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의 양식 - 한식에서 건진 미식 인문학
송원섭.JTBC <양식의 양식> 제작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같은 제목의 TV방송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방송은 요리연구가와 게스트들이 한국인의 8종의 소울푸드에 담긴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한식 속에 얽힌 비밀과 역사, 상식 이야기를 나누는 미식 인문학 방송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겹살, 냉면, 치킨, 백반, 국밥, 불+고기, 짜장면, 삭힌 맛이라는 총 8가지 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음식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 풍습,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맛을 찾아간다. 맛의 비밀을 알기 위해 미국, 스페인, 중국, 태국,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 세계를 누비며 외국의 유사한 음식과 우리 음식을 비교해보면서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가지는 의미도 알아본다. 책에서는 방송에서 담아내지 못한 내용까지 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런 형식의 음식을 다루는 인문학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과거에는 음식이나 먹는다는 행위에 큰 의미를 두지도 않았고, 어떻게 먹으면 맛있는지 먹는 행위에 중점을 두었다면 요즘에는 단순히 먹는다는 행위에서 벗어나서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음식 속에 담긴 역사적 맥락이나 문화적 의미 등을 알아보며 음식 속에 스토리를 녹여내는 시도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입으로만 느끼는 맛을 넘어서 머리로 느끼는 지적인 맛까지 채워주는 것인데 요즘 워낙 인문학이 유행하다보니 다양한 분야에서 인문학적인 접근이 많아졌고, 그런 유행에 편승해서 음식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도 그 음식에 대해 알고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지는 효과도 약간 있는 것 같다. 회식 자리에서 이런 지식들로 아는척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기서 양식은 일용할 양식이라고 말할 때의 그 양식을 뜻한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사람의 먹을거리란 의미인데 자꾸 서양의 음식이 연상되어서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후자의 양식은 시대나 부류에 따라 각기 독특하게 지니는 문학, 예술 따위의 형식을 뜻하는데 바로크 양식, 무슨 양식이라고 표현할 때의 그 의미이다. 책을 인용하면 양식의 양식이란 의미는 먹고사는 방법에 대한 건전한 상식이자 인류가 먹어온 음식들의 스타일에 대한 탐구라는 의미라고 한다. 즉, 한국인의 소울푸드를 다루고 있지만 인류가 먹고 있는 음식이라는 큰 틀에서 한식을 분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음식이라는 것은 그 민족의 문화와 역사가 녹아들어 있으므로 한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와의 차이점을 알아보는 것도 필요하고 한국사가 아닌 세계사의 맥락에서 한식을 보면 보이지 않던 의미들이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삼겹살은 한국인의 소우푸드라 할만하다. 회식자리에서의 단골메뉴이고 소주한잔과 잘 어울리는 서민들의 음식이란 느낌도 있다. 오래 구워야하고, 불판을 갈아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혼자서 고기집에 가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한국인이 중요시 여기는 다함께라는 문화가 삼겹살에 녹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삼겹살이 외식의 대명사처럼 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IMF를 기점으로 삼겹살이 외식계의 넘버원이 되었다는데 그 전에도 많이 먹었던 기억은 무엇인지.. 요는 IMF이전의 호황기에는 소고기를 먹던 사람들이 경기가 나빠지고 주머니 사정이 안좋아지자 한단계 낮추어서 삼겹살을 먹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에서 양돈 사업이 발전한 것은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해서였는데 일본에서는 삼겹살 부위를 그다지 먹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안심과 등심 위주로 수출을 하다보니 수출하고 남은 부위를 한국인이 먹기 시작한 것이다. 삼겹살과 족발, 내장, 머리고기 등이다. 라는 의견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인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에 수출을 많이 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전까지 소고기의 소비가 많았던 한국인의 입맛을 다변화하고 소고기 소비를 줄이기 위해 강제적으로 돼지고기를 푸시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부족한 쌀 대신 잡곡을 먹으라고 권장했던 것처럼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권장했다는 뜻인데 이 말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는 삽겹살이 만들어진, 강요된 맛이란 의미인 것이다.


난 소위 국밥충이다. 국밥을 굉.장.히. 좋아한다. 국에 밥을 말아서 김치 한쪽 척 올려서 먹으면 세상 그렇게 맛나는 게 없다. 그런데 세상 어느 나라도 우리처럼 밥을 국에 말아서 국물, 건더기, 밥을 한번에 먹는 형태는 없다고 한다. 밥과 국을 따로 먹는 일명 양반식 식사를 하거나, 밥 한 숟가락 떠서 국에 적셔서 먹는 식으로 먹지 밥을 말아먹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국물음식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고 국 형태로 먹는 음식도 많이 있지만 유독 밥을 말아서 먹는 것은 한국 뿐인 셈이다. 성격 급한 한국인들이 후딱 먹으려고 국에 밥을 말아서 먹었다는 하나의 가설도 있고 또 한가지의 가설은 많이 먹기 위해 말아먹는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밥 뿐만 아니라 동치미건 김치국물이건 무슨 국물만 있으면 다 말아버리는데 쌀밥을 액체에 말아서 먹으면 빠르게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많이 먹으려고 말게 되었다는 설이다.


과거 한국근대사 사진을 보면 강호동 대가리만한 밥그릇에 고봉으로 밥을 올려서 먹고 있는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에는 다른 반찬이 별로 없어서 오직 밥만으로 영양소를 보충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정도로 많이 먹어야 했던 것이다. '밥만 먹고는 못살아'란 이대근 주연의 에로에로한 영화도 있지만 실제로 쌀에는 영양소고 제법 골고루 들어있어서 밥만 먹어도 살 수 있다고 한다. 다만 필요한 영양소를 채우려면 밥을 사진에서 봤던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먹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밥을 많이, 빠르게 먹기 위해 말아먹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숟가락도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르게 밥과 국을 적당히 혼합하여 한번에 먹기 좋은 최적의 모양새를 가진다. 중국이나 일본의 숟가락처럼 깊이가 깊으면 뜨거운 국물이 너무 많이 떠져서 먹기 힘든데 한국은 적당량의 국물에 밥과 건더기가 많이 올라가는 형태로 떠지는 나름 과학적(?)인 숟가락인 것이다. 말하자면 밥을 국에 말아서 먹었던 것도 먹을 것 없고, 못살던 시대에 어떻게 먹고 살아남기 위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문화인 셈이다.


부산사람들은 소울푸드로 돼지국밥과 밀면을 꼽는다. 둘 다 6.25를 거치면서 부산의 대표음식이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인데 밀면은 당시 부산에 정착한 북한 출신의 피난민들이 냉면을 만들고 싶으나 메밀가루가 없어서 대신 밀가루로 면을 만들면서 처음 만들어진 뉴페이스였는데 반해 돼지국밥은 원래 부경 지역의 음식이었다고 한다. 돼지국밥도 밀면처럼 6.25때 만들어진 신제품인 줄 았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지만 밀면처럼 이북 피난민들이 순대국밥을 먹고 싶었지만 순대를 구하지 못해서 돼지의 이런 저런 부위를 넣고 끓여먹다가 널리 인기를 끌었다는 주장이다.


앞서 살펴본 삼겹살도 그렇고, 국에 밥을 말아서 먹게된 한국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만들어진 이유도 그렇고, 돼지국밥이 성행하게된 이유까지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는 것들은 상당수가 전쟁과 가난이라는 근현대사의 아픔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하나의 음식을 따라가다보면 역사와 문화가 보인다. 백반집의 쌀밥 한그릇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을 보며 세상에는 수많은 음식이 있고,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가을날 이 책으로 지식의 공복을 채워주는 식탐의 여정을 떠나보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