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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이야기가 싫은데 이런 건 또 이해가 가서 속이 상하네.

노래를 마치기도 전에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수치와 치욕으로 얼룩진 아련한 기억과 온갖 생각이 홍수처럼 그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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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너에게 받았던 입맞춤과 여자와 여자애들이 언급된 뒤에 이렇게 나오면 여러가지 의미로 웃게 된다. 그래서 하일너랑은 대체 무슨 사이인 거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마도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보이지 않았다. 웃고 있는 검은 눈망울과 붉은 입술, 하얗고 뾰족한 치아만 보였다. 그녀의 전체적인 형체는 녹아없어지고 부분 부분만 눈에 들어왔다. 검은 양말과 단화를 신은 발, 목덜미로 흘러내린 곱슬머리, 파란색 천에 가려진 햇볕에 그을린 둥근 목, 옷이 달라붙어 굴곡을 드러낸 어깨, 그 아래로 숨을 쉴 때마다 오르내리는 가슴, 그리고 붉고 투명해 보이는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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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미저리 - 스티븐 킹 걸작선 10 스티븐 킹 걸작선 1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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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스티븐 킹 작품을 하나도 안 읽어본 듯해서 잡은 책. 지난달 12일부터 읽었으니 대충 3주 정도 걸린 듯하다. 중간에 우여곡절이 있어서 읽는 속도가 안 난 것도 있고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탓도 있고.

인상 깊었던 세 가지.
1. 미저리는 등장인물 이름이 아니다.
2. 애니는 폴의 팬이라서 다리를 자른 게 아니었다.
3. 작법 팁이 많다.

미저리를 읽게 된 이유는 예전부터 자주 농담에서 등장했던 탓인데 그때 들은 것들과 전혀 다른 게 전반적으로 강렬했다.
이 소설 주요 등장인물은 둘. 소설가 폴 쉘던과 그 팬이자 범죄자인 애니 윌크스다. 그리고 미저리는 폴 쉘던이 쓰는 소설의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이다. 난 다들 미저리가 이렇다 저렇다 해서 미저리가 범인 이름인 줄 알았어.
분명 읽기 전 이미지는 열혈 팬인 애니가 폴을 납치감금해서 글 쓰라고 다리까지 부러뜨려먹는 얘기였는데 실제로 읽어보니 상습 범죄자 애니가 우연히 발견한 폴을 납치감금해서 길들이는 도중에 후속작도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리는 이야기였다.
와중에 폴이 애니의 강요로 미저리 후속작을 쓰면서 찔끔찔끔 흘리는 글쓰기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굉장히 인상 깊고 재밌었다. 예상 외로 이 소설을 읽는 걸 그만두지 못하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었음. 신체 고문을 못 보는 내 입장에선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소설이었는데 이걸 결국 다 읽었어ㅜ

감상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시각을 가진 주인공 폴과 완전히 미친 범죄자지만 묘하게 원칙주의자인 애니의 조합이 재밌었다. 읽으면서 둘 다 미쳐돌아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동시에 애니의 범죄 행각을 제외한다면 둘 중 누구의 편도 들 수가 없겠다 싶었다. 폴 쉘던은 시대상을 감안하더라도 친근하게 지내고 싶은 인물은 아니고, 애니는 범죄를 잊더라도 멀쩡한 사람은 아니다. 두 인물이 다 지극히 인간적이어서 단 둘로만 이루어진 장편 소설을 지루한 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너무 이입해서 읽는 바람에 아찔해지긴 했지만.
이 한 권 읽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으므로 스티븐 킹 소설은 잠시 휴식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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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목에 방울달기
코니 윌리스 지음, 이수현 옮김 / 아작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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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책 읽는 게 느리다. 학생 때도 느렸고 학교를 벗어나자 더 느려졌다. 그나마 예전에는 집중력이 좋아서 한 번 책을 펼치면 마지막 장을 보기 전에는 손을 떼지 않았는데 요즘은 중간중간 쉬어줘야한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덜 재밌어진 것 같아 아쉽다. 손에 땀을 쥐고 끝까지 읽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는 그 느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는데.

 양 목에 방울달기도 참 느리게 읽었다. 한 챕터 읽고 쉬고, 한 챕터 읽고 쉬었다. 며칠씩 텀을 둬서 앞 내용이 가물거려 두어쪽을 되돌아가 읽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 이 책에 받은 느낌은 잔잔한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느릿느릿 읽어도 괜찮았다. 어차피 포스터 박사도 연구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장르는 SF인데 고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 뿐이라 이게 왜 SF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포스터 박사와 함께 어째서 사람들은 다들 비슷하게 보이기를 좋아하는지, 왜 불쾌한 유행은 빠르게 퍼지는지 고민했다. 베넷 박사의 혼돈계도, 주인공의 유행도 관련 지식이 없는 내게는 그저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일 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꼭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딸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지나,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는 연인 때문에 고민하는 새라, 기회주의자 턴불 박사, 가여운 베넷과 말썽쟁이 플립까지 느긋하게 즐길만한 이야깃거리가 여기저기 널려있었으니까. 주인공과 빌리 레이의 오묘한 관계도 상상의 여지가 있어 재밌었다.

 주인공이 나열하는 우연한 과학적 발견에 대한 이야기도, 챕터 시작마다 나오는 다양한 유행도 모두 즐거운 볼거리였다. 나는 주인공과 함께 베넷 박사의 연구비는 해결될지, 지나는 과연 브리타니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오래 대여되지 않은 책을 폐기하기로 한 도서관 정책에서 과연 오래된 책들은 살아남을지 고민했다. 계속해서 실마리는 이미 옆에 있었다고 언급하는 독백에 대체 단발머리의 힌트는 무엇일까 하는 화두도 잊을 수 없었다.

 베넷 박사는 이야기한다. '혼돈계는 비선형적인데, 비선형이란 너무나 많은 요소가 너무나 상호 연결된 방식으로 작동해서 예측을 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양 목에 방울달기 속에 펼쳐진 세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혼돈계였다. 베넷 박사와 포스터 박사는 혼돈계의 원인을 찾는 과학자다. 두 사람이 함께 찾아낸 결론이 결국 이 책 전체의 시작점이라는 것은 물론이다. 결말을 읽고 한대 얻어 맞은 느낌에 웃어버린 내 경험을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했으면 좋겠다. 허무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게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법 같은 이야기다.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노래 부르는 소녀 피파처럼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바람을 가져오는 나비의 이야기. 무턱대고 따라가는 것은 위험하지만 어쩌면 그 뒤를 따르는 건 꽤 즐거운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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