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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3년 1월
평점 :
<붓과 검의 만남이 이뤄내는 환상적인 색채>
라잔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는 화국,
그리고 옛 화국 땅 14행정령에 살고 있는
예술가 제비는 라잔을 위해 일하는 한이 있더라도
'진짜 예술'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화국의 독립운동과 관련이 있는 듯한 봉숭아 언니는
이를 극구반대하고,
집을 떠나 구미호 친구 학의 집에서 머물며
예술성 시험 결과를 기다리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언니를 볼 면목도, 빚 갚을 돈도 없던 제비에게
라잔 총독부를 위해 일하는 방위성 예술가 자리 제안이 들어와
깊은 고민에 빠진다.
과연 제비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되며,
그녀의 앞날에는 어떤 일들이 펼쳐지게 될까?
화국의 식민 지배와 서양 세력이 침투하는
혼란과 격동의 시기, 이곳에서 사랑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식민 지배 시기를 모티프로 한 SF소설>
분명 화국과 그 시기의 조선은 같지 않다.
자동 인형의 존재와 달나라의 존재 등 다수의 차이점이 존재하나,
화국의 전통 음식과 고유의 문화, 겐상도(경상도) 등의 명칭은
영락없이 조선과 닮아 있다.
그렇기에 라잔인에게 지배당하는 화국의 상황이
침통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주적 독립을 가능케 하는 희망들이 보인다.
거대 용 '아라지'와의 소통이 가능하게 된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립 투쟁을 하는 언니 '기엔 봉숭아',
의중을 알 수 없는 수석결투관 '드주게 베이'.
아름다운 표지의 색채만큼이나 강렬한
제비의 여정이 펼쳐진다.
<봉황과 이름에 대한 주관적 생각(스포주의)>
미국계 한국인 작가여서인지
곳곳에 한국 정서가 담긴 이름과 소재들이 등장해
그것들에 중점을 두고 책을 읽어 나갔다.
*봉황
특히 신경써서 본 부분은 '봉황'에 대한 것인데,
본 소설 제목의 일부이기도 한 봉황은
안료의 명칭 속에서만 등장할 뿐이며
오히려 '아라지'라는 용이 활약상을 보여준다.
봉황은 용과 함께 음양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용과 함께 있을 경우 용은 남성, 봉은 여성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런 면에서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가
여성 서사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또한 평화를 상징하는 봉황이 오히려
예술품을 파괴하여 나온다는 점이 아이러닉했다.
*봉숭아와 제비
봉숭아(봉선화)도 마찬가지로 우뚝하게
봉과 같은 형상을 하며 꽃이 핀다고 '봉'숭아가 되었다.
우뚝 서서 독립 투쟁을 이어가는 모습이
이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동생 제비는 철새과의 조류로
라잔국을 위해 일하다가 화국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돌아가는 모습이 이름과 어울렸다.
또한 화국 땅에서 살다가 라잔의 방위성 여름 궁전으로,
이어 화국 독립투쟁 지역에서 달나라로 여정을 떠나는 것
또한 이름과 걸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모작만 남은 작품은 과연 얼마나 될까? 완전히 사라진 작품은 또 얼마나 될까?“-82p
"통제된 상태로 존재해야만 하는 자동인형들을 떠올렸다. 일말의 동질감이 느껴졌다. 자신도, 자신의 민족도, 선택권을 완전히 빼앗긴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90p
"태우거나 찢어버리는 것만으로도 예술품의 존재 자체가 잊힐 수도 있다. 어떤 모습이었는지조차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316p
"전장에 나가야 한다면 이미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모두가 무언가를 잃게 된다. 부모, 형제, 자녀, 친척, 언제나 순수한 이들이 목숨을 잃지."-367p
*리뷰 목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