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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뷰 -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우신영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9월
평점 :
우신영 작가는 말합니다: "거침없이 투명한 시티 뷰를 위해 유리를 닦는 사람과 스릴을 안전하게 감각하기 위해 가짜 암벽을 타는 사람. 한쪽은 지상으로 하강하고 있었고 한쪽은 정상으로 상승하고 있었는데 평행의 정의에 의거하여 그들은 절대 스칠 일이 없어 보였다. 줄에 의지해 오르내린다는 행위의 닮은꼴과 달리 그들 사이에는 무참하리만큼 아찔한 심연이 놓여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헛구역질이 났다. 그게 이 소설의 시작이었다."
작가 개인이 밝힌 작품의 창작동기는 해룡의 죽음입니다. "더 이상 가난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스스로가 견디기 어려워진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고 밝힙니다. 우신영은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되었습니다. 문학을 읽는 것은 간혹 "스릴을 안전하게 감각하기 위해 가짜" 경험을 갖는 것이 아닐까 묻곤 하게 됩니다. 여러 문학이 있지만 소위 순수문학으로 불리우는 평단이 골라 둔 작품들은 제게 이런 감각을 크게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질문입니다. 홀로 자신의 시간을 들여 원하는 책을 읽는 것이 재미로만 그친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이 틀이 확장되어도 그저 재밌어서 한다고 말하긴 어려워집니다. "현대소설교육론 강의를 10년 가까이" 해온 우신영은 "남의 불향을 가르치며 행복하다는 것에, 안락의 옷을 입고 시계를 차고 가방을 멘 채 결피블 논한다는 것에, 이따끔 헛기침이 나왔다."고 말합니다.
작가의 말에는 자신의 그린 인물들의 모습들이 자신의 감각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걸 밝히고 있습니다. 헛기침, 삼킬 수 없는 헛구역질,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동자에 취하는 나. 유화와 해룡, 그리고 주니와 보육원 출신 채원, 가정부 옥란으로 갈수록 자신과 멀어집니다. 이는 우신영 뿐만 아니라 교양 있는 독자층, 흔히 중산층일 것으로 간주되는 독자층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작가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난쏘공'을 가르쳤다고요. 저의 부모는 모두 노동자였으나, 가족은 계층 상승을 이뤘습니다. 둘은 같은 공장에서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 "담배를 사셔필 돈도 없어 꽁초를 주워피곤 했다면서,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던 거야?" 아버지는 제가 태어난 때부턴 공장을 그만두고 건설현장 막노동꾼 설비쟁이가 됐습니다. 2010년도 수능 2주 전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우마(이동식 천정작업 비계)에서 떨어져서 왼쪽 팔꿈치 아래 뼈가 박살이 났습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었으나 고통스러운 수술을 했고, 퇴원을 하기 전 철심을 박은채로 병원을 빠져나가 현장 작업장으로 돌아갔다오곤 했습니다. 제겐 건설 노동자이던 아버지가 언제 떨어져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습니다. 막연한 어린 시절 산업재해를 다루는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보며, 저 아저씨처럼 우리 아버지가 떨어져 죽지 않을까 공포에 질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더 크고난 청소년기엔 높은 곳에 서면 훨훨 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 뛰어내려 볼까 싶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이 공포를 다시 느꼈던 기억도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문제, 특히나 나보다 계급이 낮은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문제는 어렵고, 가끔은 건들기 곤란한 문제일 것입니다. 작가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몹시 진지하고 과감합니다. 시티-뷰위 모든 이야기는 결국 석진의 어머니의 이야기가 밝혀지기 전과 다음에 다르개 읽어집니다. 어머니에 대한 혐오와 한스러움을 느껴왔던 자신을 직면하며 극이 끝납니다.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삶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해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꼭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쯤되니 정말로 결핍이 없는 인간이라고 느껴질 때가 온다면 어떨까요?
우연하게도 저의 아버지의 이름은 상룡입니다. 저의 이모의 이름은 옥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