "클로저"의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 장면은 그 자체로 뻔하지만 재밌는 말장난이다. 

“bump: 부딪다, 충돌하다“, “bump into: 예상치 못하게 누군가와 만나다”. 

이제 막 입국해서 공항을 나서 런던의 대로를 걷던 앨리스는 예상치 못한 거리에서, 예상치 못한 남자와의 시선에 눈이 팔려 차에 치인다. 댄은 그녀를 병원으로 옮기고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고, 오전 시간 동안 출근하지 않았다. 댄의 친절. 이 친절 때문에 만나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으로부터의 친절으로 시작되는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이다. 앨리스는 나탈리 포트만이, 댄은 주드 로가 맡아 연기했다.



Blanche “Whoever you are — 

I have always depended on the kindness of strangers. 

이것은 블랑시가 결코 선택하지 않았어야 할 삶의 태도였다. 타인의 친절에 의존하는 것. 친절은 값비싸다. 의존하게 된다. 독립성을 잃은 이후에는 무엇을 내놓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공짜로 주어지는 친절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까지 모르겠다. 운 좋았을 뿐 나는 내가 받은 친절이 선한지 악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Blanche The opposition is desire. So do you wonder? 

How could you possibly wonder!

블랑시는 의심스러운 여자다. 마지막 결말을 알기 전까지 블랑시를 동정하기 보다는 비난하기 쉽도록 짜여있다. 블랑시는 단지 정신나간 사람이거나, 이상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녀는 비극적 인물이다. 9장의 블랑시의 라인이다. 이 라인은 과거 고백의 피크다. 스텔라가 벨 리브를 떠난 10년 동안 벨 리브에서는 죽음이 끊이지 않았고 Dubois 가는 몰락했다. 

“반대는 욕망이죠. 이상한가요? 어떻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어요!” 모든 사람을 잃고 혼자 남은 블랑시는 낯선 사람과의 관계를 도피처로 삼았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수단으로 욕망을 선택했다. 이러한 욕망과 죽음의 관계는 1장에서도 언급된다.



Blanche They told me to take a street-car named Desire, 

and then transfer to one called Cemeteries and ride six block 

and get off at — Elysian Fields!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이곳은 그녀의 운명이다. 스텔라가 스탠리와 가정을 꾸리고 있다. 블랑시는 자신이 의존할 수 있는 새로운 친절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 결말은 파멸이었다. 어째서일까. 테네시 윌리암스는 죽음이 아닌 파멸을 제시한다. 블랑시는 친절한 남자들에 의해 망가져 왔고, 스탠리에 의해 붕괴한다.블랑시는 파멸을 선택하지 않았다. 또 다른 친절에 의존하고자 했을 뿐이다. 블랑시는 문제 많고 이기적인 인물이 맞다. 그러나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블랑시는 어느 순간부턴가 자신을 조금씩 잃어버렸고 스탠리에 의해 완전히 자신을 잃어버린다. 친절한 이들의 폭력에 자신을 잃었다. 그녀는 날카롭게 말한다. "그래요! 그래, 잊은게 있어요!”


우연히 쇼츠를 통해 안나가 앨리스를 촬영하는 스튜디오의 장면을 보았다. 이 장면만큼은 언제 다시 보아도 눈을 떼기 어렵다. 사운드트랙으로 쓰인 Damian Rice의 The Blower’s Daughter의 가사가 곧바로 떠오르고, 영화를 찾아 다시 보게 된다. 한참을 빠져서 엔딩까지 보고나면 나는 항상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이 영화를 연결 지어보면서 의미를 찾아본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이야기이지만, '여성 캐릭터에게 우연과 친절의 역할이 어떠한가?'에 집중해서 볼 때면, 가까운 이야기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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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이동 경로
김화진 지음 / 스위밍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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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창작이 재료가 되곤 하는데, 특히나 아픈 기억은 오래 남고 몸에 각인된듯 떠나지 않고 한다. 사랑과 이별의 기억도 그런 타입이라 할 수 있다. '피망이'는 솔아가 지원과 몸이 닿았던 순간에 만들어진 기억이고, 풋사랑이란 의미를 품고 있다. 이젠 공룡처럼 사라져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그 시절의 그 기억. 솔아가 더 좋은 사랑을 하고 살아갈 미래가 있다해도, 그 시절 지원을 사랑했던 그 풋풋하고 귀엽던 피망이처럼 사랑했던 솔아는 돌아오진 못 한다. 피망이는 몸에서 지워져 기억으로, 솔아의 곁 어딘가로 숨어 들었다.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쓰고 타투를 그리는 이 세 친구들에게 모두 공룡이 있었고, 각자의 공룡의 의미가 다르지만 겹치는 이미지들이 있다. 모두 픽션을 만드는 사람들, 현우는 조금 다르다. 그는 항상 비평가마냥 얘기하고 신문에 글을 쓰는 문화권력이니까. 솔아에게 '파망이'가 사라졌을 때, 병원에서 온갖 진단을 받고, 어디 숨었는지 열심히 찾는다. 이런 귀염성이 있는 솔아한텐 언젠가 '피망이'가 다시 돌아와 줄 거 같다. 그렇게 열심히 찾은 걸 기억해 줄테고, 지원이 보내준 부채로도 돌아왔고, 나중엔 솔아가 써낼 픽션 속에 '피망이'가 숨어 있어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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