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찾아 삼만 리 TV애니메이션 원화로 읽는 더모던 감성 클래식 7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 지음, 박혜원 옮김 / 더모던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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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어릴 적 테레비 앞에 앉아 이 만화영화를 보며 훌쩍거렸던 기억이 난다.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그 만화영화의 내용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지만 감동적이었고 무척 재미있게 봤었다는 기억만은 남아 있다. 아무래도 DNA에 깊게 새겨진 '엄마'라는 단어가 가진 본능적 끌림과 정서적 이유 때문에 엄마라는 말만 들어가면 더욱 쉽게 감동받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이 만화는 당시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뭔 일만 있으면 'OO 찾아 삼만 리'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봐서는 꽤나 인기도 있었고, 영향력도 컸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TV 애니메이션 (당시에는 테레비 만화영화라 불렸던) '엄마 찾아 삼만 리'의 애니메이션 원화와 함께 스토리라인을 소설처럼 구성한 일종의 그래픽 노블이다. 13살 짜리 마르코가 2년 전 다른 나라로 가정부(지금은 가사도우미)로 일하러 떠난 엄마의 소식이 끊기자 직접 엄마를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이다. 너무 오래전에 보기도 했고, 아마 1화부터 전부 다 보지 않아서 그런걸 수도 있지만 마르코가 엄마를 찾으러 떠난다는 큰 줄기만 알고 있을 뿐, 엄마와 왜 헤어졌는지, 어떤 사연이 있어서 엄마를 찾으러 가는지는 몰랐었다. 막연히 어릴 때 잊어버린 엄마를 찾아 떠나는 건가?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엄마는 마르코가 11살이던 2년 전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식모살이를 하러 떠난 기러기 엄마인데 처음 1년 동안은 계속 편지도 보내오고 엄마가 번 돈도 전부 집으로 보내왔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부터는 연락이 딱 끊어져버렸다. 일을 소개해준 사람에게 연락을 넣어도 답이 없고, 엄마가 일하고 있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집에도 직접 편지를 보내봤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심지어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이탈리아 영사관에도 연통을 넣어 수소문을 해봤지만 엄마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아빠는 직접 엄마를 찾으러 연차내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고 싶었지만 당장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이라 가지 못하는 상황. 이때 13살의 마르코가 두주먹 불끈 쥐고 분연히 일어나 자신이 엄마를 찾으러 가겠노라고 아빠에게 천명한다.


용감하게 혼자 엄마를 찾아 떠난 우리의 마르코는 가는 곳마다 찾는 사람이 이사를 갔다거나, 죽었다거나 하며 계속 목적지가 갱신되는 무한루프에 빠진다. 원래 집떠나면 개고생이다. 하지만 마음씨 착한 주인공이 용기와 슬기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많은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끝끝내 엄마와 눈물의 상봉을 하게 된다. 우리 때는 용기와 슬기 이런거 참 좋아라 했었다. 그런데 엄마는 병에 걸려 있었는데 수술받기를 거부한다. 무슨 병인지도 나오지 않고, 수술받기를 거부하는 이유도 명확하진 않다. 외국인 노동자라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수술비의 압박 때문인지, 그 나라의 의료수준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어쨌건 모든 의료행위를 거부하고 죽어가는 중에 마르코가 짠 하고 나타나자 갑자기 마음을 바꿔 수술을 받고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서 마르코와 함께 남편과 큰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이탈리아로 돌아간다. 이럴거면 엄마는 왜 수술을 안 받겠다고 한건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언젠가 삼만 리가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계산해본적이 있었다. 삼만리는 12,000km로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약 400km니까 삼만 리는 부산에서 서울을 30번 왔다갔다 하는 거리가 되겠다. 정말 어마어마한 거리인데 건장한 성인에게도 힘들 이 먼거리를 13살 짜리 꼬꼬마가 걸어서 갔다는게 과연 가능한지, 이탈리아 꼬마인데 아르헨티나에서 말이 통할지, 이런 것들이 현실성이 있는지 자꾸 현실적인 것을 따지다보니 감동이 줄어든다. 반대로 중간중간 리얼리티가 살아숨쉬는 장면도 있다. 마르코의 엄지 발톱이 깨지고 빠져서 천으로 묶고 걷는 씬이 나오는데 이런 건 리얼리티가 있다. 군대에서 20km를 걷고도 물집이 생기고 발톱이 죽기도 하는데 삼만 리면 발톱이 아니라 발가락이 안 빠진게 다행이다. 그리고 억척스럽게 일을 한 탓인지 엄마의 팔뚝은 굉장히 우람하게 그려져 있다. 이런 것들이 현실감이라면 현실감이 있다고도 하겠다. 어쨌건 어릴 때는 그저 만화를 보여 감동하고, 울고 웃으며 봤을텐데 이젠 나이를 먹었다고 저게 가능한 일인지 현실성을 따지게 되었다는 것이 조금 서글퍼진다. 잃어버린 동심을 조금 되찾는다면 이 만화도 더욱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만화 속 마르코라는 이름은 같은 이탈리아인으로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여행을 간 모험가 마르코 폴로에서 따왔을 것이다.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간 이탈리아의 또 다른 모험가 콜럼버스처럼 마르코는 이탈리아를 출발하여 대서양을 건너 남미로 간다. 아마도 마르코 폴로의 이름과 콜럼버스의 행적을 합쳐서 만든 캐릭터가 엄마 찾아 삼만 리의 마르코가 아닐까 생각된다. 캐릭터 이미지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같은 그림체로 둥글둥글하니 착하고 순하게 생긴 이미지이다. 둥굴하고 이목구비가 흐릿하지만 의외로 만화의 표정 묘사는 정밀하고 디테일하다. 또 마르코의 심리 묘사도 탁월한데 잠을 자면 꿈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낯선 사람이 귀에다 대고 엄마는 죽었다고 속삭이고 그 때마다 아이는 놀래서 깨는 식이다. 그렇게 마르코의 불안하고 외로운 마음을 표현하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보기엔 무겁고 어두운 장면으로 표현되어 있다.


삼만 리를 돌고 돌아 엄마를 찾아간다지만 대체 그게 어느 정도의 거리이고, 얼마나 많이 이동한 건지 감이 잘 안 왔는데 책 서두에 마르코가 엄마를 찾기 위해 움직인 루트가 표시된 지도가 첨부되어 있어서 마르코의 동선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 놓은 것도 좋았다. 지금 큰 조카가 대략 13살 정도 되었는데 이 꼬꼬마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삼만 리를 혼자 여행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택도 없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아이 혼자 어딜 간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게 보인다. 그러고 보면 마르코가 살았던 시절은 아이 혼자 여행을 할 수도 있고, 꼬맹이가 엄마를 찾아 가나고 하니 다들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도 하는 인간미가 남아 있던 시절인 것 같다. 오랜만에 가슴이 따땃해지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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