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속임수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현재의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가 쓴 심리 스릴러 범죄소설.
이 작가의 소설들은 영국. 프랑스.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들처럼
심리묘사와 몰입도. 완성도가 높아 흔한 통속소설로 치부할 수 없는 소설이다.
저자는 챕터마다 소제목을 붙이는 대신 시간을 붙여 대신하여
시간의 흐름이 강조됨으로써 강박과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듯 하다.
우리나라의 소설가들에 비하면 이 독일작가는 다작임을 감안할 때..
완성도는 물론 독자를 끌고가는 몰입도에서도 놀라움을 금치못하게 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물벼락을 맞을 수도 있고 따귀 한대쯤 맞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한 가족 전체의 행복과 남겨진 이들의 여생이
망가진 채 지옥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면 복수는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들을 응징한 거요. 내가 아니었으면 그들은 끝내 죄값을 받지 않고 살아갔을
겁니다. 나는 충분히 가치있는 일을 했고,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여."
"차라리 지금이 마음이 편하고 좋습니다."
책 말미의 이 말에 나는 이해하고 공감하며 마지막 말에는 연민마저 느낀다.
정상인 사람과 괜찮은 사람은 없다. 다들 정상인 척 괜찮은 척하며 살아가는 지 모른다.
나태하고 부패해진 공권력을 대신한 사적복수에 대한 법적 제재는 미필적 고의에 대한
제재처럼 완화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사적복수가 만연하고 당연시되면
때로 동물만도 못한 인간들의 사회는 아사리판을 넘어 아수라판이 될것이다.
허나 삶이 망가져 삶의 의미를 잃고 고통으로만 점철된 이의 입장은 분명 다를 것이다.
복수는 자기를 더 망치고 주변까지 민폐를 끼치지만 쿨하게 털어내는 게 쉽지는 않으리라.
그럼에도 살아남은 자는 슬픔과 좌절. 고통을 넘어 삶이 주는 선물을 찾는 게 맞지 싶다.
어찌보면 스토리 뻔한 범죄 스릴러소설인데 이런 책을 상황과 맞물린 조연들의 처지와
심연을 툭툭 건드리는 심리묘사로 몰입도와 완성도를 높이며 지루하지 않게 600페이지
장편소설로 끌고간 점이 이 저자의 실력이고 매력이다.
"현재는 모든 게 잘 굴러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파국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주변의 기대는 압박감으로 작용하고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고 공포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사람은 혼자 생각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모든 일의 시작은 악의없이. 사소하고 평범하게 시작된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려 한다.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갈 때조차도 어두운 실상을 보여주려 하지 않아."
"한계상황에 직면했던 사람들은 절대 예전의 생활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상처는 영원히 남는다.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트라우마와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 평생토록."
이 화두에 대해 저자는 이어서 이렇게 답하듯 말한다.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는 거야.
일단 지금은 차를 끓이는 거야. 새미가 마실 코코아도 끓여야겠지.
그런 다음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퀴퀴한 공기를 몰아내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여는 거야.
앞으로 인생이 얼마나 힘들지는 몰라도 살아가야 하니까.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인생을 다시 찾게 되었으니까."
정답은 없지만 작중의 내가 내놓을 수 있는 해답은 이런 식 또는 이것 뿐이다.로 들렸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거야.란 대사가 오버랩됐다.
작중인물중 시나리오 작가가 정신적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통해 컴퓨터와 휴대폰도 안터지는 세상과 단절된 곳으로 휴가를 떠난 대목이 있다.
지치고 피로가 누적된 게 아닌가 추측케하는 저자의 좋은 소설을 계속 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의 저자처럼 재능있는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써 잘 만들어진 책을 보는 재미는
식탐이 그닥인 내게 맛집을 탐방하는 것보다 더 큰 삶의 선물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전작 다른 아이. 죄의 메아리. 보다는 조금 못미치는 듯 하다.
이미 기대치가 커서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삶이 지루하고 재미없을 때. 반나절 정도 투자해 봐도 아깝지않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