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 정답이 없는 시대 홍종우와 김옥균이 꿈꾼 다른 나라
정명섭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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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조선에 햇불처럼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졌던 두 사람의 이야기.


늘 틀어지기 마련인 사랑의 짝대기마냥 엇갈리는 운명. 악연의 굴레.

꿈은 있었으나 누구의 꿈도 실현되지 않은 역사의 두 인물. 김옥균과 홍종우.


역사를 돌아볼 때면 늘 그렇듯이 진실의 조각들을 짜집기해 완성해야 할

진실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 것인지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역사서는 역사서일 뿐으로만 존재하고 배워야 할 제대로 된 역사서는 어디에도 없다.

그럴 듯한 추론만 있고 진실을 위한 증거는 빈약하거나 훼손된 채 거의 없다.


가만있어도 출세가 보장되는 집안이 있고 나름의 영민함과 친화력이 있던 김옥균.

조선의 개화를 위해 쪽발이를 이용하려 했지만 역으로 이용만 당한 채 버림받은 풍운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편했을 그의 모험은 슬픔과 안타까움. 피끓음과 한숨을 가져온다.


반면 무언가를 해서 그가 했던 무언가마다 역사의 미운털이 박힌 홍종우.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만 어떤 무언가를 한 것은 아님에도 결과가 그리 되버린 남자.

김옥균을 죽이고 그를 발판삼아 관직에 진출했지만 소신과 원칙을 고수했던 홍종우.

그는 그냥 숱한 민초들처럼 스쳐가는 역사의 엑스트라. 피해자로 끝난 셈이다. 


김옥균이 꿈꾼 조선은 일본처럼 개방되고 서구화된 문명국가. 자주국가였다.

홍종우가 꿈꾼 조선은 조선만의 특색과 장점을 지니고 보존한 왕권국가였다.


김옥균은 친화력이 좋고 일본어에 능통했으며 단발령전에 단발을 하고 양복차림을 했다.

홍종우는 퇴장할 때까지 도포와 갓을 버리지 않았고 대원군과 고종의 초상화를 지녔다.


김옥균은 늘 주연이며 리더였고 홍종우는 늘 엑스트라였고 시다바리였다.


어린이 위인전집마다 꼭 끼는 김옥균과 달리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홍종우.

홍종우는 조선인중 최초의 프랑스 유학파 또는 방문자로 춘향전과 심청전을

프랑스에 번안 소개한 한 인물이기도 하다.

개화사상을 공유했던 명석한 번역자에서 희대의 정치적 암살자로 변한 홍종우.

그는 끝까지 근왕파로 남은 온건개혁파 또는 보수개혁파로 분류할 수 있을 듯 하다.

근왕파로서 보부상을 끌어모아 만민공동회를 습격하고 독립협회 해산을 주도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개혁파는 물론 왕당파나 보수파로부터도 배척당한 아웃사이더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도 하지만

패자에겐 관용과 아량이라도 있는 반면 이용당한 아웃사이더는 흔적조차도 없다.


김옥균은 일본에 이용당했지만 시대정신이 있거나 당시의 시대정신을 끌고 간 반면

홍종우는 시대를 고수하다 시대에 이용당했을 뿐이기에 역사의 냉대를 당한 듯 하다.


풍운아 김옥균의 암살과 죽음에 일본은 방관한 책임이 있음에도 그 후의 일본 행보는

그가 살아있을 때만큼 정치적으로 이용만했고 조선과 청은 의미없는 희생만 얻었다.

홍종우는 개화파이면서도 길이 달랐을 뿐이라 했지만 그 역시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 대로 급변하는 세상과 역사적 평가에서 설 자리를 잃었을 뿐이다.


홍종우는 비판만 남고 오명만 뒤집어 쓴 채 역사의 무대에서 쓸쓸히 흔적없이 퇴장했다.

반면 김옥균은 가족은 전몰하고 시신마저 능지처참을 당했음에도 화려하게 부활했다.


비운의 혁명가 김옥균 그의 삶과 죽음을 극명하게 설명한 추모비의 헌사다.

"오호라. 슬프도다.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비상한 시기를 만나 비상한 공이 없이 비상한 죽음만이 있도다."


좀더 일찍 망했어야 했을 조선이 나무뿌리처럼 구차하고 질기게 버티던 19세기 말.

악연였던 둘의 운명은 그 둘보다 더 비참하게 살거나 죽어간 이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우선. 당장. 삼일만에 실패로 끝난 갑신정변.

실패한 혁명은 주도자와 공모자. 단순 가담자 모두 비극으로 끝난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남겨진 부모와 형제. 부녀자와 애들마저 모두 자살하거나 잡혀 죽임을 당했다.


임오군란. 갑오경장. 동학혁명. 을미사변. 각종 민란과 봉기. 청일전쟁. 러일전쟁...

정답이 필요한 시기에 답을 찾지못해 버벅대던 때에 맞물린 억울한 죽음들이 너무 많았다.


하긴 좁은 땅 한반도의 역사는 아직도 여전히 격변의 몸살을 앓고 있는 셈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뒷얘기를 재미있게 소개한 책이다. 한편의 영화보다 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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