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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
센님(정세영) 지음 / 길벗이지톡 / 2024년 12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일본어 공부를 꽤 오래했었다. 대학 다닐 때 일본어에 맛이 들어서 열심히 교재를 읽고, 문제풀이를 하며 꽤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공부"를 안 하고 있는데 왜 "공부"라는 단어를 강조하냐면 난 옛날 사람이라서 "공부"라고 하면 교재를 읽고, 문제풀이를 하는 전형적인 입시용 학습법을 "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법을 익히고, 문제를 풀고 그런 식의 형태가 아니면 왠지 공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무튼 예전에는 열심히 일어공부를 했지만 이후로는 교재를 읽고, 문제풀이를 하는 형식의 공부는 하지 않고 일어 문고본을 읽거나 영상 등을 통해 간접적인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이런 식으로 원서를 읽고 영화를 보는 것으로는 일본어 실력이 늘어나기는 커녕 유지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아무튼 지금은 공부를 안 하지만 일본어에 빠져서 열심히 공부를 했던 시절에도 아주 수준급으로 일본어를 구사하진 못했다. 말했듯이 당시에는 교재를 읽고 문제를 푸는 형식의 공부를 했는데 문법에 치우쳐서 공부를 하다보니 문제는 풀 수 있지만 틀 안에 갇혀서 프리토킹, 히어링은 상대적으로 취약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게시판을 보면 자신은 따로 책을 보고 문제풀이를 하는 공부를 하지 않고도 좋아하는 애니나 일드만 보고도 일본어를 마스터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게 되는데 그런 글을 보면 좀 짜증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나는 "공부"를 했는데도 일본어를 잘 못하는데 왜 저 사람은 "공부"도 안 하고 어떻게 일본어를 마스터했다는 건지 짜증이 나면서도 궁금했었다. [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는 바로 그 짜증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독학으로 일어를 공부해서 3년 만에 능력시험 1급을 따고 지금은 일본에서 한국어 강사로 생활하며 일본어 유튜브도 돌리고 있다고 하는데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뽕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마도 가장 부러운 테크트리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는 일뽕이 없음에도 저자의 행보가 굉장히 부럽다. 사실 그동안 일어 공부를 위해 일드나 애니 같은 것을 좀 보기도 했는데 이게 생각만큼 크게 공부가 된다고 느껴지지 않았고 실제로도 별로 실효성이 없었다. 그저 일드나 애니만 본다고 공부가 되진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애니를 봐야 일본어를 잘 하게 될까? 저자의 비법을 한번 들어보자.
애니나 일본 만화 좀 본 사람이라면 책의 제목부터가 덕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요즘 일본 애니에서 아주 많이 보이는 스타일의 제목인데 이것만 보더라도 저자가 애니 좀 본 덕후구나 하고 딱 느낌이 온다. 책은 총 8파트로 덕질을 시작으로 저자 본인이 애니를 보며 공부를 한 방식 같은 것을 단계별로 하나씩 설명하고 그러다가 능력시험을 치고 마지막으로는 퇴사하고 일본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는 경험담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기본적으로 저자가 공부를 해왔던 수기 형태의 글이라서 실제로 일본어를 익히려는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실용적인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저자가 일어를 익혀가면서 써먹었던 공부법(물론 전통적힌 형태의 "공부"는 아니지만), 실수담, 공부를 위한 환경 만들기,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용한 방식 등 저자가 말해주는 다양한 경험 속에서 독자들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효과적으로 일본어와 친해지고,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저자의 방식이 절대적이고 꼭 그것을 따라야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에서 자신만의 솔루션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애니나 일드에 취미를 붙이기가 힘들었다. 애니라는 그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크게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끼는 장르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소위 덕질을 시작하는 단계부터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저자는 덕질에 스며들기가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스포츠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볼게 없어서 하도 유명하다고 떠들어대던 하이큐!!를 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별루라고 생각이 되다가 점차 빠져들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어느 한 작품에 스며들기 위한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건 아니고 일단 한번 시도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뜻인가보다. 재미가 없고 지루해도 그래서 흥미를 잃어도 일단 계속 읽어봐라. 그러면 그러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덕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유명한 원피스를 보려고 펼쳤다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1권은 고사하고 1회도 다 끝내지 못하고 던져버린 경험이 있다보니 결국 덕질로 가는 길은 일단 가속이 될 때까지는 지루해도 계속 정주행을 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발동만 걸리면 덕질 프로세스는 자동으로 발동이 된다고 하니 초반에 좀 지루해도 꾹 참고 원피스건 뭐건 한번 읽어봐야겠다
J-pop으로 공부하기에 대한 팁도 나오는데 역시 그냥 듣는 것만으로는 귀가 트이기 어렵다고 말한다. 노래로 공부하는 것에 대한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떤 식으로 노래를 들으면 공부가 될지 나름의 방법을 제시한다. J-pop을 통해 배우기 좋은 건 발음이라고 한다. 어휘나 표현은 문학적이라서 실제 회화적인 표현과는 다르기 때문에 노래는 일상 회화가 아닌 일본의 감성과 발음을 배우는데 적합하다는 것. 그러면서 감성적인 노래, 신나는 노래, 운동할 때 듣기 좋은 노래 등 저자가 추천하는 리스트가 소개되어 있는데 세대가 달라서 그런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긴 내가 J-pop을 한창 듣던 건 벌써 한참 오래된 일이니까.. 아무튼 일어 공부를 할 때 중요한 포인트는 귀가 트여야 하는 건데 이때는 노래건 애니건 듣기 교재건 뭐가 됐건 무조건 많이 들으라고 밑줄까지 쳐가면서 조언한다. 저자는 이 단계까지 온 다음에야 문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히라가나부터 외우고 문법을 하고 회화로 넘어가는 기존의 순서와는 정반대인데 어쩌면 정해진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편하게 공부를 한 것이 일본어를 잘하게 된 비법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어느 것을 먼저 하건 어느 순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반드시 그냥 외워야만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그 중 처음으로 암기해야 하는 것은 히라가나·카타가나이다. 이건 답이 없다. 그냥 외울 수 밖에 없고 외워야만 한다. 그런데 이렇게 그냥 무조건 외워야 하는 것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쉽고 편하게 외울 수 있게 다양한 암기법과 공부법을 소개해놓고 있다. 이쯤되면 저자는 그냥 애니만 보고 일본어를 잘하게 된 게 아니라 나름 일본어를 잘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연구하고 다양하게 시도하며 엄청 열심히 공부를 한 거라고 봐야한다. 아무튼 저자는 애니나 J-pop 등을 보고 들으며 듣기 훈련을 하고 또 끊임없이 일본어로 혼잣말을 하며 말하기 훈련을 하면서 일본어를 익혀나갔다고 한다. 기존의 문법을 딸딸 외우고, 문제풀이를 하던 전통적인 주입식 암기형 공부법이 아니라서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일본어 공부가 가능했던 것 같다. 심지어 애니를 보면서도 이것도 공부다, 일본어를 배우기 위한다는 생각으로 애니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덕질을 위해 애니를 본다는 마음으로 봤다고 하는데 학습 또는 공부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서 애니를 봤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일본어 공부를 위해 드라마를 볼까? 라고 생각하고 드라마 보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좋아하던 드라마도 그게 공부라는 이름으로 보게 되니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저자와 같은 마음가짐이 참으로 중요할 것 같다.
그 후에는 일본어를 장착하고 나서 떠나는 일본여행, JLPT 능력시험 도전기, 크리에이터로서의 활동 영역을 넓히며 일본어 크리에이터로서 활동하게 되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떠나게 된 인생 경험 등이 소개되는데 일본어를 잘하기 위해서 꼭 이 부분까지는 따라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한가지의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정도의 열정과 노력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덕질로 일본어를 익히라는 것의 핵심은 결국 끊임없이 계속해서 일본어를 접해라는 뜻인 것 같다. 공부라는 형식은 쉽게 지루해지고 어느 순간 벽에 막혀버리게 된다. 하지만 애니나 일드 같은 것을 보고 즐기며 덕질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접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거기서 조금만 보는 방법을 달리하면 특별히 공부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익히게 된다는 매커니즘인 것 같다. 사실 애니나 일드로 공부를 해볼 생각은 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잘 안되었는데 저자가 알려주는 여러 방식을 참고해서 다시 한번 일본어를 마스터할 수 있게 공부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