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세계사 - 생명의 탄생부터 세계대전까지, 인류가 걸어온 모든 역사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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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버트 조지 웰스《인류의 세계사 (A short history of the world)》

✏️ 허버트 조지 웰스는 <투명인간>, <우주전쟁>, <타임머신>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이자, 역사학자이며,  SF 창시자이다.

이 책은 지구역사의 시작부터 제1차세계대전, 러시아혁명의 시기까지 다루고 있다. 시기적인 것으로 보자면 어느 책이나 비슷할 수도 있다. 어쩌면 작가의 생존시기(1866~1946)로 인해 현대사부분은 없는 것이 아쉬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사 입문도서로서는 너무 좋다는 것!!! 200여개의 시각자료와 지도를 포함하고 있으며, 설명이 필요한 개념이나 주요인물들은 따로 표시를 해서 알기 쉽게 설명을 해놨다. 어느 정도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라든지, 역사는 알고 싶지만 어렵다고 생각해서 잘 접근하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강추할만한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이 뭐였으면 더 많이 읽힐 수 있을까, 혼자 고민해본건 안비밀이다. 이 책을 읽고 더 궁금한 부분은 그에 관련된 다른 책을 겸한다면 훨씬 짜임새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 p. 91~92
자신을 괴롭히는 사회적, 정치적 병폐들을 바꿀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주어졌을 때, 바꾸려는 의지와 용기만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그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 숙고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지금과 다르게 더 현명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힘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험적인 플라톤의 가르침은 아직도 인류 공통의 지혜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 p. 144
공화정 후기 로마는 문맹이 앞선 도시들을 정복하며 많은 지식인을 포로로 끌고 왔다. 이름난 로마 가문의 자녀를 가르치는 가정교사가 대개 이런 노예였다. 부자는 그리스 노예를 사서로 두고 노예 비서를 두고 노예 학자들을 두곤 했다. 한편 '페쿨리움(peculium)', 즉 개인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는 노예들도 있었다.

🏷 p. 365
고의로 전쟁을 일으키며 사람의 생명을 놓고 도박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걸지 않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전쟁이 끝났지만, 그 어떤 것도 종결되지 않았고 시작되지도 않았으며 해결된 것도 없었다. 모든 전쟁을 끝내고자 전쟁을 시작했지만 전쟁을 끝내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이 생겨났을 뿐이다......민족과 제국을 향한 인간의 탐욕이 이런 비극을 낳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 p. 366
1919년,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열린 평화 회담(베르사유조약)은 당사국들의 입장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고 전쟁의 논리에 따라 결론을 내렸다. 전쟁에서 패전한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제국, 불가리아는 그저 회담에서 결정된 사항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은 베르사유궁전 '거울의 방'에서 황제 대관식을 연 적이 있었다. 프랑스는 이 치욕을 되갚을 목적으로 독일과의 종전 협약의 서명 장소로 이 베르사유 거울의 방을 선택했다. 베르사유 평화회담은 1871년 '거울의 바'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되갚는 복수극 같았다.

✏️ 베르사유 조약 따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따로, 거울의 방에서의 대관식 따로, 보복과 처벌의 역사라는 것도 따로, 모든 역사의 퍼즐조각 하나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제대로 된 퍼즐판에 끼워넣는 기분이었다. 이런거였구나. 특별한 의미없다 생각한 것들이 사실은 이런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였다. 뭔가 시원해지는 느낌.
이런 역사의 조각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조금은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p. 368
이 시대에 인간에게 몰려오는 위험과 혼란과 재난이 과거에 경험했던 그 어떤 것보다 거대해진 까닭은 인류가 과학의 발전을 통해 이제껏 가져보지 못한 거대한 힘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힘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것 또한 꼼꼼하게 검증된 계획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 p. 370
우리 모두의 진정한 국적은 '인류'이다.

인류는 이제 겨우 청소년기에 도달헀을 뿐이다.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은 인류가 늙고 쇠약해져서 겪는 문제가 아니라, 강해진 힘을 아직 길들이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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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 발 담그면 나도 나무가 될까 - 식물세밀화가 정경하의 사계절 식물일기
정경하 지음 / 여름의서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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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하 《흙에 발 담그면 나도 나무가 될까》

사계절 곳곳을 스며드는 에세이다. 책의 목차가 봄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품고있는 겨울부터 시작한다. 꽤 괜찮은 느낌이다.

자연을 바라보고, 식물을 느끼고, 그 호흡이 그림으로 내려앉고 글에 남아있다. 그리고 곳곳에 자신을 향하는 글들이 너무 좋다. 한곳에 오래 머물고 있는 느티나무가 지루하지는 않을까 생각하는 작가의 시선부터가 나를 어린시절로 돌려놨다.

햇빛가득 쏟아지는 오늘, 그리고 흐려질 언젠가, 옆구리에 끼고 다니다가 아무곳이나 펴서 읽어도 너무나 좋은 책.

🏷 p. 16
느티나무에게 남은 긴 시간 중 나의 이야기도 더해지면 좋겠다. 느티나무에게 남은 긴 시간 중 늘 느티나무를 찾아와 생각에 잠기곤 하던 사람 하나쯤으로 나를 기억해도 좋을 듯하다. 나뭇잎에 살던 곤충들처럼, 아주 작은 청개구리처럼, 잠시 쉬어가던 수많은 새들처럼, 함께 살아간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 p. 18~19
겨울나무는 군더더기 없이 자신을 비운다.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앙상했던 나의 몇 번의 겨울도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떨구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꽃도 피워보고 열매도 맺어보고 가지를 늘려가며 살다가도 꽃이 지고 열매도 떠나가고 가지가 꺾이기도 하며 또 다른 겨울을 맞는다. 📌 때론 외부가 아닌 스스로 가지치기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겨울은 언제나 혹독하지만 지나온 겨울을 그저 힘들었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 시간을 통해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다시 새 힘을 얻기도 하며 나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 p. 97
꽃 한 송이 피고 지는 모습에서 내 삶을 비춰보게 된다. 일 년을 기다려 하루를 핀대도 그 한 송이를 아름답게 피워내는 꽃을 보며 나의 하루도 꽃처럼 정성을 다해 피워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꽃은 이렇게 말없이 나의 마음을 움직인다.

🏷 p. 112
이곳에서 태어나 기억도 나지 않는 세 살 때까지윽 어린 시절을 보내고 도시에서 오랜 시간을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건 원래 나의 계획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이 나는 아주 마음에 든다. 창포에 딸려 온 좁쌀풀도 내 마음 같을까?
📌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아도 주어진 곳에서 또 다른 행복이 시작될 수 있음을, 좁쌀풀하고는 왠지 그런 대화를 오래 나눌 수 있을 거 같다.

🏷 p.134
📌 애써 이겨낸 잎도 스스로 놓아야 할 때가 있다. 계절을 거듭하며 나무들은 잎을 움켜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놓아야 할 때 미련 없이 놓아야 새로운 다음을 맞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짐작도 할 수 없는 혹독한 야생의 삶을 나무들은 고비마다 지혜로운 방법으로 묵묵히 견디고 살아낸다.

덧, 식물이 제법있는 카페에서 이 책을 읽는데, 사장님이 비비추모종을 들고와서 주셨다. 식물들의 사진을 찍고 식물이 보이는 책을 읽고 있으니, 비비추와도 인연이 생긴다.
잘 키워야지❤️

덧, 왜 그랬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책 끝의 편집자의 말 부분을 먼저 읽었다. 책이 시작된 계기, 만들어진 과정. 어쩌면 평범해보일 수 있는 내용이, 마치 연필로 꾹꾹 담아 쓴 편지 같았다. 마음이 오롯이 느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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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 나의 해방일지와 미투 운동의 탄생
타라나 버크 지음, 김진원 옮김 / 디플롯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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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라나 버크 《해방》

✏️해방, unbound.
이 책은 미투운동의 창시자이자 인권운동가인, 타라나 버크의 이야기다. 일곱살에 성폭력을 당하고, 스스로를 가둬온 모든 것으로부터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한걸음 더 나아가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나는 두어번을 울어야했다. 어린아이였던 타라나의 이야기에서 한 번, 그리고 타라나 딸의 이야기에서 한 번. 특히, 성폭력에 대한, 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도 모르는 나이에 당하고서도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녀의 글을 보면서, 나또한 그녀의 주변에 있던 여성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1인 딸아이에게 가끔 이런 얘기들을 언급하면서도 어쩌면 제일 중요한 말들을 생략한 채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평소에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막상 중요한 때에는 분노와 좌절의 감정밖에 살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p. 59~60
내가 살면서 만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들은, 엄마든 이모든 같은 아파트에 살던 아주머니든 나를 사랑스러운 아이로 바라보는 여성들은 나 자신과 내 은밀한 부분을 내가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무도 내 은밀한 부분에 손대게 해서는 절대 안돼, 모두 그렇게 말헀다. 하지만 그 은밀한 부분을 왜 지켜야만 하는지는 듣지 못했다. 그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내 경험을 돌이켜보았을 때도 나는 성범죄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했다. 나 자신만 나무랐다. 내가 보기에 저들이 나를 학대한 게 아니었다. 내가 규칙을 어겼다. 내가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 바로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생존자로 인식하지 못했다. 희생자로 인지하지 못했다.

수치심으로 고통스러웠지만 그만한 고통을 겪어도 마땅하다고 여겼다. 계속해 떠오르는 장면과 불안과 공포로 괴로움을 느껴도 당연하다고 여겼다. 어떤 고뇌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도 그럴만하다고 여겼다. 내가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그래서 그 짐을 짊어졌다. 등을 무겁게 짓누르고 살을 깊이 파고드는 고통을 참아냈다. 그 무게가 날마다 내 어깨를 서서히 내리눌렀고 마침내 나를 으스러뜨렸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타라나가 점점 자신의 저변에 깔려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보면서, 테스 건티의 <우주의 알>에서 '깨어나고 싶은 게 꿈'이라던 말이 생각났다. 타라나가 깨어나고 있다는 느낌. 물론 단번에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의식적으로는 계속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자신과 같은 일을 당한 학생이 손을 뻗어왔을때는 먼저 회피해버리는 상황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바뀌게 된다. 사실, 이것 자체도 대단한 일이다. 용기다.
누군가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앞서 나갈때에는, 같이 걸어가지 못할지언정 지지와 응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삐딱하게 보거나, 적어도 방관하지 않는다면 조금은 괜찮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느리게 가더라도 말이다.

🏷 p. 301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런데 용기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용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면 무슨 수로 찾을 수 있을까? 공동체가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용기가 공동체를 일으켜 세운다면 어떨까? 스스로에게 공감할 수 없으면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공감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공감과 용기가 치유의 핵심일까?/ 이제 질문들이 기억보다 빠르게 솟아났다. 대답도 그럤다.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곧 봇물처럼 터질 기세로. 난생처음으로 내 이야기가 내 몸에서 천천히 벗어났다. 그리고 마침ㅇ내 그 이야기를 꼭 들어야 할 한 사람, 바로 나 자신에게 들려주었다.

나도 당했다. Me,too.

덧, <편집자 레터 중에서>
이런 배경에서 이 책을 읽는 자의 최선은 무엇일까. 고민이 가닥 중 하나는 '미투'가 등가의 표현으로 읽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같은 모습, 비슷한 맥락의 상흔들이 동등한 통증을 주는 건 아니다. 100명의 외치이 있다면 저마다 다른 무게를 가진 100개의 아픔, 천편일률로 치환할 수 없는 100개의 길이 있다. 타라나는 같지만, 결코 같지 않으며, 같을 수도 없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를 가장 먼저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세상은 바뀌었다. 타라나의 길을 따라 세상을 바꿀 수많은 '나'에게, 완연한 고백을 품은 채 치유와 자유의 나날을 기다리는 모든 '나'에게. 이 책이 닿기를 바라며.

엽서로 들어있던 편집자의 레터를 읽으면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문장이 생각났다. "타인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방에 들여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채울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히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어떤 이의 상황이나 아픔에 대하여 공감한다라는 표현은 어쩌면 터무니없는 말일 것이다. 함부러 행해져서도 안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온마음을 다해 헤아려 보려고 애쓸 수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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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시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3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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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서동시집》

괴테의 시세계를 보여주는 《서동시집》은 그의 문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철학적인 면도 보여주고 있다.
책 자체는 두툼하지만, 절반은 괴테가 직접 쓴 《서동시집》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주석과 해석이 같이 있다. 워낙 문학에서 그리고 실제 생활에서도 사랑에 관한 것들을 많이 보여줘서,, 처음 이 책을 펼치기전에는 아름다운 사랑표현들이 넘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읽다보니 삶의 지혜마저 보여준다.

p. 14
숨쉬기에는 두 가지 은총이 있으니
공기를 들이마시고, 공기를 내쉬는 것이라.
들이마시면 답답해지고, 내쉬면 시원해진다.
생명이란 이토록 경이로운 혼합.
그대를 억눌러도 신께 감사하고,
그대를 다시 풀어 주어도 신께 감사하라.

(고1 아이에게 이부분을 읽어주니,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 마인드로 살면 살기에는 좋을것 같다고 한다. 나역시. 모든 게 감사하면, 삶이 확실히 달라지기는 한다.)

p. 101
억지 부리는 자에게는
단 한 순간도 말려들지 말라.
무지한 자와 다투면
현자라도 무지에 떨어지고 마니까.
(와...이건 시라기보다는 그냥 그 자체가 명언이라는 생각)

p. 119
사랑하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아요.
사방이 아무리 흐릿해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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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니를 뽑다
제시카 앤드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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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앤드루스 《젖니를 뽑다》

거의 열흘을 어디를가든 이 책을 들고다녔다.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는게 아까웠다고나할까. 끝을 보고싶지 않았다. 아마 서평책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책중간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술되고 있는 이 책은, 소설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간에 구애없이 생각나는대로 써내려간 에세이같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감정이 너무나 매혹적인 표현들로 쓰여져서 그럴지도 모른다. 문장들이 좋아 같은 문장을 여러번 되짚기도 했다.

작품속의 '나'는, 자신의 과거의 경험들과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덩어리들이 현재의 생활속 저변에 너무나 짙게 깔려있다. 누구나 자신의 과거를 안고 살기는 하지만, '나'는 그 안에 발을 담그고 산다. 자신의 감정이 쏟아져내릴까봐, 혹여나 그게 상대방에게 보일까봐, 스스로의 마음을 자신에게 들킬까봐, 그 모든 것이 두려워 자신안에 많은 것을 가둔다. 그래서 안타까웠고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그녀가 내뱉는 감정들이 내 먼 기억속의 무언가와 만나, 문장들 사이를 머뭇거리게 했다.

이 소설이 더 매력적일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렇게도 꽁꽁 싸매던 자신을 젖니처럼, 빼버려야 영구치가 새로 올라올 수 있는 젖니처럼, 빼버리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것이다.

p. 82
내가 원하는 것을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얽매여 그냥 억누르기만 하는 대신, 요구히는 법을 알았으면 좋겠다. 당신을 소유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원하고 있고, 그 생각에 목구멍이 타들어가다 마침내 시큼한 맛이 내 입안 가득 고이며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p. 354
흔들리는 젖니를 비틀어 잇몸에서 뽑아내듯, 살짝 비틀어 조심스럽게 파내고 나니 아주 작고 축축한 구멍이 남는다. 그것을 손가락으로 잡고 굴리며, 만약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얼마니 오랫동안 그것을 지니고 다녔을지 궁금해진다. 내 피부가 치유되며 그 작은 돌 조각 위로 자라서 그것을 내 안에 가두는 것을 상상해본다. 그것이 덧날지, 아니면 내 몸이 그것을 분해할지 궁금하다. 어쩌면 나는 그것이 거기에 박혀 있는지도 모르고 평생을 지니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덧. 번역이 아름다운건지 원문이 그런건지, 궁금함에 원서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너무 저릿저릿한 글귀들이 많다. 책필사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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