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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목에 방울달기
코니 윌리스 지음, 이수현 옮김 / 아작 / 2016년 6월
평점 :
나는 책 읽는 게 느리다. 학생 때도 느렸고 학교를 벗어나자 더 느려졌다. 그나마 예전에는 집중력이 좋아서 한 번 책을 펼치면 마지막 장을 보기 전에는 손을 떼지 않았는데 요즘은 중간중간 쉬어줘야한다. 그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덜 재밌어진 것 같아 아쉽다. 손에 땀을 쥐고 끝까지 읽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는 그 느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는데.
양 목에 방울달기도 참 느리게 읽었다. 한 챕터 읽고 쉬고, 한 챕터 읽고 쉬었다. 며칠씩 텀을 둬서 앞 내용이 가물거려 두어쪽을 되돌아가 읽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 이 책에 받은 느낌은 잔잔한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느릿느릿 읽어도 괜찮았다. 어차피 포스터 박사도 연구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장르는 SF인데 고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 뿐이라 이게 왜 SF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포스터 박사와 함께 어째서 사람들은 다들 비슷하게 보이기를 좋아하는지, 왜 불쾌한 유행은 빠르게 퍼지는지 고민했다. 베넷 박사의 혼돈계도, 주인공의 유행도 관련 지식이 없는 내게는 그저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일 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꼭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딸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지나,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는 연인 때문에 고민하는 새라, 기회주의자 턴불 박사, 가여운 베넷과 말썽쟁이 플립까지 느긋하게 즐길만한 이야깃거리가 여기저기 널려있었으니까. 주인공과 빌리 레이의 오묘한 관계도 상상의 여지가 있어 재밌었다.
주인공이 나열하는 우연한 과학적 발견에 대한 이야기도, 챕터 시작마다 나오는 다양한 유행도 모두 즐거운 볼거리였다. 나는 주인공과 함께 베넷 박사의 연구비는 해결될지, 지나는 과연 브리타니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오래 대여되지 않은 책을 폐기하기로 한 도서관 정책에서 과연 오래된 책들은 살아남을지 고민했다. 계속해서 실마리는 이미 옆에 있었다고 언급하는 독백에 대체 단발머리의 힌트는 무엇일까 하는 화두도 잊을 수 없었다.
베넷 박사는 이야기한다. '혼돈계는 비선형적인데, 비선형이란 너무나 많은 요소가 너무나 상호 연결된 방식으로 작동해서 예측을 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양 목에 방울달기 속에 펼쳐진 세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혼돈계였다. 베넷 박사와 포스터 박사는 혼돈계의 원인을 찾는 과학자다. 두 사람이 함께 찾아낸 결론이 결국 이 책 전체의 시작점이라는 것은 물론이다. 결말을 읽고 한대 얻어 맞은 느낌에 웃어버린 내 경험을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했으면 좋겠다. 허무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게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법 같은 이야기다.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노래 부르는 소녀 피파처럼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바람을 가져오는 나비의 이야기. 무턱대고 따라가는 것은 위험하지만 어쩌면 그 뒤를 따르는 건 꽤 즐거운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