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이여, 영원히 안녕
마르셀라 세라노 지음, 권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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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매의 특성을 살려 가족간의 따뜻한 분위기를 그려낸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은 흘러간 시간에 상관없이 지금도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다. 대단한 사건은 나오지 않더라도 개성이 뚜렷한 네 아가씨들이 사는 법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고, 잔잔한 주변의 일들이 친밀감있게 전개되는 까닭에 영원히 아끼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반면에, 이런 유명한 소설의 아류작들을 접할 때에는 기대감 아니면 조심스러움이다. 혹시나 원작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아니면 원작의 이미지까지 훼손시키는 졸작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읽을까 말까를 반복하게 된다. 

이 책은 '작은 아씨들'의 아류작이라고 평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모티브를 따온 것은 사실이지만, 칠레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네 자매가 아닌 네 사촌들이 펼치는 격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담아내고 있다. 메그, 조, 베스, 에이미와 성격과 분위기조차 비슷한 주인공들이 역시 등장하지만, 모태가 되었던 소설과는 내용면에서 엄연히 거리감을 두고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독자성을 확실하게 해준다. 문체도 차이가 난다. 읽기에 부담 없었던 '작은 아씨들'과는 달리 서술형의 문장과 마음속 생각이 형식에 구애없이 나열되는 이 책의 문체는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면를 확실히 더뎌지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문장을 음미하며 읽기를 좋아하고, 감정이 풍부하게 묘사되어 있는 글을 좋아한다면 오히려 강점이 될 수가 있다. 이 책의 문장은 내용을 알려주기 위한 수단이기보다, 따로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 독자적 존재로 자리를 지킨다. 따라서, 속독은 피해야 하고, 잘 되지도 않는다.

등장인물의 성격은 '작은 아씨들'과 거의 비슷하다. 전업주부의 삶을 택했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가족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장녀 니에베스, 활달하고 씩씩하면서 사촌오빠 올리베리오를 사랑하는 아다, 차분하고 헌신적인 성격으로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을 떠나는 루스, 아름답고 욕심이 많으며 능력도 뛰어난 막내 롤라.
이들 4명의 시선으로 돌아가며 서술되는 내용은 성격이 다른 사촌 4명의 개성을 더욱 뚜렷이 나타내고, 동일한 사건이 다른 사람에겐 또다른 의미를 띠고 있음을 파악하는 재미도 준다. 마지막 단원은 특이하게도 세상을 떠난 루스가 하늘에서 세 사촌을 바라보며 서술하는 형식이다. 

이 책에서 9월 11일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73년의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와 2001년의 9.11 테러, 그리고 2000년의 9월 11일은 아다가 소설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하이메의 죽음이 있었던 날이다. 칠레의 정치적 환경과 네 사촌들은 무관하지 못하다. 1973년 쿠데타가 일어난 9월에 올리베리오는 군인들에게 잡혀가고, 아다는 영국으로 망명을 떠난다. 비교적 온실 안의 아가씨들처럼 곱기만 했던 원작과는 달리 이 책의 아가씨들은 남미의 열정적인 성향과 여성의 역할이 증대된 사회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원작과의 차별화가 가능했고, 독자적인 내용의 영역을 구축한 관계로 비교 자체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만들었다. 내용 전개가 순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사건의 줄기가 쉽사리 정리가 되지 않는 면은 있으나, 그것이 혼란이기보다는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도 이 작품이 꽤나 마음에 들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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