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젖니를 뽑다
제시카 앤드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평점 :
제시카 앤드루스 《젖니를 뽑다》
거의 열흘을 어디를가든 이 책을 들고다녔다.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는게 아까웠다고나할까. 끝을 보고싶지 않았다. 아마 서평책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책중간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술되고 있는 이 책은, 소설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간에 구애없이 생각나는대로 써내려간 에세이같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감정이 너무나 매혹적인 표현들로 쓰여져서 그럴지도 모른다. 문장들이 좋아 같은 문장을 여러번 되짚기도 했다.
작품속의 '나'는, 자신의 과거의 경험들과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덩어리들이 현재의 생활속 저변에 너무나 짙게 깔려있다. 누구나 자신의 과거를 안고 살기는 하지만, '나'는 그 안에 발을 담그고 산다. 자신의 감정이 쏟아져내릴까봐, 혹여나 그게 상대방에게 보일까봐, 스스로의 마음을 자신에게 들킬까봐, 그 모든 것이 두려워 자신안에 많은 것을 가둔다. 그래서 안타까웠고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그녀가 내뱉는 감정들이 내 먼 기억속의 무언가와 만나, 문장들 사이를 머뭇거리게 했다.
이 소설이 더 매력적일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렇게도 꽁꽁 싸매던 자신을 젖니처럼, 빼버려야 영구치가 새로 올라올 수 있는 젖니처럼, 빼버리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것이다.
p. 82
내가 원하는 것을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얽매여 그냥 억누르기만 하는 대신, 요구히는 법을 알았으면 좋겠다. 당신을 소유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원하고 있고, 그 생각에 목구멍이 타들어가다 마침내 시큼한 맛이 내 입안 가득 고이며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p. 354
흔들리는 젖니를 비틀어 잇몸에서 뽑아내듯, 살짝 비틀어 조심스럽게 파내고 나니 아주 작고 축축한 구멍이 남는다. 그것을 손가락으로 잡고 굴리며, 만약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얼마니 오랫동안 그것을 지니고 다녔을지 궁금해진다. 내 피부가 치유되며 그 작은 돌 조각 위로 자라서 그것을 내 안에 가두는 것을 상상해본다. 그것이 덧날지, 아니면 내 몸이 그것을 분해할지 궁금하다. 어쩌면 나는 그것이 거기에 박혀 있는지도 모르고 평생을 지니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덧. 번역이 아름다운건지 원문이 그런건지, 궁금함에 원서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너무 저릿저릿한 글귀들이 많다. 책필사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