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앵거스 - 사랑과 꿈을 나르는 켈트의 신 세계신화총서 7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앵거스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켈트신화에 나오는 신으로서, 최고의 신 다아다와 강의 여신 보안 사이에서 태어났다. 켈트신화라는 명칭 자체가 낯설게 다가왔지만, 알고 보면 반지의 제왕이나 아서왕 이야기도 켈트 신화에서 온 이야기라고 한다. 아직 방문해 보지 못한 흥미로운 신들의 세계가 켈트 신화 속에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각자 독특한 개성들을 가지고 있는데, 앵거스는 꿈을 주는 낭만과 사랑의 신이라는 점에서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와 비교가 되곤 한다. 에로스가 그렇듯이 앵거스도 켈트신화에 있어서 그다지 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다.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가 켈트 신화의 신들 중에서 더 유명한 신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앵거스를 택한 것은 신들의 권위와 힘보다는 사랑과 꿈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그는 오랜 켈트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몇 작품의 단편을 탄생시켜 이 책에 담았다. 신화 이야기와 교대로 전개되는 단편들 속에서도 앵거스의 분신들은 등장인물들의 꿈과 사랑 이루기에 한몫을 담당한다.

신화보다 더 재미있게 다가오는 현대의 이야기들 중, '우리 형'이란 작품은 두 형제간의 우애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소박한 옛 정취와 함께 진한 가족애를 느끼게 한다. 바닷가에 위치하여 먹을 것은 풍부하지만 물자는 모자라 옷을 기워입고 뚫어진 신발을 그대로 신는 생활상이 이야기 속에서 그대로 엿보인다. 물자가 넘쳐나 쓸만한 물건도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세상이라서 그런지 이러한 묘사는 검소함의 미덕으로 다가와 아련한 향수까지 불러 일으켰다.
동생 제이미에게 있어 형 데이비는 좋은 형을 넘어선 닮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평화로운 일상을 깨고 온 한 통의 편지가 제이미에겐 이별을 가져다 주는 역할을 하고야 만다. 친척의 초대로 형 데이비가 캐나다로 가게 된 것이다. 앵거스가 꿈을 가져다 줄 거라는 형의 말에 슬퍼하던 제이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캐나다의 꿈을 꾼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꿈은 두 형제를 연결시켜주는 끈끈한 매개체의 역할을 해냈을 것이며, 그 후면에는 미소짓는 앵거스가 있었을 것이란 상상을 해본다.

또 한 편의 인상적인 작품 '저기엔 돼지들이 살 곳이 있을까?'에서는 인간의 유전물질 일부가 DNA에 함유되어 이식용 피부 제공을 담당하게 될 20번 돼지가 등장한다. 똑똑한 머리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아무런 욕심없이 살아가는 사육사는 곧 죽을 목숨이 될 20번 돼지를 불쌍히 여겨 몰래 집으로 데리고 간다. 사람들 사이에서 약간은 모자르다는 평을 듣기까지 하는 그에게 연구소의 비서는 관심을 기울이는데, 반복적으로 꾸게 되는 그에 대한 꿈 때문에 그를 볼 때마다 얼굴을 붉히게 된다. 돼지를 감춘 것이 그라는 것을 알게 된 비서는 돼지에게 연민을 느끼는 사육사의 온화함에 빠져든다. 그 사랑의 결실에는 물론 꿈이 작용했다. 

작가는 욕심을 버리고 순수 가치를 지향하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를 하고 싶은 듯하다. 그래서 그의 모든 이야기들은 친아버지가 아님을 알게 된 어떤 소년의 이야기에서처럼 위협을 가해서라도 평안한 사랑의 결말로 유도된다. 그러나, 불편하지 않다. 한눈을 판 남편때문에 영원히 등을 돌리게 될 뻔했던 부부도 그 마음 속에는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그리움을 표현한 건 역시 앵거스의 조화이다.

꿈과 사랑의 신 앵거스는 낯선 켈트신화 속에서나 존재했었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기분좋은 사랑의 꿈, 또는 현실을 조정하는 꿈을 꿀 때마다 앵거스의 존재를 찾아 두리번거리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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