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움의 사회학 - 남자를 지배하는 ‘남자라는 생각’
필 바커 지음, 장영재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들어 성인지감수성이 큰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가부장적 남성중심사회에 대항한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성평등과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그와 함께 '남자다움' '여자다움'이라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역할론 그리고 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하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에서는 남자다움을 말하고 있지만 결국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과도 맥을 함께 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는 어린아이들에게 성역할론을 교육시킨다. 부모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부터 성 차이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적용하여 사내아이와, 여자아이를 다르게 취급한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장난감부터 유아용품까지 파랑과 핑크로 남아용 여아용으로 구분해놓고, 성별에 해당하는 색상의 물건들만 아이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들에게 이런 남자, 이런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그런 아이가 되도록 훈육한다. 사내아이는 여자아이보다 안아주는 빈도가 더 낮고, 보챌 때 달래는 시간도 짧다. 문제나 퍼즐을 해결하는 데도 도움을 적게 받는다. 아이의 삶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부모가 어릴 때부터 '남자는/여자는 이래야 해'라며 남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세지를 주입한다. 부모에게서 받게 되는 이런 메세지는 아이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남아들은 어릴 때부터 파란색의 경계 안에 놓이게 되고, 남자는 울면 안된다거나 그런 행동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식의 어른들과 TV등의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남자다움이라는 이미지에 전도된다. 그리고 그런 강요된 영향력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또래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집단의식에 빠지게 되어 더욱 성역할, 성고정관념이 고착화된다. 조금이라도 다른 성향을 보이면 놀림을 받거나 따돌림을 받기 때문에 부모에게서 배운대로의 정해진 성관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고정된 성인식이 점점 강해진다.


남성들은 사회적인 통념으로 쌓여진 남성성을 어릴적부터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기인한 '진정한 남자'의 이미지 틀을 형성했다. 키가 크고, 강하고, 근육질이고, 이성애자이고, 지배적이고 따위의 현재의 대다수의 남성들이 원하는 진정한 남자에게 필요한 특질의 목록을 완성하고, 상자 안에 있는 항목에 속하지 않는 남자를 게이, 동성애자, 겁쟁이, 루저와 같은 혐오와 차별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남성의 집합적 사회화인 맨박스에 갖히게 되는 것이다. 맨박스의 특징은 반드시 상자 안에 있거나, 밖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입구에 한 발만 걸치고 있을 수는 없다. 맨박스는 완벽한 실천과 함께 남들에게 계집애 같은 남자라며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를 하도록 요구한다.


맨박스는 전세계 공통으로 분명하고 일관된 남성성을 정의하는 행동과 특질의 목록을 보여주는 수단이다. 맨박스는 남성들이 스스로 남성성의 경계를 그리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성들을 얽매고 옭죄는 올가미이기도 하다. 맨박스의 기묘한 점은 우리가 그 상자 안에서 겪는 고통과 외로움, 절망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그 상자 안으로 들어가거나 그 안에 남아 있으려 한다는 점이다. 맨박스 안에 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남성다움을 실천해야 하는데 저자는 맨박스 안에 머물기 위한 이런 필사저인 행동에 '남자다움을 연기'하려는 경험이나 상처를 주고, 폭력적이거나, 그보다 더 나쁜 행동을 스스로도 알면서도 저지르는 경험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저자는 청년의 삶을 정의하는 맨박스로부터 압력을 받은 직접적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남성권리운동이라고 주장한다. 극단적인 형태의 남성권리운동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백인우월주의자, 극우혐오주의자, 신나치 집단과 연결이 되어있다고 한다. 그중 가장 한심한 부류는 일명 '비자발적 순결주의자'인 '인셀'이다. 영화 조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인셀은 실제 미국에서 총기난사로 살인을 저지른 일도 있었다. 인셀이 등장한 것은 결국 여자를 만나 섹스를 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맨박스에 들어갈만한 남자다움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들이 남자답기 위해 여성을 타자화하는 방법으로 잘못 교육받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사회적 통념으로서의 맨박스가 남자를 얼마나 불행하게 만드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더 큰 문제는 인셀을 비롯한 많은 극단적 남성권리운동가들이 이런 문제를 맨박스의 폐해가 아닌 페미니즘을 탓하고 여성의 잘못으로 돌려 여성혐오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보적이고 페미니즘을 지원하는 남성을 혐오하고 공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페미니스트를 혐오하고 공격하면서 스스로는 남자다움을 선동한다. 남성의 인권을 신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결국 가부장적 남성우월의식에 기인한 남성중심주의 사회로의 귀환을 뜻한다. 맨박스가 자신을들 외롭게 만드는데 그 박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저자는 성역할은 사회가 주입한 남자다움을 '일그러진 자화상'이라고 표현하며 이를 가정폭력, 자살, 성폭력, 여성혐오를 비롯한 거의 모든 사회 문제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는 뿌리 깊은 권원이 '진정한 남자'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남자다움'에서 비롯된 것이란 뜻이다. 저자는 '남자다움'에 관한 전통적인 관념이 우리 자신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해친다고 확신하며 이 같은 관념에서 벗어나 '남자다움'이라는 것의 정의를 다시 세우자고 한다. 저자는 미래에는 남자다움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와 같이 가족을 부양하고, 생계비를 버는 일이 남자의 도전 과제가 아닐 것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창조성, 독창성, 비판적 통찰력, 공감, 예지력 등은 맨박스에 속하지 않는 특질들이다.


남자들이 미래에 대처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서 보상과 기쁨, 의미를 찾기 위해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기술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면 우리는 행동을 지배하는 사회적 규범에서 해방되어 더 이상 '남자다움'을 가장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미래의 기술이 우리에게 창조적이고 개방적이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맨박스를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