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으뜸
김빵 지음 / 다향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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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야(눈물 뚝뚝)

‘너는 내 보호자가 아니고 여자 친구야. 나는 너한테 보살핌을 받는 사람이 아니고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그냥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면 안 돼? 우연히 마주칠 수 있잖아. 눈도 마주 볼 수 있고 웃을 수도 있잖아. 순간이야. 다신 안 온다고. 일어나지 않을 불행만 걱정하다가 너와의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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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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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켄 리우가 숨을 쉰다(좋다는 의미)

카카오 버터의 스테아르산이 입속의 온기를 흡수해 혀 위에서 녹으면서, 구조가 복잡한 여러 알칼로이드가 흘러나와 네 혀의 맛봉오리에 스며들었단다. 흥분시키는 카페인, 어질어질한 느낌을 선사하는 페네틸아민,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테오브로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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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gone 1
수신지 글.그림, 윤정원 외 감수 / 귤프레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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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를 무척 인상적으로 읽었었다. 어쩌다보니 당시에 책을 사진 않았는데 작가를 응원하고 싶기도 하고 주제가 흥미로워 보여서 텀블벅에서 후원을 했었다. 즉, 2권이 나오면 그것도 받을 예정이란 소리다.

한동안 독서가 힘들던 시기가 있었다. 이 책은 그 즈음해서 받았던지라 받아놓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최근에 뭘 하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읽어보기로 했다. 결론은…

실망이다.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한다. 실망이다.

상상 이상으로 별로다. 낙태에 대한 최소한의 공부도 하지 않고 이야기를 만든 것 같다. 며느라기는 현실적인 고충이나 미묘한 갈등이 잘 담긴 작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 기억이 왜곡된 걸까? 이렇게까지 별로일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실망했다. 2권이 오면 읽어보긴 하겠지만 달갑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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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arte 2020-10-30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덤으로 뒤쪽 작가의 말은 가독성조차 꽝이다.
 
[전자책] 수레바퀴 아래서 코너스톤 세계문학 컬렉션 3
헤르만 헤세 지음, 박지희 옮김, 김선형 해설 / 코너스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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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포스트를 개설하기 전에 데미안을 읽었었다. 그때 감상은 제대로 남겨놓지도 않아서 짧은 단상만 남아있는 게 아쉽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데미안의 원조격이 되는 작품이라는 느낌이라서 비교해보면 재밌었을텐데.
참고로 나는 데미안을 읽고 헤르만 헤세가 싫어졌었다. 아직도 떠올리면 역겹고 지겹기만 한데 검색해보니 잘 쓴 청소년 성장기라는 글이 보여서 어리둥절했었다. 실제로 데미안만 읽었을 때는 딱히 청소년의 성장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나니 무슨 이야긴지 알 것 같았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제목과 내용이 긴밀하게 연결된 작품이다. 수레바퀴는 아마도 제멋대로 굴러가는 세상을 뜻하는 것이리라. 이 소설은 수레바퀴 아래서 헐떡이는 한스라는 소년의 이야기다.
한스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굉장한 수재다. 천재라고까지 묘사되지만, 나중에 가면 천재라는 수식어는 다른 인물에게 옮겨가니 우선 내려두자. 어쨌든 한스는 워낙에 뛰어난 머리 탓에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즐거움을 모두 내려놓고 공부에 매진한다. 그런 한스의 심란한 심사는 토끼장을 부수는 장면에서 살짝 드러난다.
한스가 느끼는 고통은 미세한 균열을 통해 드러난다. 뛰어난 성적으로 합격해 방학을 즐길 자유를 보상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즐긴 햇살을 무자비하게 빼앗긴 한스가 시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헤르만 헤세는 아주 섬세하게 묘사해낸다. 한스는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또래 아이들보다 뛰어나졌다는 뿌듯함과 야망으로 자신을 달랜다. 아니, 진심을 묻어버렸다고 하는 쪽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본인은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도 몰랐겠지만.
학교에 입학해서는 비슷한 수준의 수재들 사이에서, 달리 말하면 비슷한 공부벌레들 사이에서 한스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기숙사 헬라스방의 동무들 사이에서는 물론 학교 전체에서도 한스는 외톨이다. 숫기 없고 수줍은 소년은 친구와 어울리기보다 공부에 매달리기를 택한다. 결국 종착지는 한스와는 다른 이유로 친구를 만들지 못한 또다른 외톨이 소년이었다.
시인으로 불리는 헤르만 하일너는 괴짜다. 삭막한 수도원에서 홀로 풍부한 감성과 돌발적인 행동으로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킨다. 그런 하일너와 한스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짝이었지만, 한스는 자신에게 없는 자유분방함 탓인지 아니면 외로움 탓인지 하일너에게 끌리게 된다. 두 사람은 짧은 입맞춤과 함께 친구가 된다. (솔직히 이거 왜 들어간 건지 모르겠다.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건가? 그런거지 역시?)
하지만 하일너의 역동적인 영혼은 수도원의 엄격한 규율 속에 묶일 수 없는 것이었던지라 날씨에서 비롯된 우울감(나는 초조함이었을 거라고 본다.)을 이기지 못하고 하일너는 사고를 치고 만다. 한스는 결국 학교에서 주목받는 말썽꾸러기가 된 하일너를 외면하고, 하일너는 거기에 큰 상처를 받아 두 사람은 냉전 상태가 된다. 그러나 어떤 사건, 정확히는 같은 방 어느 학우의 죽음을 계기로 두 사람은 다시 관계를 회복한다.
그들이 다시 정다운 사이가 되자 초조해진 것은 선생님들이었다. 누가 유럽 아니랄까봐 어린아이의 본성을 억눌러 엄격한 규율 속에서 사회화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는 선생들은 두 사람의 결합에 조바심을 내며 한스를 꾸짖는다. 하일너와 화해하며 그에게 충실하기로 마음먹은 한스는 안 그래도 성적이 떨어지고 있었고, 선생님들의 꾸지람을 점점 견디기 힘들어진다.
(헤르만 헤세는 쇠약해져가는 한스의 시야를 환상적인 풍경과 사건으로 묘사하는데, 이후 뒷부분에 수록된 해설을 읽고 나니 이게 확장되어 데미안이 된 게 아닌가 싶었다. 쇠약하고 절망한 소년의 마음 속에서 피어난 어떤 뒤틀린 환상 말이다.)
한스가 점점 문제 학생이 되어가는 사이 하일너는 한스와 함께하는 것 때문에 꾸지람을 산다. 이에 반발한 이 자유로운 소년은 학원을 떠나 일종의 가출을 하고, 꽤나 오랜 시간을 밖에서 버틴다. 당연히 결과는 퇴학이었다. 한스는 하일너마저 떠나가자 더욱 쇠약해져 고향으로 귀환 조치가 내려진다.
휴식이라고 했지만 어느 누구도 한스가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지 않는 귀향이었다. 한스는 마을을 배회하며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다시는 누릴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과 자신이 또래에 비해 완전히 뒤쳐지는 결과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기운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이 잠시 여인을 향한 환상에 빠졌다가 아버지의 강권에 의해 기계공이 되고 기계공 친구의 축하 파티에 참석했다가 강에 빠져 죽고 만다.

크게 생략했지만 여인을 향한 환상에 빠졌다는 부분은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데미안의 향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스는 특정한 여인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마찬가지로 그 여인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머리칼, 입술, 가슴, 목소리 같은 피상적인 것들에만 주의를 기울일 뿐이다. 그런 한스의 마음을 파악하기라도 한 것인지 한스와 밀회를 가진 소녀는 잠깐동안 색다른 놀이를 즐기다 사라진다.
데미안의 싱클레어는 이보다도 한 단계 더 나아갔다. 길을 가다 스쳐간 어떤 완벽한 이상형의 여인을 그리고 또 그린 끝에 자신의 입맛에 맞는 모습으로 성형해놓고 끝내는 그 얼굴이 어린 시절에 무척 큰 인상을 남겼던 친구(남자)의 얼굴과 무척 닮아있음을 깨닫는다. 최종적으로는 그 친구의 어머니가 숭배의 대상이었다는 결말이다. 이건 데미안에서 굉장히 긴 분량을 차지하는 내용이고, 나는 두 작품을 연달아 읽으며 헤르만 헤세가 남성애자가 아니었나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고 말았다.

저 부분이 워낙에 역겨웠던데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하는 심정이 강했기 때문에 데미안은 거의 최악의 작품이었지만, 수레바퀴 아래서는 또 다른 느낌이다. 여인의 추상화는 스쳐갈 뿐이고(그런 것치고는 길지만) 한스가 고달픈 학창시절을 보낸 끝에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라서 차마 헤르만 헤세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너무 지나간 내 이야기 같았다. 읽으며 잠깐잠깐 울먹이기까지 했다. 이런 점 때문에 헤르만 헤세가 사랑받는 건가 싶기도 하더라.
해설 파트에서 보니까 자전적인 작품이라고 해서 헤르만 헤세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언젠가 헤세의 첫작과 유리알 유희를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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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수레바퀴 아래서 코너스톤 세계문학 컬렉션 3
헤르만 헤세 지음, 박지희 옮김, 김선형 해설 / 코너스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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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다. 자세한 리뷰는 나중에. 우선은 이 울적함을 즐기고 싶다.

아래는 북적이에 적어둔 메모.

데미안을 읽으면서 느낀 건 역겨움이었다. 소년의 성장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특히나 성적인 충동이나 환상을 신적인 존재로 격상해 묘사한 데미안은 내게 역겹고 짜증스러운 작품이었다. 수레바퀴 아래서 역시 그런 장면이 있고, 어느정도 내게 비슷한 감상을 남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미워할 수 없다. 이것이 너무나도 내 이야기고 친구들의 이야기고 또 내 동생들의 이야기이기에.

해설 부분을 읽으면서 약간의 깨달음을 얻었다. 나도 내 이야기를, 너무나도 내가 담긴 이야기를 적다보면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겠구나, 하고. 그게 누군가에겐 역겨울 수도 있겠지만, 그것까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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