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낙원
김상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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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낙원』
기억, 온라인, 인간

기억이란 무엇일까? 나라는 사람은 경험이, 기억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기억은 곧 나의 존재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기억을 바꾼다는 것, 새롭게 재구성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억을 바꾸어놓은 나는 과연 기억을 바꾸기 전의 '나'와 같은 존재일까?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만큼은 모든 것을 다 잊고 평안을 기원한다고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모든 것을 다 잊는 대신 거짓된 행복을 맞이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냉정한 현실과 거짓된 행복 중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거짓이라도 행복은 행복일 것이다. 단지 환상일 뿐이다.
하지만 저자는 더욱 불쾌하고 심오한 질문들을 함께 던지고 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자를 위한 환상이 아닌, 탐욕을 위해 인간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 업로드 된 사후 세계에서의 권력다툼..
책의 흐름과 저자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인간에게 기억은 어떤 의미인가?', '기억이 뒤바뀐 인간은 그 이전의 인간과 동일한 존재인가?' 기억은 단지 업로드된 정보에 불과한 것일까?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인간들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숙명적인 난제에서 헤메이고 있다(특히 진화론이 등장하며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면 동물과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충격과 고민에 빠졌었다).
김상균의 『기억의 낙원』을 읽으며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필립 K.딕의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와 같은 기억, 미래에 대해 조망해보고 있는 글들을 함께 읽어보면서 논의를 좀 더 확장시켜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늘 연결되어 있는 말 그대로의 '온라인 시대'에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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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강하다 래빗홀 YA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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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강하다』
인간임을 잊지 않는 것

65세 이상만 좀비가 된다면?
사람들은 좀비를 격리하고 처리하고 싶어한다. 즉, 65세 이상이라면 이 세계관에서는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 하다의 할머니는 언제든 좀비가 될 수있는 나이이다. 하다는 혼자서라면 봉쇄되기 직전의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었으나, 할머니와 함께하는 것을 택했다. 하다와 할머니는 봉쇄된 도시에서 살아나간다. 옥상에 올라가 삼겹살을 구워먹는 등 맛있는 음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들의 이러한 모습은 이전의 삶을,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은 같은 아파트의, 주변에 남겨진 사람들과 우연히 하나 둘 만나고 서로의 일상을 생존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즉 가족이 되었다고 볼 수있지 않을까? 책에서는 이들처럼 인간임을 잃지 않고 , 일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으며, 힘으로 다른 사람의 우위에 서려는 자들도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로 인해 도시가, 사람들이 격리되었다. 인간이 아닌 쪽은 과연 누구일까? 65세 이상의 노인들? 아니면 인간임을 잃어버린 사람들?
한편으로 모든 인간은 나이가 든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가고 있으며, 이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 또한 과거에는 어렸음을, 미래에는 나이들 것을 잊지 않으며 서로의 입장에서 한번씩만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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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 - 기후위기 시대 펜, 보그, 스웜프에서 찾는 조용한 희망
애니 프루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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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
자연과의 재연결을 위하여

인간들은 개발, 발전, 진보라는 이름 아래에 결과적으로 자연을 파괴해왔다. 그런데 진보란 무엇일까? 자연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놓는 것이 누구를 위한 진보라는 걸까?
인간이 습지를 덮고, 불질러 만들었던 것은 경작지였다. 하지만 이는 식량이 부족하여 경작지를 만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같다. 공유지이던 습지를 사유화 하던 시기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는 자본주의의 발달 역사와 맞물린다. 사람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 풍요로운 습지를 농사를 지을 수없어 개간해야하는 쓸모없는 곳으로 규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습지와 인간은 점차 연결성을 잃어가며, 비옥한 습지가 '더러운' 습지로 바뀌어 갔다.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난, 자연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인간이 자연을 각종 자원 공급처로, 놀고 있는 땅, 쓸모 없는 땅 등으로 함부로 해석하여서도 안 된다.
기후위기 뿐만 아니라 총체적인 환경위기가 미래의 일이 아닌 이미 일어나고 있는 만큼 인간들은 자연에 대해 다시 연결 되고자 노력해야 하며, '자연권'과 같은 개념을 활발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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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끊고 끼어들기 - 사회 구조가 만드는 외로움의 고리를 끊어내는 개인의 연대
턱괴는여자들 외 지음 / TohPress(턱괴는여자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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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끊고 끼어들기』
외로움을 규합하는 사회

홀로 맛있는 식사를 하러 가면 한 입, 맛있다. 두 입, 역시 오기를 잘했다. 세 입, 음 이 맛있는 감각을 지금 나눌 누군가가 있었다면... 행복한 순간 나눌 누군가를 찾게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외로움이란 뭘까? 누군가를 찾게되는 것이 외로움일까? 그런데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되는 걸까? 왜 외로움을 사회의 차원에서 해결해주어야 할까?
우선 나를 대표할 만한 이미지가 미디어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비주류로 밀려났다는 의미와도 같다(11). 보이지 않음, 밀려남은 외로움으로 쉽게 이어진다. 그런데 외로움은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외로움을 느끼는 원인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단지 이러한 일들이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상상력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있을까?) 외로움을 규합해내는 사회야 말로, 지속가능한 사회이지 않을까?
서로의 모습을 보고 드러내는 일은 외로움을 끊어낼 수있다(27). 모습을 마주하기 까지 우리는 어떤 노력 혹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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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갈증 페이지터너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빛소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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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갈증

광기

에쓰코의 감정은 사랑인 것 같기도 했다가도, 집착인 것 같기도 했다가도, 질투인 것 같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사랑이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에쓰코의 감정은 많이 이야기되던 것과는 어딘가 비틀린 구석이 있었다. ‘아직도 나는 그 힘을 이해하지 못한다(70).’ 책을 다 읽고도 계속 에쓰코에 대해, 사랑에 대해 곱씹게 된다. 사랑이란 무엇일지 갈증을 느끼게 된다. 에쓰코도 사랑에 대해 혹은 사랑으로 인해 갈증으로 속이 타올랐던 것이 아니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의문으로 인한 갈증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한편 에쓰코 뿐만 아니라 야키치, 사부로의 감정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이 든다. 사부로는 사랑한다. 안 한다.’ 라고 나누려 드는 사람들을,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그저 욕망했을 뿐이었다. 야키치는 에쓰코를 항상 생각한다. 에쓰코의 마음을 읽어내기 위해 그녀의 일기를 훔쳐보았다(아이러니 한 것은 에쓰코는 일기에도 솔직한 마음을 쓰지 않는다. 작가는 인간이 자기 스스로에게도 솔직해질 수 없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일기를 본다고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자기 스스로도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녀가 소리를 질렀을 때 나타났던 것도 야키치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나 주변 사람들의 인식을 고려하여도 두 사람의 관계는 순수한 사랑으로만은 표현되기 어렵다. 야키치의 감정은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그저 격동하는 열기를 지니고 있는 이 세 사람이 광기에 빠져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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