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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없는 세상
필립 클로델 지음, 정혜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청소년과 연관이 깊은 업무를 하는지라 아동이나 청소년에 관련한 서적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아주 오래전 외국의 토크쇼에서 아이들의 기발한 대답을 모아 엮은 책이 있었는데 (92년 정도에 읽었다고 기억되는데 안타깝게도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들의 순수함과 진실함에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부끄러움을 자아내는 종류의 책이라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은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이라는 주제로 19개의 단편이 담겨있는 책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담합(?)하여 사라져 버리는 이야기. 바그다드에서 내전의 생활상을 편지글로 표현한 이야기.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해 가는 이야기. 공속에서 살아가는 아이 이야기, 책가방 속 이야기, 부모 따라 TV 중독자가 되는 아이 이야기 등 다양하고 재미난 상상들이 모인 단편들이다. (물론 때로 손발이 오글거리거나 동화 특유의 불편함은 어느 정도 존재한다.)
재미나게 읽은 단편으로는 요정이라는 힘든 직업, 책 속으로 들어가 버린 소년, 악몽사냥꾼 세 편을 꼽고 싶다.
요정이라는 힘든 직업은 참으로 공감이 많이 가는 내용이다. 요정이라거나 마법과 같은 신비로운 것들에 당연히 감동할 것을 기대하는 지친 요정과 그런 요정이 식상하고 귀찮고 오히려 불쌍하게 느끼는 아이와의 대화가 주 내용이다.
요정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제 방에 불쑥 들어온 게 용서되진 않는다고요. 아세요? 세상엔 법이란 게 있어요. - p30 -
얼핏 낭만을 모르는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으나, 어른들의 환상속에 아이들을 끼워 맞추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가장 좋은 선물은 자신이 받고 싶은 것 혹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받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책 속으로 들어가 버린 소년의 경우는 오글거리는 표현들을 제외하고는(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우울하고 슬프지만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외톨이인 뤼까가 책 속에서 안정과 평화를 찾는다는 내용인데, 소설속의 표현처럼 책 속으로 스르륵 몸이 들어가진 않더라도 세상과 단절되어 책속에서만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매우 현실감 있었고 안타까웠다.
모두들 뭘 해도 무슨 일이 있어도 다 뤼까 탓만 했죠. 하지만 뤼까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차라리 신경을 꺼 버렸어요. 그저 부엌이나 거실 구석에 박혀 있다가 혹여 책이라도 갖고 있을 때면 그대로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었죠. - p50-
악몽을 사냥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마치 위자드 베이커리에서 몽마와 싸우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의 악몽사냥꾼. 대부분의 직업들이 그러하듯 전문직종임에도 ‘거대 다국적기업’화 되어 이제는 퇴물이 되어가는 악몽 사냥꾼과 그 악몽을 훈련하여 서커스를 공연하는 그의 친구 악몽 연출가 이야기이다.
“난 은퇴하면 밤마다 악몽에 시달릴 것만 같다네.” 조제가 말했어요.
“자네만 좋다면 그건 내가 처리해 줌세.” ...(중략) ...
“아하, 그럼 잡은 놈을 내가 잘 훈련시켜서 서커스에 세우면 되겠구먼!”
“그럼 난 구경 감세.” - p104 -
세상이 아무리 달라진다하더라도 꼭 지키고 싶은 순수함이나 열정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하지만 아이들보다 몇 천배 빠르게 고생스럽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쉽게 툭 버리고 마는 것이 오히려 어른들이 아닐까?
너무 오랜만에 동화를 읽어서 그랬는지 읽는 동안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잊고 지내던 것들을 되돌아 떠올리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다. 프랑스의 지성 필립 클로델이 어른들에게 전하는 ‘아이들’ 이야기라는데 정말 아이들이야기인지 필립 클로델의 이야기인지는 아이들이 평가해주겠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