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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사회’는 어떤가? 만 28살 남자는 결혼을 했고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라는 별명의 친구와 이런저런 강연을 들으러 다니고 곤충 채집과 모래 연구가 흥미를 가진 인물이다. 정신적인 성병을 앓고 있었지만, 그것도 특별한 질환은 아니었다. 8월 어느 날, 곤충 채집을 위해 모래 마을을 향했던 이 남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가 실종된 진정한 이유를 모르는 채 7년이 지나, 민법 제30조에 의해 끝내 사망으로 인정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모래 마을’은 어떤가? 그곳에서 남자는 모래의 여자와 어느 구덩이에 감금당했다. 처음은 도망가고자 하는 원초적 욕구로 가득했다. 이곳에 갇혀 있는 것 자체가 벌이었다. 그러나 지금 남자는 유수장치에 관해 느끼는 흥분에 도취했다. “도주 수단은, 그다음 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무인도를 문명화하려고 분투했던 로빈슨 크루소와 달리, 남자는 모래 환경의 생리를 발견-탐구하는 유희를 즐긴다. 벌이 없으면, 도망치는 재미도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모래를 파헤치는 사이 7년이 넘는다. 남자는 실종선고를 받는다. 니키 준페이, 1927년 3월 7일생. 만 35세 때다.
‘사회’와 ‘모래 마을’은 어떤가? 결말에 도착한 남자에게는 더 이상 ‘사회’와 ‘모래 마을’을 서로 다른 두 공간으로 나눌 이유가 없다. 이 점은 탈출할 동기가 사라졌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회’와 ‘모래 마을’을 분절된 두 공간으로 인식하기를 멈춘다. 남자는 이전까지 사회와 모래 마을의 관계를 중심과 주변, 안과 밖처럼 인식했고 자신이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기대했다. 그러나 남자가 놓인 이 초현실적인 공간의 구조가 뫼비우스의 띠와 닮았다면 어떨까? 더 이상 어디로 이동해도 탈출할 수 없다. 더욱이 이 공간에서는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을 통한 탈출이라는 개념의 의미 자체가 부재한다.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밖’이라는 다른 영역에 도달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뜻이다.
구덩이에 갇힌 남자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적다. 그의 과거에 대해서는 그의 기억 속 두 명의 인물과의 에피소드가 전해지는 게 전부이다. 그는 모래 마을 이전에도 인생이 만족스러웠던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있고, 두 번째로 뫼비우스의 띠라는 별명을 가진 동료교사 친구가 있다. 남자는 단출한 인간관계만을 자랑하지만 특이한 에피소드를 전달한다. 남자는 아내와의 관계에서는 반드시 콘돔을 사용하는 규칙을 지키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아내에게 ‘상품 견본을 교환하는’ 그런 거나 다름없는 관계를 갖는다는 섹스에 대한 불평을 듣는다. 그가 콘돔 없이는 발기부전에 빠지는 불능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으나… 직장에서 만난 친구와는 활발한 교사노조 활동을 하고 있다. 사복 경찰이 감시하는 강연에도 참석했던 적이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뫼비우스의 띠이다. 이유는 친구의 ‘직장과 사생활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래의 여자>의 공간에서는 “곤충 : 모래 = 인간 : 사회”라는 유비의 비례식이 성립한다. 곤충 포획을 위해 모래 마을을 찾은 남자는 포획당한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신원을 묻더니 관청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란 것을 확인했다. 그는 모래의 여자가 사는 구덩이에 갇혔다. 이곳에 온 까닭은 Cicinaledela Japana Motschulsky라는 학명을 지닌 곤충을 찾고자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모래에 갇혔다. 모래: 암석의 파편의 집합체. 때로 자철광, 주석, 그리고 간혹 사금을 포함하고 있다. 직경 1/16~2mm. 채집하고자 하는 곤충의 생태를 연구하면서 모래라는 물질에 대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이다.
남자는 며칠이 지나도 구조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절규해도 들을 채 하지 않았다. 이곳에 완전히 붙잡혔다. 인간이 모래 구덩이에 갇혀 살 수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주하였으나 실패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살려달라” 애원하여 구조되어 다시 모래의 여자의 구덩이로 돌아왔다. 모래의 여자는 라디오를 살 수 있을 돈을 모으고자 구슬을 꿰는 부업에 열심이다. 남자는 희망을 갖고 새를 잡기 위한 장치를 만들었다가 우연히 “유수장치”를 개발한다. 모래 구덩이에서 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고, 왜 이 모래가 나무집을 부패하게 하고 무너뜨리는지도 납득하였다.
남자는 모래의 여자가 마치 곤충의 개체처럼 모래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사실에 경악한다. 강제로 제압하고 마을 사람들을 유인해서 탈출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나서 남자는 모래의 여자와 강압적인 섹스를 한다. 모래의 여자는 순응하고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밝힌다. 전 남편과 아이의 뼈가 이곳 모래 어딘가에 묻혀 있으며, 폐허의 시대 끊임없이 걷다가 겨우 도착한 이 모래 마을을 떠나서 어딘가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한다. 모래의 여자는 돈을 벌어서 라디오를 사고 싶다는 욕망을 거듭 말하고 결국 산다. 마을 사람들은 모래를 퍼내서 도시의 건축업자들에게 팔고 있다고 한다. 남자는 소금기 많은 이 모래를 사용하면 부실공사이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하지만, 여자가 말한다. “무슨 상관이에요. 그건 남의 일이야. 어떻게 되든!”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탈출하고자 했던 남자가 모래 마을을 더 이상 탈출할 생각을 하지 않으며 끝난다. 물을 얻을 수 있는 “유수 장치”를 통한 실험에만 관심이 사로잡혀 있다. 왜 그의 태도가 바뀌었을까? 정신질환적인 해석도 가능할 테지만 나는 지양한다. 그가 지내면서 모래의 여자와 쌓은 관계 때문에 떠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모래의 여자와의 섹스에서는 콘돔이 없이도 원만하고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다른 그 무엇보다 그가 모래에 대한 탐구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구덩이에 감금된 이후 모래의 여자와의 관계에서 노동과 섹스를 충족했으나 그가 이 모래 마을에 처음 찾아온 까닭인 관찰과 탐구의 유희는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점은 결말에서 충족된다. 그리고 남자는 탐구를 계속해 나간다. 마치 곤충이 자신에게 주어진 생태환경에 맞춰서 다른 독특한 형태로 자신의 종을 진화시켜 나가듯이 남자는 모래 마을에서 변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