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
리디 쌀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정신과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여 정신과의사로 일하는 작가. 책 소개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왠지 기대가 가득한 책이었다. 제목부터 독특하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 책은 표지와 크기도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목줄에 목이 쓸려 엉망이 되었고, “메모는 됐어?”라는 말을 하도 들어 정신이 피곤했다. - 6p

 

백만장자 토볼드의 자서전인지 복음서인지를 쓰기 위해 수행비서처럼 그의 곁을 따라다니는 한 작가의 이야기이다. 인격적인 모욕감과 정체감의 갈등을 겪는 작가, 빈민가 출신으로 자수성가하여 돈에 집착하는 토볼드, 스트립퍼 출신이고 토볼드를 끔찍이 아껴주는 선한 토볼드의 와이프 씬디. 책을 읽다보면 각각의 인물들과 점점 가까워져 종반부에는 잘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이해되는 생생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특히 작가의 심리적 갈등은 읽는 내내 공감과 울분과 동정심을 자아냈다.

 

환멸의 나날을 보내며, 나는 혼자 생각했다. 나를 햄버거 왕 토볼드에게 붙들어 맨 힘은 다름 아닌 영혼의 나태함, 매혹된 무기력이라고. 그리고 사람이 체념하고 숙명에 순응하는 몸짓으로 죽음에 몸을 맡기듯이 그렇게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굴복한 것이라고. - 112p

 

CF 중에 직장상사에게 혼나고 화장실에서 엉엉 우는 여직원, 열심히 야근하고 집으로 달려 들어오는 남자직원이 나오고 ‘당신이 소중히 번 00원...’ 어쩌구 하는 장면이 문득 연상되었다. 물론 주인공은 생계를 위해 참고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말 채 다 못하고 꾹꾹 참으며 비위맞추는 모습들 속에 수많은 우리들의 모습이 비춰지곤 했다. 달콤한 유혹 앞에 영혼을 판 작가라고 과연 탓할 수 있을까? 소신을 지키기 위해 전기 작가노릇 못 하겠다고 뛰쳐나왔어야 할까. 과연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아서 더욱 매력적이다. 굳이 주인공을 탓하지도 편들지도 않는 묘한 줄타기를 보며 여러 상상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매우 즐거웠다.

 

책은 후반부로 가면서 생뚱맞게도 탐욕스러운 토볼드가 자선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곤 수많은 죄를 감추는 ‘코가리개’와 같은 자선을 한다는 비난에 이렇게 자신을 변호한다.

 

자선을 베푸는 악당, 즉 크게 저지른 잘못을 소소한 것으로 보상할 수 있는 악당이 바로 앞날의 희망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그리고 악당들은 그런 자선활동 덕분에 반항하고 싶은 헛되고 위험한 욕망을 마음속에서 몰아낼 수 있으니 더더욱 좋은 일 아니냐고. - 256p

 

무엇인가 교훈적인 내용을 담으려 하지 않았고 때로 짓궂은 때로 유쾌한 말장난들과 인물의 성격․심리상태를 오묘하게 표현한 이 책은 읽는 동안에도 재미있었고 다 읽은 후에도 야릇한 잔향이 있었다. 신자유주의라고 불리 우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모습이 녹아 있는 블랙 코미디를 한 편 본 느낌이랄까. 쌀베르의 다른 소설도 읽어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서평을 마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